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결혼 합법화' 독일에서는 표심 잡는 패

권은비 2017. 5. 3.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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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보내는 그림편지] 성소수자도 유권자다

[오마이뉴스 글:권은비, 편집:손지은]

▲ Love is Love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혐오는 사랑을 이길 수 없다.
ⓒ 권은비
얼마 전 독일친구들에게 축하를 받았다.

"너희 대통령 구속되었다며?! 잘됐다! 축하해!"

살면서 이런 종류의 축하는 처음 받아봤기 때문에 기분이 묘했지만 나는 화답하듯 되물었다.

"9월에는 어떻게 될 것 같아? 메르켈이 연임할까?"

다가오는 9월에 독일에서도 중대한 선거(연방의회선거)를  치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철의 여인' 앙겔라 메르켈이 연임을 하느냐 마느냐를 가르는 선거다.

나의 질문에 한 독일 친구는 "좋은 질문"이라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친구가 '좋은 질문'이라고 말한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집에 일찍 가긴 글렀다는 것을...) 나의 질문에 대한 독일 친구의 대답은 이러했다.

"메르켈은 '산수정치'를 잘해. 나는 그게 메르켈이 자그마치 12년 동안 연임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생각해. 이번에는 슐츠(현재 독일 제1 야당인 사민당 총리후보)의 움직임이 흥미롭긴 해."

그렇다. 룰은 간단하다. 산수정치. 소위 '보수'정당인 기민당의 메르켈이 무려 12년 동안 총리로서 연임을 할 수 있었던 대표적인 '산수정치'는 이러하다.

'전국 원자력발전소 폐기'
'난민 수용'
'최저임금 인상'(현 독일 최저임금 8.84 유로, 한화 약 1만1천 원)

사실 앞서 나열한 정책들은 모두 기민당의 기본 정책과는 반대되는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메르켈식 산수정치는 독일 보수정당 출신 총리가 세계적인 진보적 지도자로 평가받는 기이한 현상을 일으켰다. 하지만 독일의 '산수정치'와 한국의 '산수정치'는 어딘가 많이 다르다.

독일 총리 선출의 큰 화두 '동성결혼 합법화'

▲ 독일언론 디 짜이트 (Die Zeit) 화면캡처 독일 사민당 총리 후보가 이번 9월 선거에서 동성결혼을 내세우고 있다는 기사. 기사 속에는 레즈비언 부부가 아기를 안고 있는 사진이 삽입되어있다.
ⓒ die Zeit
유력 독일 언론의 인터뷰 진행자가 앙겔라 메르켈의 대항마로 거론되고 있는 마틴 슐츠(사민당 총리 후보)에게 묻는다.

"당신이 만약 독일총리가 된다면 게이와 레즈비언의 결혼과 입양을 허용할 건가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마틴 슐츠는 대답한다.

"명백하게요."

그는 이어서 자신은 '모든 부부를 위한 후보'라고 말한다. 독일은 2001년부터 동성 커플들의 파트너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어 상속, 부양, 연금, 의료 보험 등의 사회 정책이 적용되지만, 동성결혼은 아직까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한국과는 달리 독일은 결혼이라는 제도가 지배적이지 않아 많은 커플들이 파트너로서 가정을 꾸리기도 한다. 굳이 결혼을 하지 않아도 파트너로서 다양한 사회보장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동성결혼은 아직 인정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마틴 슐츠의 "모두의 부부를 위한 후보" 발언은 '표심'을 잡기 위한 패로 통한다.

현재 독일 연방의회 구성정당인 기민당, 사민당, 좌파당, 녹색당 중 기민당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개의 정당들이 모두 '동성 결혼'을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9월에 진행되는 2017 독일 연방의회 선거 이후, '동성 결혼 합법화' 여부도 결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성소수자도 유권자다

"베를린은 가난하다, 하지만 섹시하다."

위 명언으로 성공적인 도시 마케팅을 했다고 평가받는 전 베를린 시장 클라우스 보베라이트는 커밍아웃한 독일의 대표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이른바 '게이 정치인'을 시장으로 배출한 베를린의 대표 축제는 '옥토버페스트'(맥주축제)가 아니라 '퀴어축제'이다.

매해마다 진행되는 베를린의 다양한 '퀴어 축제'에서는 각 정당마다 부스를 차리고 서로가 성소수자를 위한 정당이라며 캠페인을 벌인다. 독일 보수 정당인 기민당부터 사민당, 좌파당, 녹색당, 해적당은 부스 앞에 무지개 깃발을 걸고, 성소수자를 위한 정책을 홍보한다. 각양각색의 성소수자 역시 독일 정당들에게는 소중한 국민이자 유권자임을 확인해주는 모습이다.

독일 제1 야당인 사민당 부스에서는 정당 로고가 찍힌 콘돔을 무료로 나눠주기도 한다. 어디 정당부스 뿐인가, 경찰, 선생님, 소방관 등 각종 직업별 퀴어동호회 부스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독일 보수정당이자 앙겔라 메르켈의 정당 기민당(기독교민주연합당)이 베를린 퀴어축제 참여하고 있는 모습
ⓒ 권은비
독일에서 나는 소수자다. 아시아인이기 때문이다. 시시때때로 소수자인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독일 사람들을 보면 소수자를 위한 다수자들의 연대가 얼마큼 중요한지 체감한다.

한편 나는 다수자다. 누군가 이성애자가 다수라고 한다면 나는 다수에 속한다. 그러나 누군가 사랑에도 성별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그것이 다수의 원칙이라고 한다면, 나는 소수자다. 사랑은 사랑일 뿐, 사랑에는 국경도 성별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혐오는 사랑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 부디 너무 멀지 않은 시일 내에 독일 친구들에게 또다른 축하를 받길 바라본다.

"한국도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다며! 잘됐다!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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