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파인딩] 분당(分黨) 책임, 문재인? 안철수?

최경호 2017. 5. 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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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 때 후보 단일화 통해 '한배'에 몸 실어
2015년 文 주도 혁신안 둘러싸고 갈등 후 끝내 결별
“당을 쪼갠 것은 안 후보다.”(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당을 쪼갠 것은 문 후보다.”(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후보와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가 2012년 12월 9일 경기도 군포시 산본역에서 열린 유세에서 투표도장을 형상화한 트리 장식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2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한 대선후보 TV 토론회에서 두 사람이 또다시 충돌했다. 문 후보는 안 후보에게 분열의 책임을 물었고, 안 후보는 문 후보의 계파 패권주의를 꼬집었다.
선공에 나선 쪽은 안 후보였다. 그는 “계파 패권주의가 가장 마지막으로 남은 적폐(積弊)라고 본다”며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 돌리기 때문”이라며 문 후보를 직격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2015년 12월 30일 서울 창동성당에서 열린 고(故) 김근태 전 의원 4주기 추모미사에서 만났다. 같은 달 13일 안 의원의 탈당 후 첫 대면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반대방향을 향하고 있다. [중앙포토]
문 후보는 패권세력의 폐해에 공감한다면서도 “국민의당은 안 후보의 당이나 마찬가지 아닌가”라며 “계파 패권주의 (폐해를) 말할 수 있나. (안 후보가) 국민의당 창업주라고 하지 않았나”라고 맞불을 놓았다.

안 후보는 “나와 손학규 전 대표, 최근 김종인 전 대표까지 문 후보를 도왔던 전직 당대표들이 모두 당에서 나왔다”며 “정치인들에게 탈당은 정말 중요한 정치적 결단이다. 그분들 모두 계파 패권주의 때문에 나왔다고 한다”고 재반격했다.

이에 문 후보는 “당을 쪼갠 분은 안 후보”라고 일갈(一喝)했다. 그러자 안 후보는 곧장 “당을 쪼갠 건 문 후보라고 생각한다”고 맞섰다.

2012년 18대 대선 때 후보 단일화를 통해 ‘한배’를 탔던 두 사람이지만 돌아보면 관계는 늘 냉랭했다. 사진 속 얼굴도 씁쓸한 표정이 더 많았다. 아예 시선이 반대방향을 향하는 경우도 있었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5년 12월 13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당을 공식 선언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4년 3월 김한길 대표의 민주당과의 통합을 통해 새정치민주연합을 출범시킨 안 후보는 7월 재·보선 패배로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어 7개월 뒤인 2015년 2월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문 후보는 박지원 의원(현 국민의당 대표)을 누르고 당대표로 선출됐다.

그러나 문 후보는 두 달 뒤 치러진 4월 재·보선에서 0대 4 완패의 책임론에 휘말렸다. 주승용 최고위원(현 국민의당 원내대표) 등 비노 진영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았다. 하지만 당대표 취임 두 달 후 치러진 선거 패배의 책임지고 사퇴한다는 것은 과하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럼에도 당의 내홍(內訌)이 깊어지자 문 후보는 같은 해 7월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을 ‘구원투수’로 등판시켰다. 문 후보가 제안한 혁신위원장직을 안 후보가 수락하지 않자 김 전 교육감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4월 19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린 두 번째 대선 TV 토론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두 달여 동안 계파주의 청산, 시스템 공천을 골자로 하는 혁신안을 내놓았다. 혁신안은 당의 조직강화특위 의결, 중앙위원회 승인을 거쳐 당헌·당규에 명시됐다.

그러나 안 후보는 김 위원장의 혁신안을 ‘실패’로 규정하고 ‘낡은 진보 청산’, ‘부정부패 척결’, ‘새로운 인재 영입’이라는 자신의 혁신안을 제시했다.

이에 문 후보는 안 후보에게 당의 인재영입위원장·수권비전위원장직을 제안했다. 하지만 안 후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문 후보는 ‘문·안·박 연대’(문재인, 안철수, 박원순)라는 공동지도체제 구성을 다시 제안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수락했지만 안 후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 2015년 文 당대표 당선 이후 평행선 달려와

안 후보는 문 후보의 대표직 사퇴를 전제로 하는 ‘혁신전당대회’를 역(逆)제안했다. 총선이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열자는 주장이었다.
5월 9일 치러지는 제19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 [중앙포토]
안 후보는 혁신전대가 수용되지 않으면 “정치적 결단을 하겠다”고 했다. 문 후보는 총선을 앞두고 전당대회를 열 수 없다면서도 안 후보의 탈당은 만류했다.

하지만 안 후보는 12월 13일 끝내 탈당을 선언했다. 이후 호남을 중심으로 한 ‘반문(반문재인)’ 의원들이 안 후보 쪽에 합류하며 이듬해 2월 국민의당이 탄생했다.

4·13 총선에서 예상을 깨고 민주당이 123석으로 원내 1당, 국민의당이 38석으로 원내 3당을 차지한 뒤로 두 사람의 관계는 더 냉랭해졌다. 문 후보는 안 후보를 분열세력으로, 안 후보는 문 후보를 패권세력으로 낙인을 찍으며 대권 경쟁에 들어갔다. 지난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를 통해 ‘한배’를 탔던 두 사람이지만 2015년 문 후보가 당대표에 선출된 이후 완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일련의 TV 토론회는 둘의 관계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자리였다.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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