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없앤 강의실.. 학생들이 떠들썩해졌다
토론·발표·질의응답 활발해져.. 이론은 동영상 강의로 미리 수강
평균성적 10점 향상·점수差 감소
지난 1일 대전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관 '에듀케이션 3.0' 강의실. 좌·우·정면이 칠판과 화이트보드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학생 30여 명이 '전자현미경으로 본 퀀텀닷(Quantum dot·양자점) 입자의 명암은 왜 다른가'라는 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퀀텀닷은 입자 크기가 나노미터(10억분의 1m) 수준의 초미세 반도체 입자인데, 입자 크기에 따라 다양한 빛깔을 내기 때문에 TV 등 디스플레이와 암 진단 등에 쓰인다.
"질량이 달라 명암 차이가 난다" "입자 위에 입자가 겹쳐져 어둡게 보이는 것" "간섭 현상 때문이다"… 학생들이 자기 의견을 앞다퉈 발표하자, 거기에 대한 질문과 답이 이어졌다. 교수는 교재를 설명하고, 학생은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받아 적는 주입식 강의와는 딴판이었다.
◇"강의실에선 강의 말라"
카이스트가 2012년 시작한 '에듀케이션 3.0'은 '강의실에서 강의를 쫓아낸 수업'으로 불린다. 교수가 이론을 설명하는 강의는 동영상으로 제작해 온라인에 올리고, 오프라인 수업은 토론·실습·질의응답·협력 과제 등으로 구성했기 때문이다. 카이스트 관계자는 "당시 '공부에 가장 도움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학생 설문 조사에서 '교수 강의'가 '연습문제 풀기' '교과서 보며 자습하기' '친구들과 토론하기'보다 순위가 밀린 것을 보며 수업 혁신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했다.
에듀케이션 3.0은 '강의실에선 강의 빼고 다 해도 좋다'는 표어를 내걸고 출발했다. 하지만 시행 초기엔 참여 교수가 적어 어려움을 겪었다. "내가 왜 대입 학원 강사처럼 강의 동영상을 찍어야 하냐" "연구할 시간도 부족한데 동영상 촬영 등 강의 준비에 너무 많은 품이 든다" 등 이유로 외면하는 경우가 많았다. 2012년 첫 학기엔 고작 3과목 개설에 그쳤다.
하지만 이 수업을 들은 학생들 사이에서 좋다는 소문이 돌면서 수강생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교수들 사이에선 "학생 중심의 수업으로 바꾸니 조는 학생이 한 명도 없고 참여와 상호작용이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는 평가가 확산됐다.
강의 수가 2014년 102개(2837명), 2016년 141개(3291명)로 급증했고, 올해는 1·2학기 합쳐 150여 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김아영 카이스트 건설 및 환경공학과 교수는 "같은 과목 수업을 강의식으로 했을 때와 3.0 방식으로 했을 때 학생들 점수를 비교해보니 평균이 약 10점 높아졌다"면서 "토론과 협력 중심의 수업이 학생들 간 편차를 줄이고 성적을 고루 끌어올리는 데 효과적이었다"고 말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강의 중심의 기존 수업 방식을 뒤집어 토론과 실습 위주로 배우는 '거꾸로 교실(플립트 러닝·flipped learning)'의 대표적인 대학으로 카이스트를 꼽고 "새 수업 방식을 빠른 속도로 확대한 점이 놀랍다"고 평가했다.
◇호응, 성적 올랐지만 한계도
카이스트 에듀케이션 3.0 수업 비율은 전체 개설 강의의 약 7%(2016년 말 기준) 수준이다. 학교 측은 이 비율을 3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태억 카이스트 교육원장은 "3.0 수업 비율이 전체의 20%를 넘어서면 상당한 시너지가 나타날 것"이라며 "예컨대 학생들이 130학점 가운데 30~40학점을 3.0 수업으로 이수하면 자기 주도 학습과 토론, 팀워크 등에서 큰 효과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모든 과목에 일률적으로 3.0 수업 방식을 도입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기초 과목의 경우엔 배워야 할 양도 많고 확립된 이론이 대부분이라 오히려 토론 위주 수업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정연식 교수(신소재공학과)는 "토론과 협업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면 예상치 못한 질문도 많이 받고 진땀 뺄 때가 많지만 학생들 열의에 보람을 느낀다"면서 "교수 입장에선 '강의 안 하는 수업'이 가장 어렵겠지만 가르치는 사람이 변해야 학생들도 바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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