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당선자(39)는 항상 드골을 말하는 드골주의자다. 1959년부터 10년간 대통령을 지낸 샤를 드골이 정당을 초월해 사랑받은 것처럼 자신도 프랑스 국민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드골처럼 좌파와 우파의 좋은 점만 취하고 있다”고 역설한다. 마크롱이 표방하는 통합정신 역시 드골의 사상을 계승했다.

마크롱 당선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출된 프랑스 대통령 가운데 가장 젊다. 양대 정당(공화당, 사회당)에 속하지 않은 혁신파기도 하다. 그는 1977년 12월21일 신경과학자인 장미셸 마크롱과 의사인 프랑수아즈 마크롱 사이에서 태어났다. 파리 10대학을 졸업할 때 논문 주제는 헤겔에 관한 연구였다. 이후 프랑스 정치분야 엘리트를 대거 배출한 파리정치대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27세에 프랑스 재무부 재정감사총국 금융조사관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2006년 사회당에 입당해 이듬해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당 후보인 세고레느 르와이얄을 지원했다. 르와이얄 후보가 패하자 2008년 로스차일드 가문의 로스차일드은행에 들어갔다. 인수합병(M&A) 전문가로 활약하며 2010년 부사장까지 올라 200만유로(약 24억8600만원)의 연봉을 받기도 했다.

그는 다시 사회당인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가 들어서자 경제장관에 발탁됐다. 재임 중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법 개정을 단행했다. 소위 ‘마크롱 법안’이다. 이 법을 통해 일요일 노동을 확대 시행할 수 있도록 했으며 기업의 집단 해고에도 손을 댔다. 기업이 구조조정 중이거나 법적 청산 과정에 놓인 경우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했다.

마크롱은 지난해 여름 장관을 사퇴한 뒤 11월 중도신당 ‘앙마르슈(전진)’를 창당해 독자 출마했다. 올초 여론조사에선 지지율이 마린 르펜 국민전선 후보와 프랑수아 피용 공화당 후보에 이어 3위에 그쳤다. 하지만 천운이 마크롱에게 찾아왔다. 피용이 부인을 허위로 채용해 수년간 거액의 공금을 챙겼다는 의혹이 폭로된 것이다. 피용의 지지율은 수직 하락했다. 마크롱은 르펜의 대항마로 주목받았다.

마크롱 당선자는 한국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경제장관이던 2014년 한국을 방문해 당시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을 만났다. 2015년 6월엔 프랑스 파리에서 삼성전략혁신센터(SSIC) 주최로 열린 ‘정보기술(IT) 파트너십 이벤트’에도 참석했다. 행사에서 손영권 SSIC 사장과 10여분간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창업과 기업가정신에 대해 대담하기도 했다. 행사가 끝난 뒤 마크롱 당선자는 자신의 트위터에 “손 사장이 프랑스 스타트업과의 협력을 약속하고 삼성전자 연구개발 조직을 파리에 만들기로 했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당시 삼성전자는 프랑스 스타트업인 시그폭스에 1억유로를 투자했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