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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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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밀실 합의’가 부른 외교참사

사드 운영·유지 비용 부담 주체를 둘러싼 논란…

꼬인 실타래 풀 문서 군사기밀로 지정돼 사실 확인 어려워
등록 2017-05-09 08:55 수정 2020-05-02 19:28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3월15일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 북핵·사드 등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출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3월15일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 북핵·사드 등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출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답다. 4월27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의 값어치를 ‘10억달러’라고 분명히 했다. “비용은 한국이 댄다”며 “통보했다(informed SouthKorea)”고도 했다. 기습 배치 이틀 만에 전격적으로 사드를 재협상 테이블에 올린 것이다.

그는 이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함께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1987년에 쓴 (The Art of the Deal)에 등장하는 노하우를 30년 만에 사드 배치에 적용한 듯하다. 진실이 어떻든 미국은 FTA 재협상과 함께 사드 비용 부담의 주체를 분명히 했다. 책 제목처럼 이번 사드 배치 거래(deal)는 예술(art)에 가깝다.

비용 부담이라는 급소를 찔린 청와대가 황급히 수습에 나섰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4월29일 허버트 맥매스터 미 국가안보보좌관과 통화한 뒤 “우리 정부가 부지·기반 시설을 제공하고 사드 체계 전개 및 운영·유지 비용은 미국이 부담한다는 기존 합의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맥매스터 보좌관이 직접 나서 사드 비용 재협상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재확인했다.

청와대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트럼프로부터 사드 ‘가격’을 통보받은 주체가 누구냐부터 안갯속이다. 는 5월2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사드 비용을 지난해 말 통보받았다”고 보도했지만, 청와대는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또 다른 당사자인 국방부와 외교부는 묵묵부답이다. 미 대통령이 사드 배치 비용을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재협상의 판이 열린 마당에 어느 정부 부처도 책임 있게 나서지 못하는 외교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꼬인 실타래를 풀려면 최근 한국과 미국이 진행한 사드 배치 협의 과정을 복기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이 사드 배치 ‘실무 논의’를 공식 시작한 것은 2016년 3월이다. 그해 1월4일 북한은 4차 핵실험을 단행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1월13일 신년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안보와 국익을 고려해 사드 배치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두 달 뒤 3월4일 국방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가 안위를 지키기 위한 책무를 완수하기 위한 일환”이라며 주한미군과 사드 배치 관련 공동실무단 구성 약정을 체결하는 데 이르렀다.

트럼프의 ‘10억달러’ 발언 이후

이 약정은 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과 주한미군 사령부 참모장이 체결한 것이다. 이는 당시 추후 합의를 위한 실무 단위의 약정문서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10억달러 발언 이후 국방부는 공동실무단 약정을 들어 사드 배치 비용 분담이 이미 합의된 사안임을 강조했다.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이 약정을 근거로 5월1일 브리핑에서 “재협상을 할 사안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논란이 이어지는데도 국방부 주장의 진위를 문서로 확인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국방부가 이 문서를 2급 비밀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국방부의 설명대로라면 이 문서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2026년부터다.

문서 공개가 필요한 까닭은 국방부가 주장하는 합의의 존재 때문만이 아니다. 은 약정 체결일인 3월4일에 국방부가 발표한 보도자료의 내용을 따져봤다. 이 과정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등장한다. 국방부는 보도자료에서 “한-미 공동실무단에서 적정 부지 선정, 안전 및 환경, 비용 문제, 협의 일정 등에 관해 협의를 진행할 것이다. 주한미군 사드 배치는 한-미 공동실무단이 마련한 건의안을 양국 정부가 승인하는 과정을 거쳐 추진될 것이다. 주한미군이 운용하게 될 사드 체계는 북한의 증대하는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비용 문제에 대한 협의를 ‘진행한다’는 뜻과 함께 공동실무단이 만든 건의안이 “양국 정부가 승인하는 과정을 거쳐 추진한다”고 분명히 한 것이다. 사드 비용 분담과 관련한 국방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비용 분담 관련 사항은 약정으로 확정되는 게 아니라 약정이 체결 이후 공동실무단의 협의를 통해 결정되어야 할 ‘미래의 일’이었다. 그런데 국방부는 이 약정에 비용 합의가 포함돼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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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이나 기관 간 약정이라고 볼 수 없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장은 “백번 양보해 국방부의 해석을 받아들인다면, 약정을 체결할 때 (비용 문제는) 총론적 차원에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른다’라며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다. 각론 수준의 사안은 추가로 협의할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면 결국 한-미 양쪽 모두 진실을 말하는 것이 된다”고 했다. 김 원장은 ”그렇다고 해도 사드 배치 합의 과정을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점은 돌이킬 수 없는 문제이며, 밀실 합의를 진행하다 결국 외교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5월9일 대선 이후 한국 정부가 가장 시급히 수습해야 할 과제가 던져졌다”고 덧붙였다.

“합의 문서는 없다.”(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

논란은 의외의 지점에서 쉽게 해결될 가능성도 있다.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지난 3월 와의 인터뷰에서 “사드 문제와 관련해 국방부와 외교부 등에 관련 합의 문서가 존재하는지 확인했는데 결론적으로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송 의원은 ‘기밀을 이유로 정부가 확인을 거부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럴 가능성까지 모두 확인했지만 실제로 없었다”고 답했다. 5월4일 송 의원은 과의 통화에서 “(사드 배치 뒤에도) 달라진 것은 없다”며 정부 부처의 입장이 변하지 않았음을 재확인했다.

당시 송 의원과 함께 합의문을 찾아나서던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도 최종적으로 합의 문건이 없다고 판단했다. 평통사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도 최근 정보공개 청구에서 국방부로부터 합의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평통사 관계자는 “지난 2월 국방부·외교부 복수의 관계자들로부터 ‘사드 배치는 서면으로 합의되지 않았고 법적으로 검토해보니 조약이나 기관 간 약정이라고 볼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이어 “2016년 3월 약정에 대해 국방부 법무관리실 관계자도 ‘국가 간 합의는 조약과 조약이 아닌 것으로 나뉘는데 사드 배치 합의는 조약이라고 볼 수 없고, 기관 간 약정이라고 볼 수도 없다. 사드 배치 합의는 서면으로 된 것이 아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한-미 공동으로 발표한 행위만 있을 뿐 서면으로 된 것은 없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사드 배치는) 결정돼 아래로 내려온 것”

보이지 않는 것은 10억달러짜리 ‘약정’만이 아니다. 주무 부처인 국방부 한민구 장관이나 외교부 윤병세 장관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사드 배치 과정에서 한-미 연합 자산관리의 책임이 있는 한민구 장관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그 대신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총대를 멨다. 김 안보실장은 올해 1월과 3월 미국 워싱턴을 두 차례 방문해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났다. 특히 3월에는 미국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미-중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북핵과 사드 배치 문제를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장관 대신 김 안보실장이 나선 것을 두고 국방부는 들썩였다. 이 논란은 차기 전투기(FX) 사업에서 기종 결정 당시 장관이던 김관진 안보실장이 “정무적 판단”이라며 F-15가 아닌 F-35의 손을 든 것을 두고 록히드마틴과 관계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사드 또한 록히드마틴이 생산하는 무기체계다.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5월1일 트위터에서 “대통령도 탄핵됐는데 청와대 김관진(실장)이 저렇게 국민을 속이고 경제 보복을 자초하고, 미국에게 약점 잡혀 10억달러 요구받는 상황에 대한 이유가 무엇인지? (김 실장과) 록히드마틴과 유착 의혹을 밝히는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드 문제가 단순히 김 안보실장의 수준을 넘어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 최순실씨까지 간여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지난해 10월27일 페이스북에서 “국정 농단 세력이 외교·안보 분야까지 침투했다는 사실이 어렴풋하게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2015년) 메릴린 휴슨 록히드마틴 회장의 방한에 이어 사장, 부사장이 떼를 지어 한국을 방문했다”며 “그 뒤로 록히드마틴 부사장이 한-미 양국이 사드 한국 배치를 논의 중이라고 천기를 누설했다. 록히드마틴에 줄을 선 정부 비선 실세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했다.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도 2016년 10월 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사드 배치는) 국방부 장관을 배제하고 누군가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닌가. 결정돼 아래로 내려온 것”이라며 “(최순실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양심고백이 필요하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김관진 (안보)실장도 알고, 청와대에 있었던 사람은 다 안다”고 했다.

김 안보실장의 행보가 평소 그의 한-미 동맹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김 안보실장과 가까운 한 인사는 “지금까지 김 실장의 행보를 볼 때 사드 배치는 미군 자산을 이용해 북한을 견제하자는 입장이 그대로 관철된 것으로 보인다. 사드의 미사일방어 능력은 차치하고라도 사드를 운용하면서 얻을 수 있는 정보 자산이나 한-미 동맹 강화 등 부수적 이득만으로도 효과는 충분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김 실장은 엄밀히 말하면 친미파라기보다 미국을 이용해 방위력을 높이자는 실용주의자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국정조사·특별검사까지 추진해야

비용을 둘러싼 논란에도 국방부는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10억달러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실제 비용 분담에 대한 (문서) 합의가 있었든, 한미주둔군지위협정에 준하든, 그것도 아니면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지렛대가 되든 분명한 것은 사드가 운용 가능한 형태로 이미 배치됐다는 사실이다. 이를 미국의 정보 자산과 함께 한-미가 어떻게 효율적으로 공조해 운용해가는지가 더 중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은 새 정부로 넘어왔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선 비용 논란을 규명하기 위한 청문회를 열자는 주장이 나오다 중도·보수 표를 의식해 한발 물러선 상태다. 하지만 대선 이후 청문회가 아니라 국정조사, 특별검사까지 추진해 이번 사태를 국방 분야 적폐 청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여전하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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