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합리적 보수' 대표했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보수 몰락했지만 제대로 된 보수 탄생 기대"

2017. 5. 3. 10:0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보수가 존재감을 잃은 대선이다. 한때 ‘합리적 보수’를 대표했던 인물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보수 정치권을 향해 날카로운 비판들을 쏟아냈다. 보수성향 유권자들의 표심이 요동치게 만든 책임은 민심의 변화를 읽어내지도 못했고, 그에 대비하지도 못한 보수 정치권의 “자업자득”이라는 것이다. 그와 함께 윤 전 장관은 지지율 1·2위를 달리는 야권 후보들의 한계도 함께 지적했다. 윤 전 장관과 한때 같은 배를 탔던 이력이 있는 이들 후보 역시 자신의 정치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민심의 선택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쓴소리다.

이번 대선은 독특하게 여야 구도 없이 치러진다. 먼저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을 꼽는다면.

“보수가 몰락한 최초의 선거라는 점이다. 보수 정치권에서 유력 후보 없이 치르는 선거가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알고 있는데, 보수가 몰락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는 환골탈태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이젠 제대로 된 보수를 기대할 수 있다는 그런 의미 말이다.”

보수의 몰락이 제대로 된 보수 후보가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보수의 기반이나 정치적 환경이 변해서일까.

“인물 문제를 놓고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차기 인물로 반기문 유엔 전 사무총장에게만 매달렸던 것이 화근이다. 민심은 사나워져서 과거의 새누리당을 지지할 생각을 안하고 있는데, 그 중의 일부가 나와서 새로 정당을 만들어 한 일이 반 전 총장을 기다린 것밖에 없지 않았나. 반 전 총장 외에 대안이 없으니 새 인물을 키울 생각도 없고, 스스로가 클 생각도 없으니 이 꼴이 난 것이다. 또 하나, 시대 변화에 둔감했던 것도 문제다. 보수 유권자 수가 진보보다 더 많고 광범위한데 이들이 종전의 성향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보고 영합하면 완전히 몰락한다. 보수주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가 ‘소나무가 늘 푸른 것은 잎을 끊임없이 바꾸기 때문’이라고 말했듯 보수의 가치를 시대에 맞게 계속 재해석하며 바뀌어야 한다. 과거처럼 국가주의 같은 가치에 안주하면 뒤처진다.”

보수진영에서 새로운 인물이 자라지 못한 이유가 뭘까.

“원래 막강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제 하에선 차기 인물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안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면 외에 다른 쪽에서 보면, 원래 보수진영에도 잠재력이 있는 인물은 있었지만 보수 쪽의 체질이나 문화가 권력에 순응해 편하게 다음 권력을 얻는 데 익숙해진 측면이 있다. 이런 정치적 전환기를 맞았는데 소장 정치인 중에 성장하고 싶은 의욕이나 사명감을 보이는 사람이 없다시피 한 것도 그런 문화 속에서 타성이 붙은 탓이다.”

보수가 힘을 잃은 상황에서 남은 대선 기간 동안 변수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

“먼저 이기는 쪽에서는 실수 안 해야지. 요즘 너나 없이 하는 얘기가, 보수성향 유권자가 어디를 지지할지 여론조사에 반영되지 않아 ‘샤이 보수’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한동안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가 최근 TV토론을 보니 실망해서 믿음이 안 간다고 판단한 부동층이다. 그렇다고 다른 후보 지지로 돌아서진 않았는데, ‘문재인은 안된다, 그런데 안철수는 믿음이 안 가고, 그렇다고 홍준표를 찍기도 그렇고…’ 이렇게 생각이 복잡한 보수층이 어떻게 태도를 결정하는지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선거를 많이 치른 입장에서 느끼는 ‘감’으로 볼 땐 어떤가.

“선거는 ‘감’으로 치르면 망한다. 선거는 과학이다. 선거 때마다 다선 의원들이 자신의 ‘감’으로 밀어붙이지만 정작 민심을 몰라서 틀린다. 과학적으로 보려면 대통령 선거 2년 전부터 한 달마다 유권자 바닥 민심을 들여다보면 된다. 전국에서 1000명 대상으로 조사하면 선거에 필요한 정보가 다 나온다. 400억~500억원 쓰는 대선에서 1억원만 들여도 민심을 다 알 수 있는데 정당에서는 이렇게 안하고 있다. 그저 추세 보는 정도로 주먹구구로 하고 있다.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과 변하는 것, 그 속도와 추동원인까지 2년간 조사하면 다 알게 되고 홍보전략도 그에 맞출 수 있는데 안하고 있다.”

최근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것 등을 비롯해 여론조사의 예측력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지 않나.

“내가 말한 여론조사는 유권자들의 잠재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게 전문가들이 조사방법론을 구성해 정밀하게 조사하는 방식이다.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선될 때 그 방법으로 해보니 1%포인트 차이로 결과를 맞췄다. 최근의 여론조사에 대해서는 정밀하게 보지 않아 장담은 못하지만, 방법론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 있고 응답률이 낮아 표본이 제대로 추출됐는지의 문제도 있어 정확도를 신뢰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주제를 바꿔서, 이번 대선에서 나타나는 시대정신은 어떤 것이라고 보는지.

“시대정신이라는 게 눈에 보이는 실체는 없긴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다수 국민의 희망과 기대, 요구, 그게 민심으로 나타나 시대정신으로 해석되는 것이라고 본다. 탄핵국면에서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의 요구는 즉각적인 퇴진이었지만, 그 바탕에 있는 근본적 요구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국가’로 바꾸라는 요구였다. 각 대선후보마다 바꾸겠다는 방법론은 다를 수 있다. 이를테면 문 후보가 적폐 청산을 얘기하듯이 과거에 쌓인 모순을 해소하지 않고는 변화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청산을 말하면서 정작 적폐의 실체가 뭔지, 어떻게 청산할 것인지는 말을 안해서 결국 ‘인적청산’으로 받아들여졌다. 때문에 산업화 시대 구성원들의 반발심리가 커졌다.”

문 후보는 본선에 들어오면서 ‘적폐 청산’ 대신 ‘통합’ 구호를 외치는 전략으로 바꿨는데.

“그런데 그 ‘통합’의 개념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아무나 한 그릇에 담는 게 통합인가? 한국 사회에서 국가라는 공동체가 해체될 정도로 갈등이 심해져서 그것을 완화하고 봉합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인정한다. 그런데 갈등의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소해서 대통합을 이룰지에 대한 방법이나 개념을 밝히지 않았다. 인물 영입만 하는 게 진짜 국민 통합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선거마다 등장하는 갈등이나 대결구도도 변해서 지역구도 대신 세대구도가 더 두드러지고 있다.

“세대 간의 균열은 과거에도 있었던 구도인데 다른 요인들이 묽어지면서 더 두드러져 보이게 됐다. 거기에 영남과 호남 양쪽 다 대표후보가 없다는 점도 지역구도를 묽게 한 요인이다. 또 보수 정치권을 대표할 만한 후보가 없다는 점도 그렇다. 보수 쪽 대표후보가 있었으면 갈등이 좀 더 첨예해졌을 텐데, 그렇지 않다보니 세대구도가 두드러진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지역구도가 주춤하지만 내년 지방선거에선 다시 지역구도가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선을 계기로 지역구도가 묽어지긴 해도 완전히 없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지금의 다당제 구도에서 다시 선거 연대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양당제로 움직이려는 힘이 작용하고 있다. 다당제로 가면 연정이 불가피하니까 새로운 민주제를 실험할 가능성도 있지만, 거대 양당 중심의 기득권 구조로 돌아가면 대의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폐해가 반복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개헌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인지.

“내가 전부터 일관되게 말해 온 것은, 개헌은 물론 해야 하지만 정치세력들과 정치학자들만의 논의로 개헌이 추진된 뒤 국민투표만 거쳐서 끝나버리면 안 된다는 말이다. 국민들이 개헌논의의 모든 부분에 참여할 수 있게 모든 논의과정을 1년이든 2년이든 열어두고 국민 의사를 받아서 개헌을 진행해야 한다. 대통령 임기나 구조만 바꾸는 이른바 원포인트 개헌 같은 안에는 개인적으로는 찬성하지 않는다. 제헌 이후 개헌을 9번이나 했기 때문에 국민들에겐 헌법이 국가의 최고규범이라는 인식이 약하다. 국민이 볼 때 개헌이 또 정치세력 개편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을 주면 안된다. 개헌은 선거 후 후임 대통령 임기 중 해야 한다.”

차기 정부의 우선과제로는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당면한 시급 과제는 이미 나와 있다. 먼저 한반도 평화 문제가 다급하다. 또 하나,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도 해결해야 한다. 이대로 두면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걱정이 든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공정하고 정의로운 국가’를 만드는 과제를 수행할 수 없다. 두 문제는 정치가 해결하는 것이다. 국민의 뜻을 모아 절차와 제도에 따라 하면 된다. 그런데 대의제도가 파탄나 국가 통치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그 결과 국가가 효율적으로 통치되지 않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앞서의 시급한 두 과제를 해결하려 해도 효율적 통치구조로 개편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국회의 현 의석 구도를 보면 대통령제 하에서 연정이라는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하는데 쉬워 보이지 않는다. 과거 DJP연대도 종반에는 결과가 좋지 못했다. 요즘 ‘협치’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됐지만 문제는 협치를 말하는 사람들도 그 뜻을 명확히 안 밝히고 있어 어떤 협치인지 알 수가 없다.”

시급한 과제로 꼽은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후보들 간에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북한이라는 체제는 양면성이 있다. 적이자 동포이고, 헌법에서 명시된 내용과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된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한 관계’라는 내용의 양면이 있다. 이 점이 북한 문제를 다룰 때 항상 곤혹스러운 지점인데, 이를 빌미로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것은 치졸하다고 생각한다. 주적이란 군사용어이지 정치용어는 아니다. 그럼 적이기만 하고 동포는 아닌 건가. 북한과 미국 간 갈등이 고비에 처했으면 대선후보들의 안보논쟁은 사안을 구조적으로 봐서 한반도 미래를 위한 담론이 나와야지, 주적이냐 아니냐 같은 문제가 주된 쟁점이라니 딱하다.”

문 후보와 안 후보 두 후보의 캠프에 몸 담은 적도 있는데 가까이서 본 그들에 대한 평가는.

“문 후보는 전혀 모르다가 지난 대선 전 잠시 만난 게 전부다. 국민통합위원회 공동위원장은 맡았지만 접촉 기회가 거의 없어서 잘 모른다. 그런데 문 후보는 안 후보 지지율이 빠져서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지 본인의 확장성으로 격차를 벌린 게 아니다. 5년 전 후보가 다시 나왔고, 다른 사람들보다 준비할 여유가 있었는데도 40% 벽을 못 뚫는 건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안 후보는 문 후보보다는 더 많은 시간 접할 기회는 있었다. 안 후보는 당을 창당한 지가 얼마 안되고, 내부 체계가 잡히기 전에 대선을 맞은 터라 문 후보에 비해 불리한 상황이다. 선거 경험도 없고 정치를 안 해봤으니 그게 한계다. 지지도가 상승한 계기도 절대적 지지표가 아니고 부동층 표가 온 건데, 표가 왔을 때 부동층을 잡지 못한 한계를 보인 것이다. 구조적인 딜레마도 있다. 호남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흡수하려는 건 보수 지지층 표다. 딜레마를 안고 출발한 한계가 있지만 하기에 따라 극복 못할 난제까진 아닌데도 못하고 있다.”

제3지대론은 현 시점에서 볼 때 결국 실패했는데 이유가 뭐라고 보나.

“이미 그에 대해 여러 분석이 나왔고 다 일리가 있다.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 한국 정치에서 제3지대 빅텐트론은 사람 문제다. 빅텐트의 중심인물이 누구냐 하는 문제이고, 그런 인물로 치면 김종인만한 인물이 없었는데 시기가 너무 늦었다. 직접 나설 생각이면 진작에 나서고,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했어야 했다. 한국에서는 제3지대가 성공한 예가 없다지만, 지금 상황은 과거 실패 상황과 달라서 꼭 실패할 이유도 없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인터뷰·윤호우 편집장 정리·김태훈 기자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신문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