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0 월드컵 특집 ⑧] '나이지리아전 기적' 백지훈, "스무살, 가장 행복했던 날"

서재원 기자 2017. 5. 3. 05:1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터풋볼] 또 하나의 축제와 감동이 시작된다. 디에고 마라도나, 티에리 앙리, 리오넬 메시 등 수많은 슈퍼스타들을 탄생시켜온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이 한국에서 개최된다. `인터풋볼`은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개막을 맞아, 매주 수요일마다 대회와 관련된 주제를 하나씩 선정해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 또한, U-20 월드컵을 뛰었던 축구 스타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들에게 들려 드릴 예정이다.[편집자주]

0-1로 패색이 짙던 후반 44분 아크 정면 프리킥 상황. 박주영(31, FC서울)의 오른발을 떠난 공이 그림 같이 휘어지며 골문 구석에 꽂혔다. 드라마는 끝이 아니었다. 3분 뒤, 기적 같은 결승골이 터졌고 한국은 짜릿한 역전승으로 경기를 마쳤다. 나이지리아전 3분의 기적. 2004년 네덜란드 대회에서 한국 축구 역사에 최고의 경기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명승부가 펼쳐졌다.

그 기적의 마침표를 찍은 주인공은 바로 백지훈(32, 서울 이랜드FC)이었다. 당시 대표팀의 주장이자 기적의 주인공인 그를 만나 12년 전의 이야기를 꺼내봤다. "12년 전 U-20 월드컵이요? 당연히 기억하죠. 개인적으로 가장 행복했던 대회였어요. 친구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죠." 12년 전의 기억을 되새기던 백지훈은 인터뷰 내내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 U-20 월드컵은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 역사상 가장 주목 받던 대표팀...박주영의 존재

2005년 네덜란드 대회는 한국의 U-20 월드컵 역사 중 가장 이슈를 끌었던 대회였다. 아시아 예선부터 전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축구 천재` 박주영의 존재 때문이었다. 혜성처럼 등장한 박주영은 아시아 예선에서 6골 2도움의 맹활약을 펼치며 전국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특히 중국과 결승전에서 수비수 3명을 제치고 득점을 성공시키는 장면은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당시 박주영에 대한 기대와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아시아 예선 이후 열린 카타르 국체 청소년 대회에서도 4경기 9골을 몰아치는 괴물 같은 득점력을 과시했다. 백지훈을 비롯해 김진규, 김승용, 이강진 등 스타들이 즐비했던 세대였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오직 박주영에게만 집중됐다.

"제가 생각해도 역대 U-20 월드컵 중 가장 관심이 많았던 대회 같아요. 저희 다음 대회에 (기)성용이나 (이)청용이가 나왔는데, 그만큼의 관심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해요. (박)주영이 덕이 컸죠. 주영이 덕분에 언론에 노출이 많이 됐어요. TV중계뿐만 아니라 매스컴의 관심이 뜨거웠죠."

어쩌면 주장 백지훈에게 박주영의 존재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그는 박주영 하나가 아닌 21명의 선수들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시기, 질투도 없지 않아 있었어요. 어린 친구들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죠. 주영이가 언론과의 인터뷰를 꺼려하니, 다른 동료들을 이용해 취재하려는 분들도 계셨거든요. 어린 선수들에겐 상처가 됐죠."

팀 분위기가 안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최상이었다. "그래도 주영이가 없었다면 팀 전체가 그만큼의 관심을 받지도 못했을 거예요. 선수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고,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했어요. 오히려 주영이 때문에 빛을 보는 친구들도 있었으니까요. 주영이도 선수들이랑 있을 땐 말도 많이 했고 분위기를 잘 이끌었어요."

# 죽음의 조...나이지리아전 3분의 기적

한국은 스위스, 나이지리아, 브라질 등과 F조에 포함됐다. `죽음의 조`였다. 하지만 자신감이 넘쳤다. 아시아 예선뿐 아니라 준비 과정 모든 게 순조로웠다. 무엇보다 팀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16강에 당연히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팀 분위기가 너무 좋았거든요. 누구 하나 모난 행동을 하는 선수도 없었고, 친구들이 고참이었던 (김)진규와 저의 말을 너무나 잘 따라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친구들과 했던 기억들이 너무나 소중했고 행복했습니다."

한국의 첫 상대는 스위스였다. 전반 25분 신영록(30)이 선제골을 넣었지만 전반 28분과 33분 고란 안티치와 요한 폴란텐에게 연속 실점을 허용하며 1-2로 무릎을 꿇었다. "1-1로 비긴 거 아니었나요? 사실 스위스전은 정확히 기억이 안나요. 스위스에 아스널 소속에 요한 주루, 필리페 센데로스가 있었다는 것만 기억이 나네요. 어떤 선수기에 빅클럽에서 뛰나 궁금했어요."

백지훈에겐 나이지리아전의 기억이 너무나 강했다. 그에게도 잊을 수 없던 경기였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에 존 오비 미켈이 있었어요. 박성화 감독님께서 (오)장은이에게 전담 마크를 시켰던 걸로 기억해요. 미켈은 패스, 드리블 등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너무 쉽게 쉽게 볼을 차는 거예요. 그때서야 `정말 잘하는 선수구나`라고 느꼈죠."

"후반 44분 주영이가 프리킥을 차기 직전이었을 거예요. 나이지리아가 미켈을 빼더라고요. 그쪽을 지켜봤는데 이미 승리 세리머니를 하고 있었어요. 미켈이 벤치로 들어가면서 한명씩 하이파이브를 했고,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너무 화가 났고 그때의 장면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 스스로에게 자극이 됐던 것 같아요."

한국 선수들에겐 굴욕 같은 장면이었다. 복수심 때문이었을까. 이어진 프리킥에서 박주영의 동점골이 터졌다. 복수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후반 48분 박주영의 슈팅이 골키퍼의 손을 맞고 튕겨나갔다. 백지훈은 마치 다음 상황을 예측했듯이 달려들었고 곧바로 왼발 슈팅을 때렸다. 그의 발을 떠난 공은 골키퍼와 골대 사이 작은 공간을 관통했고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왠지 골키퍼 맞고 튕겨 나올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무작정 달려들었어요. 거짓말이 아니라 그 순간 골키퍼와 골대 사이에 작은 틈이 보였어요. 넣어야지 보다는 `에라 모르겠다`고 찼는데 골이 들어가더라고요."

골을 확인한 백지훈은 마치 포효하듯이 내달렸다. 이에 백지훈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었어요. 너무 좋아서 힘들어 죽겠는데 엄청 경기장을 뛰어다녔죠.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런 힘이 나왔는지 모르겠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 브라질전 완패...3년 뒤 기약과 A대표팀

"나이지리아전에서 그런 승부를 펼쳤으니 자신감이 넘칠 수밖에 없었어요. 선수들끼리 더 똘똘 뭉쳤고, 브라질전을 정말 잘 준비하게 됐죠."

하지만 기적은 더 이상 없었다. 한국은 전반 9분 만에 실점을 허용했고, 후반 초반 추가실점을 하면서 무릎을 꿇었다. "브라질은 정말 강했어요. 경기를 뛰면서 이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경기 내용도 브라질이 일방적이었어요. 경기 중에 진규랑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했던 기억도 나네요."

1승 2패. 한국은 조 3위를 차지했지만 골득실차로 밀려 16강행 와일드카드에 뽑히지 못했다. 목표했던 16강 진출에 실패한 것. 허나 대회가 끝나도 팀 분위기가 쳐지진 않았다고 한다. 그들에게 U-20 월드컵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대회가 끝나고도 분위기가 좋았어요. 감독님께서도 격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선수들끼리도 `수고했다`고 서로를 격려했어요. 이 친구들이 그대로 3년 뒤 올림픽(2008 베이징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나이대였는데, `올림픽에서 잘 하자`라고 다짐했죠."

U-20 월드컵은 백지훈을 세상에 알린 대회였다. 축구 팬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대회 직후 9월에 A대표팀의 부름을 받았다. 1년 뒤에 박주영, 김진규 등과 함께 2006 독일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U-20 월드컵은 저를 알릴 수 있는 대회였어요. 프로 선수 생활 중이었지만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죠. 골을 넣는 포지션도 아니었기에 저를 아는 사람들도 많이 없었어요. 그런데 U-20 월드컵 이후 A대표팀에도 뽑히고, 월드컵에도 나가게 됐죠."

# 2005년의 백지훈이 2017년의 후배들에게

2017년 대표팀의 상황은 12년 전인 2005년과 비슷한 점이 많다. `바르셀로나 듀오` 이승우와 백승호에게 집중된 관심은 12년 전 박주영의 그것과 유사하다. 백지훈은 "선수이기에 신경 쓰일 수밖에 없어요. 어린 나이엔 더 그렇죠. 저 역시도 그랬어요"라면서 "그런데 저는 세계 대회가 끝나고 관심을 받게 된 케이스에요.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고요. 지금의 후배들도 너무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았으면 해요"라 조언했다.

"개인이 아닌 팀을 위해 뛰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세계 각국의 에이전트들이 경기장을 찾을 거예요. 그런데 저도 누군가 저를 보러왔다고 하면 경기가 잘 안 풀리더라고요. `내가 아닌 누군가를 보러오는 경기`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백지훈은 후배들에게 뼈있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백지훈 역시 이번 대표팀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그는 "어린 친구들이 저 때보다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저희 때는 강팀과 붙을 때, 6대 4 또는 7대 3으로 밀렸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상대도 어린 선수들이기에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같은 이름에 괜히 쫄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충분히 승산 있다고 봅니다"고 이번 대회 전망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무래도 한국에서 대회가 열리다보니 홈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길 바랍니다. 부담감 없이, 소속팀에서 하듯이, 자기가 하는 것만큼만 보여주면 돼요. 다시 말하지만 개인이 돋보이려 하다보면 역효과가 날 수 있어요. 오히려 팀을 망칠 수도 있죠. 모두가 팀을 위해서 뛴다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고 신태용호를 응원했다.

글= 서재원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KFATV 캡쳐

해당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1J-lideO75Y

Copyright ⓒ 인터풋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인터풋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