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인정 없이 '혁신'경제 가능할까

이완 2017. 5. 7. 16: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국 경제 떠받치는 실리콘밸리의 힘은 '다양성'
애플 등 성소수자 존중.."사회적 책임 아닌 생산성 높아서"

[한겨레] “그래서 동성애 반대하십니까?”(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반대하지요.”(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동성애 반대하십니까?” “그럼요.” (4월25일 대선후보 토론회)

대선 후보자들은 간단한 문답으로 끝냈지만 성소수자 문제는 경제와 훨씬 관련이 깊다. 동성애에 대한 찬반을 떠나 기업 사회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척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 후보들의 경제 공약을 살펴보면 대부분 한국 경제가 더이상 대기업에 의존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소수의 대기업이 한국 경제를 지금까지 이끌어온 역할이 있었지만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까지 달려왔던 기차는 새로운 연료가 필요하다.

4년 전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이른바 ‘창조경제’를 내세웠다. 창조경제는 스타트업 등 창업을 지원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창조경제는 대기업과 함께 창조혁신경제센터를 몇 곳 만들고, 창업 목표 갯수를 채울지에만 관심을 둔채 끝났다. 창조경제는 최순실 국정농단 스캔들과 함께 지워져버릴 상황에 처했다.

미국 애플 정문

곧 들어설 다음 정부는 정규직 남성 위주의 대기업 육성 외에 다른 정책을 내세울 수 있을까? 혁신 기업들이 경쟁하고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오랫동안 벤처기업을 찾아 투자한 이덕준 디쓰리주빌리 대표는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것은 한국만 한 게 아니라, 전세계적인 흐름이었다. 경제를 성장시킬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재벌 위주의 한국 경제 체질을 바꿔야할 상황에서 다음 정부 역시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다.

그러나 대선 후보들의 동성애에 대한 반대 입장은 혁신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다양성을 만들 수 있을지 갸우뚱해진다. 실리콘밸리 지역인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매해 6월 LGBT(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등 성소수자) 퍼레이드가 열린다. 이 퍼레이드에는 애플·페이스북 등 여러 하이테크 기업 직원들이 참여한다. 구글에서 일한 바 있는 ㄱ씨는 "이곳 회사에서는 퍼레이드 참여를 독려한다. 구글은 다양성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글은 다양성을 존중하는게 아니라 장려한다"고 말했다. 이곳은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나오는 사회적 문화적 토대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구글의 다양성 보고서. 소수민족이 얼마나 고용되어 있는지 공개하고 있다.
애플의 다양성 보고서. 홈페이지에 공개된 보고서를 보면 최근 3년 동안 여성과 흑인,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 고용을 꾸준히 늘리며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다양성은 성소수자만을 말하지 않는다. 좀더 넓게 여성과 소수민족 등을 모두 포함한다. 지난달 미국 쿠퍼티노에서 만난 한국인 여성 개발자는 실리콘밸리가 일하기에 훨씬 좋다고 말한다. 한국 대기업에서도 일한 바 있는 그는 “여기서는 소수 민족인데다 여성으로도 차별 받지만 한국에서 여성으로 차별받는 것보다 훨씬 낫다”며 “한국으로 돌아가 일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이곳의 문화는 실리콘밸리의 기업 경쟁력에 영향을 끼친다. 실리콘밸리에서 IT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김동신 센드버드 대표는 “다양성을 존중하다보면 서비스나 유엑스(UX·사용자경험)의 수준이 달라진다. 한국은 80%의 소비자를 향하고 나머지 소비자는 버리지만 여기는 나머지 20%가 너무 많다. 성별, 인종 등 다양한 소수자가 있는데 이들을 버릴 수 없다. 그렇게 고민하다보니 서비스가 매우 세밀해지고 유엑스도 다양해진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서비스가 가능한 글로벌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김동신 대표는 화장실을 항상 크게 짓는 미국의 커피전문점 사례를 들었다. “화장실을 하나 밖에 만들지 못하더라도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게 크게 만든다. 없으면 소송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원칙을 세우면 장애인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다. 원칙과 습관과 문화가 바뀌어야 혁신이 따라온다.”

ㄱ씨도 다양성이 기업의 경쟁력을 키운다고 말한다. “다양성이 있어야 빠른 판단이 가능하고 직원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다양한 서비스 개발이 가능하다”는 그의 설명을 들어보면 회사내에 결정이 필요할때 의견이 하나 밖에 나오지 않는다면 그 방향이 맞는지 안맞는지 알 수 없어 오히려 결정이 지체된다고 한다. 다양한 의견이 나오면 검토가 가능해져 오히려 선택이 빠르다. 또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면 직원의 만족도도 높아진다. 직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어 자신도 존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설명이다. ㄱ씨는 “실리콘밸리 기업이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 때문이 아니라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고 말을 맺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구글 사옥

이번 대선 공약집을 보면 더불어민주당은 ‘혁신 창업국가를 만들겠다’며 “신생기업에 대한 자금 및 판로 지원 확대, 정부의 창업지원 펀드, 모태펀드, 엔젤 매칭펀드 등 지원자금 확대”를 공약했다. 국민의당은 ‘대한민국을 창업국가로 만들겠다’며 “창업 지원 컨트롤타워인 창업중소기업부 설치”를 공약했다. 혁신 생태계를 만든다는 문화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창의적인 스타트업이 예산을 더 지원하고 부처를 만든다고 더 많이 만들어질까. 다음 정부엔 여성과 외국인,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을 줄이는 문화, 소프트웨어에 대한 소프트웨어적인 관점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주주신청]
[▶ 대선 팩트체크][페이스북][카카오톡][정치BAR]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