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3일)은 ‘부처님 오신 날’, 즉 석가탄신일입니다. 그런데요. 많은 사람이 아무렇게나 쓰는 ‘탄신일’은 좀 이상한 말입니다. 한마디로 바른말이 아닙니다.

그런 ‘탄신일’이 널리 쓰이는 것은 사람들이 한자말 ‘탄신’의 뜻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말을 꽤 안다는 신문·방송 기자들까지 “석가 탄신을 경하한다”라거나 “세종대왕 탄신을 기념한다” 따위로 쓰는 일이 흔하지요.

하지만 ‘탄신(誕辰)’은 “임금이나 성인이 태어난 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辰’이 “때, 날짜, 하루” 등의 뜻을 지닌 ‘신’자입니다. 해마다 5월 15일이면 찾아오는 ‘스승의 날’이 바로 세종대왕의 탄신이죠.

우리가 기념하고 경하해야 하는 것은 세종대왕의 ‘탄생’이지, 세종대왕의 ‘생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3·1절을 기리는 것은 3·1운동에 담긴 나라사랑의 정신이지, 1919년 3월 1일 자체는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탄신’은 다른 말로 ‘탄일’ ‘생일’ ‘탄생일’로 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종대왕 탄신을 기념해 열린 과거시험에서…” “우남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탄신 기념식이 열렸다” 등의 예문에서 보이는 ‘탄신’은 ‘탄생’을 잘못 쓴 것입니다.

그리고요. ‘탄신’을 ‘탄신일’로 쓰는 사람도 참 많은데요. 아마 ‘탄신’을 ‘탄생’의 동의어로 생각하고 그리 쓰는 듯합니다. 그러나 ‘탄신’의 동의어는 ‘생일’(정확히 말하면 ‘탄신’이 ‘생일’의 높임말임)이므로, ‘탄신일’이라고 쓰는 것은 ‘생일’을 ‘생일일’로 쓰는 것과 같은 꼴입니다. 당연히 이상합니다. ‘탄신일’은 ‘탄일’이나 ‘탄생일’로 써야 합니다.

그러면 ‘석가탄신일’이라는 말도 쓸 수 없을까요? 아닙니다. 쓸 수 있습니다. ‘탄신일’은 옳지 않은데, ‘석가탄신일’을 쓸 수 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1970년대 들어 ‘예수님이 태어난 12월 25일은 공휴일로 삼으면서, 왜 우리가 예부터 믿어온 부처님이 태어난 날은 공휴일로 삼지 않느냐’는 불교계의 비난이 거셌습니다. 한 불교신자가 행정소송까지 제기했지요.

그런데 당시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이를 ‘이유 없다’며 각하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에 계류 중인 사안을 1975년 정부가 받아들여 국무회의에서 법정공휴일로 지정·공포했습니다. 이때 붙인 이름이 ‘석가탄신일’입니다. 우리말에 대한 지식이 ‘까마귀’급이던 국무위원들이 모여서 정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아무튼 이 때문에 ‘탄신일’은 바른말이 아니지만 ‘석가탄신일’은 고유명사가 됐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석가탄신일’ ‘부처님오신 날’과 ‘충무공탄신일’이 고유명사로 올라 있습니다.

그러나 ‘탄신일’은 어느 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습니다. 특히 ‘성탄절’을 ‘성탄일’로는 써도 ‘성탄신일’로 쓰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탄신일’은 분명 바른말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