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카네이션의 운명

박종성 논설위원

카네이션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보내며 성모 마리아가 흘린 눈물의 흔적에서 핀 꽃이라고 한다. 15세기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카네이션을 든 성모>를 그렸고, 16세기 산치오 라파엘로도 같은 이름의 작품을 남겼다. 모두 마리아가 한 손으로는 아기 예수를 안고, 다른 손으로는 카네이션을 쥐고 있는 모습이다. 카네이션은 마리아가 아기 예수에게 베푸는 모성애의 상징이다.

붉은색 카네이션의 꽃말은 사랑·존경, 분홍색은 열애, 흰색은 추모를 뜻한다. 어버이날에 붉은 카네이션을 부모님의 가슴에 달아드리는 전통은 미국에서 시작됐다. 20세기 초 미국 필라델피아의 아나 자비스라는 여성이 자신의 어머니 추모식에서 흰 카네이션을 교인에게 나누어주며 어머니의날 제정을 촉구한 것이 출발이다. 1914년 토머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5월 둘째주 일요일을 어머니의날로 정했다. 살아 계신 어머니에게는 붉은 카네이션을 선물하고, 돌아가신 어머니 무덤에 흰 카네이션을 놓는 전통의 시작이다. 한국에서는 1930년대 기독교 단체에서 5월 둘째주를 부모님 주일로 지켜왔으며, 1958년 정부는 5월8일을 ‘어머니날’로 정했다. 이어 1973년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를 포함하는 어른, 노인들을 공경하자는 취지의 ‘어버이날’로 거듭났다.

‘스승의날’에도 선생님께 카네이션을 선물한다. 스승을 존경하는 한국 문화의 산물이다. 1965년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15일을 기념일로 정했다. ‘사은의 선물로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다’는 기사(경향신문 1967년 5월15일)가 실린 것으로 보아 ‘카네이션 선물’은 스승의날 제정과 함께한 것 같다.

5월 특수를 누렸던 카네이션의 가격이 올해는 오르기는커녕 대폭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어버이날과 스승의날을 앞둔 4월부터 밀려들던 주문은 자취를 감추었다. 지난해보다 출하물량을 줄였는데도 가격은 25% 이상 떨어졌다고 한다. 화훼농가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에 따라 수요가 급감했다고 말한다. 5월 초 장기간의 황금연휴에 카네이션을 찾는 이는 더욱 줄었다. 카네이션에 먼지가 쌓인다. 하지만 부모와 스승을 향한 단심은 시들거나 변하지 않기를.


Today`s HOT
폭풍우가 휩쓸고 간 휴스턴 개혁법안 놓고 몸싸움하는 대만 의원들 영국 찰스 3세의 붉은 초상화 총통 취임식 앞두고 국기 게양한 대만 공군
조지아, 외국대리인법 반대 시위 연막탄 들고 시위하는 파리 소방관 노조
총격 받은 슬로바키아 총리 2024 올림픽 스케이트보드 예선전
광주, 울산 상대로 2-1 승리 미국 해군사관학교 팀워크! 헌던 탑 오르기 미국 UC 어바인 캠퍼스 반전 시위 이라크 밀 수확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