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소셜 미디어에선 지구도 둥글지 않을 수 있다

성진혁 사회부 차장 2017. 5. 8.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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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혁 사회부 차장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태양계 너머로 우주 탐사선을 보내고,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며 지동설(地動說)을 역설한 갈릴레오를 위협했던 로마 바티칸 교황청에도 지구본이 있는 세상에 이런 맹신(盲信)이 존재한다.

서구를 중심으로 퍼진 '평면 지구론'의 신봉자들은 지구가 구형(球形)이 아니라 타원 접시 형태이고, 그 테두리를 두꺼운 얼음 벽이 감싸 바닷물이 떨어지지 않게 해준다고 주장한다. 1972년 미국의 아폴로 17호 우주선 대원들이 지상 4만5000㎞ 지점에서 지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유명해진 '블루 마블(The Blue Marble·푸른 구슬)'의 이미지는 조작이라고 일축한다. 북극을 세계지도의 중심에 둔 유엔기(旗) 형상에도 평평한 지구의 비밀이 숨어 있다고 한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에 접속해 '플랫 어스(Flat Earth·평평한 지구)'라고 검색하면 관련 동영상이 줄줄 뜬다.

유튜브를 비롯해 전 세계 20억명이 쓴다는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SNS)는 정보의 공유와 소통이라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요즘은 소셜 미디어를 오용(誤用)하는 수준을 넘어서 악용(惡用)하는 사례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아졌다.

지난달엔 태국의 20대 남성이 11개월 된 딸을 살해하고 나서 자신도 목숨을 끊는 영상이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앞서 미국 오하이오주에선 한 30대 남성이 행인을 살해하는 장면을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했다. 페이스북 측은 끔찍한 영상들을 빨리 삭제하지 않고 방치한다는 비난을 받자 최근 게시물 관리를 위해 기존 인력 4500명에 3000명을 더 충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이나 남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경찰이나 관계 기관에 신속하게 알려 적극적으로 사고를 막겠다는 의지다.

/조선일보 DB

그런데 아무리 감시의 눈이 많아져도 소셜 미디어의 전파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한다. 특히 가짜 뉴스 폭증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지경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2012년 대선 무렵까지만 해도 특정 후보 지지자들이 상대 후보를 비방할 땐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에 댓글을 다는 방식을 주로 썼다. 이번 대선에선 불법 낙선 운동의 전장(戰場)이 소셜 미디어로 이동했다. 가짜 뉴스 수만 건이 네이버 밴드·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스토리 등의 소셜 미디어를 좀비처럼 돌고 돌았다.

'손가락 선거전'이 사회 분열을 부추기는 듯한 현상 역시 안타깝다. 평범한 시민이 자기 소셜 미디어에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글만 올려도 다른 쪽 후보 지지자들에게서 인신공격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회적 지명도가 있거나, 대중적 인기를 끄는 인물이 개인적인 견해를 올렸다간 사이버 테러를 당할 위험이 더 커진다.

우리가 시속 1674㎞로 자전(自轉)하는 지구에 살면서도 밖으로 튕겨져나가지 않고 두 발로 설 수 있는 것은 중력 덕분이다. 아무리 지구촌이 하나로 이어진 정보와 관계의 시대라지만, 그 속에서 휘둘리며 사는 이가 너무 많은 듯하다. 난무하는 악의·비하·차별과 형식적 인간관계로 엉킨 소셜 미디어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공중부양을 해 댄다. 자아(自我)의 무중력 상태에서 표류하다 보면 '진짜 나'를 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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