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선주자들이 ‘방산비리 척결’을 많이 강조하고 있다. 통상 ‘방위산업’(防衛産業), 줄여서 ‘방산’(防産)은 군이 필요로 하는 무기체계나 장비를 연구개발(R&D)ㆍ생산하는 국내 업체들의 집합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방산비리’를 정의해보면, 그것은 군과 방산업체가 결탁해 부정을 저지르는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15년 방산비리 합동수사단(이하 합수단)이 전ㆍ현직 장성급 11명 등 77명을 기소하면서 방산비리 액수가 1조원에 달한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이후 국방부, 각 군, 방위사업청 등 관련 기관들이 이에 제대로 된 대응을못해 ‘방산비리 규모 1조 원’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고착화됐고 지금까지 많은 국민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2015년 합수단이 발표한 ‘방산비리 규모 1조 원’은 해상작전헬기, 통영함, 소해함, K-11 복합소총, 정보함 등을 비롯해 문제가 제기된 11개 사업의 총사업비를 합친 금액이다. 실제 소송가액은 1225억 원(합수단 발표 금액의 12%)이며, 현재까지 대가성이 확인된 뇌물수수액은 2.62억 원에 불과하다.
이런 국민적 인식은 1993년 율곡사업과 관련된 ‘린다 김 사건’ 등 과거 대형ㆍ권력형 비리사건의 트라우마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영향으로 무기체계 및 장비의 연구개발ㆍ생산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비리 개연성만 보고 의심하거나, 사실 관계를 무시하고 부정ㆍ비리로 간주하는 경향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그렇지 않다. 일례로 미 해군의 경우 구축함 건조과정에서 평균 2600여 개의 크고 작은 결함이 발생하고 있다. 치명적인 결함이 150여 개, 기타 사소한 결함이 2100여 개 정도다. 그럼에도 미국은 이를 부정ㆍ비리로 보지 않는다. 결함이 있더라도 일단 해군이 인수해 1~2년여의 해상 시험평가기간 동안 그런 결함들을 시정해나가는 방식으로 사업관리를 하고 있다. 이는 전력화가 지연된 100점짜리 함정보다 성능은 다소 미흡하나 제때 전력화하는 것이 대비태세의 관점에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무기체계와 장비 개발과정에서 조금이라도 결함이 생기면 곧바로 비리로 간주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함정 건조를 예로 들어보자. 함정 건조는 한마디로 수백 개의 관급 및 도급장비를 연동시키는, 한마디로 복합체계(system of systems) 통합과정이다. 이 가운데 일부 장비는 해외에서 직도입하고, 또 다른 장비는 국내 연구개발(R&D)로 획득해 서로 연동시키는 작업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건조가 마무리될 무렵에, 1~2개의 장비 개발이 지연되는 문제가 발생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들의 개발이 완료될 때까지 함정을 조선소에 묶어 두어야 하는가? 아니면 정책적 판단 하에 일단 함정을 해상에 띄워 함정에 있는 장비를 시험평가하면서 지연된 장비의 개발이 완료될 때까지 기다리는 선택을 해야 하나
전자를 택하면 책임성(예: 법규 및 규정 준수 등)은 부담이 없지만 효율성(예: 전력화 지연, 비용 상승 등)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러나 후자를 택하면 효율성은 해소되지만, 책임성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방산비리로 괜한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부득이 모든 장비가 개발될 때까지 기다리는 전자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1~2개의 장비가 완전히 개발될 때까지 함정을 조선소에 1년이고 2년이고 계속 묶어두는 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일까? 전력화가 늦어지고 비용 상승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말이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경우 훨씬 더 효율적인 후자를 선택하게 되면 99% 비리가 개입된 것으로 간주, 제일 먼저 감사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일부 획득인력들이 전력화 지연과 비용 상승은 뒷전으로 두고 법규나 규정에 얽매인 답답한 방식의 일처리만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중에 책임문제가 나와도 법규나 규정을 준수했다고 해야 처벌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업무방식과 태도는 어찌 보면 방산비리보다 더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을 인식한다면 기술적 미흡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나 정책적 판단에 의해 결정된 사안들을 무조건 방산비리로 몰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것을 그냥 비리로 간주해 기소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언론은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그냥 보도해버린다. 그러니 국민은 방산비리가 엄청나게 많은 것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사례들이 한 두 개가 아니다. 2015년 합수단이 방산비리 혐의로 기소한 대부분의 사람이 최근 잇따라 무죄판결을 받는 사례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기술적 미흡이나 정책적 판단에 의한 결정은 방산비리로 몰고 가는 수사는 지양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방산비리가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원가 부풀리기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대선주자들이나 각종 언론 등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은 수천억이나 1조 원에 달하는 규모의 방산비리는 단언컨대 존재하지 않는다. 자주 언론에 등장하는 비리사례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군납비리’(군수품 비리)이지 방산비리가 아니다. 1994년 율곡비리 가운데 ‘린다 김 사건’은 방산비리가 아닌 ‘해외 무기도입 비리’다.
군납비리 가운데 비리로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도 많다. 일례로 30년 된 침낭의 경우, 36년 전에 개발해 그동안 14번이나 개량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36년 전 개발 사실만 공개하고, 14번 개량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 시대에 쓰던 침낭을 아들이 덮고 잔다는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뚫리는 방탄복의 경우에도, 우리 군은 방탄복을 방탄이 필요한 수준에 따라 레벨-2(AK-47 소총 방어용), 레벨-3(AK-74 소총 방어용, 신형), 레벨-4(철갑탄 방어)로 정해 장병들의 임무 유형에 따라 운용하고 있다. 특정 장병들이 레벨-2 방탄복을 입고 있으면 AK-74 소총의 철갑탄에 뚫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면 방탄복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점을 적절히 인식, 대선 후보들과 각종 언론 등에서는 ‘방산비리’, ‘군납비리’, ‘해외무기도입 비리’ 등의 용어를 엄격하게 구분해 사용할 필요가 있다. 이 모든 것을 다 합쳐서 아무 생각 없이 ‘방산비리’로 부르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인ㆍ수사기관ㆍ언론의 잘못된 용어 선택은 자주국방을 위한 무기체계 및 장비를 개발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군과 방산업체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