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이슈에 발끈하는 남성들

입력 2017. 5. 3. 10:0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ㆍ‘오히려 남성에 대한 역차별 만들고 있다’며 반감 표현

대통령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각 대선주자에 대한 글이 많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커뮤니티의 목적은 각자 다르지만, 대선 기간만큼은 비슷한 주제의 글들이 많이 올라온다.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주사용층은 청년 남성들이지만, 실제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사람 숫자를 보면 이용층의 분포는 다양할 것으로 보인다.

웹사이트 순위 집계 서비스 시밀러웹(SimilarWeb)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으로 한국의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중 가장 순위가 높은 곳은 디씨인사이드, 루리웹(게임), 오늘의유머(유머), 클리앙(IT정보), 일간베스트(디씨인사이드 파생) 5곳이다. 다양한 커뮤니티의 집합소 성격이 강한 디씨인사이드를 제외하면 뽐뿌(쇼핑)가 5위로 올라온다.

상위권 온라인 커뮤니티 5곳 중 일간베스트를 제외한 4군데는 청년 남성층의 정치성향과 비슷하게 야권 대선후보에 대한 선호가 강하게 드러난다. 특히 게시물 검색 시스템이 잘 갖춰진 오늘의유머의 베오베(베스트 오브 베스트) 게시판에 각 대선주자의 이름을 넣어보면 문재인 민주당 후보 관련 글이 질적인 측면에서나 긍정적인 측면에서나 다수를 이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4월 21일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가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성평등 정책 간담회에서 성평등 서약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 권호욱 기자

‘문재인 지지 철회’ 외친 세 번의 사건

하지만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문재인 후보의 모든 면을 무조건 지지해온 것은 아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문재인 지지 철회’를 외친 사건이 세 번가량 있었다.

첫 번째 지지 철회 움직임은 남인순 의원이 문재인 캠프 여성본부장으로 임명된 3월 14일 무렵부터 있었다. 주요 커뮤니티에서는 남 의원이 메갈리아와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며 “이게 뭐냐. 진짜 캠프에 메갈을 왜 넣냐”(ㄷ커뮤니티)는 식의 반응이 많았다. ㄴ커뮤니티의 경우 “남인순이 왜 메갈이냐. 무슨 근거로 확정적으로 이야기하냐”는 글에 “남인순이 선 그은 적도 없다”, “페미니즘에, 메갈에 편승해서 이미지가 굳어졌기 때문에 자업자득이다”라는 말이 댓글로 달리기도 했다. 여성운동가 시절 남윤인순이라는 이름을 쓰던 남 의원은 지난해부터 ‘남인순’으로 쓰고 있으며, 메갈리아에 대해 특별히 발언한 바가 없다.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남 의원의 여성운동가 이력 자체를 문제삼았던 것이다.

두 번째 문재인 지지 철회 물결은 4월 21일에 있었다. 이날 문 후보는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성평등정책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문 후보는 “여성의 관점에서 차별은 빼고 평등은 더하겠다”고 발언했다. 문제는 이날 보도로 나온 문 후보의 성평등 공약의 내용이었다. 성별 임금격차 해소, 데이트 폭력 근절 등 여러 가지 정책 중에 커뮤니티 이용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여성 청년고용 할당제’와 ‘남녀 동수 내각 구성’이었다.

사실 이날의 정책 내용이 언론의 큰 주목을 받은 것은 아니다. ‘여성 청년고용 할당제’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것도 아니었고, 다른 후보들이 문제삼지도 않았다. 하지만 문 후보 지지성향이 높았던 ㄷ커뮤니티에서조차 “이래놓고 문제가 없다는 건 맹목적 지지다”,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 이건 아니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한 이용자는 여성 청년고용 할당제에 대한 팩트체크를 하겠다며, 앞으로 공공기관 신입채용을 무조건 남녀 동수로 한다면 200만명 가까운 남성들이 피해를 본다는 주장을 펼쳐 수십 개의 추천을 받았다.

아무리 본인들이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라 할지라도, 여성운동가 출신 정치인을 캠프에 합류시키거나, 성평등 공약을 발표하면 박수를 받지 못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남성들은 성평등 이슈에 왜 이리도 민감한 것일까. 2년 전 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남성의 삶’ 연구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2015년 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남성의 삶에 대한 기초연구’는 남성들의 말과 경험을 통해 남성들이 온라인 상에서 여성들이나 여성정책에 반감을 표하는 이유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인 15세에서 35세 사이의 남성 1200명 중 83.7%는 김치녀, 된장녀 등 여성혐오적인 표현을 접한 바가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응답자의 54.7%는 이런 표현에 대해 공감한다고 답했다. 초점 집단 인터뷰에 참가한 청년층 남성들은 ‘이제 남녀 사이의 사회적 차별은 사라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양성 간의 차별이 없는 상황에서 여성가족부가 오히려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만들고 있다는 반응이 컸다.

“여성들은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

초점 집단 인터뷰에 응답한 남성들은 특히 여성가족부나 여성정책에 대한 반감을 표현했다. 26세 남성 김모씨는 “여성 할당 같은 거 왜 만드는지 잘 모르겠다. 남자도 힘든 건 똑같은데 여자에 대해서 기계적인 평등에 입각하는 걸 마련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1세 남성 민모씨는 “여성들이 더 이상 약자가 아닌데 자꾸 여성부에, 수백 개의 여성단체까지 존재하니까 여성편향적인 정책에 반대를 하고 싫어한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녀 사이의 차별이 없어졌다는 주장은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서도 커뮤니티의 중심 여론이 쉽게 부정적인 태도를 드러내기도 한다. 4월 25일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는 홍준표 후보의 “동성애는 국방 전력 약화로 이어지는데, 동성애에 반대하느냐?”는 질문에 단호한 어투로 “반대합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성소수자 단체들이 문 후보의 회견장에서 기습시위를 벌이는 등 항의했고, 4월 27일 문 후보는 “성소수자들에게 아픔을 드려 송구하다”며 사과했다.

이때만큼은 ‘문재인 지지 철회’보다는 성소수자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컸다. 성소수자들의 항의시위를 들어 “홍준표에겐 찍소리도 못하는 동성애 단체들”(ㄴ커뮤니티)이라든가 “제도적 차별에 대해서는 논의를 해봐야 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동성결혼은 유보될 이유가 충분히 있다”(ㄱ커뮤니티)는 의견과 일부 성소수자 단체의 시위를 보고 성소수자 전체를 매도해선 안된다는 의견이 팽팽히 갈렸다.

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남성의 삶에 대한 기초연구’는 남성 청년층의 여성 혐오적 표현을 청년층 남성에 대한 국가의 지원으로 풀어야 한다는 해답을 제시했다. 온라인 상의 표현을 단속하는 것만으로는 실재하는 성대결 구도를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정책연구원은 기존의 군가산점제가 아니라, 제대군인 모두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제대군인에 대한 보상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한 연구원은 남성뿐만 아니라 모든 청년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일자리, 결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며 “개인들이 힘든 취업, 치솟는 집값 등에 직면하는 상황에서 좌절적인 분노가 사회적 약자를 향한 조롱, 분노로 표출된다”고 지적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신문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