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文 후보 '노무현 비극' 보복하려 집권하는 건가

2017. 5. 2.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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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30일 서울 유세에서 "최순실을 비롯해 국가권력을 이용한 부정축재 재산 모두 국가가 환수하겠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비리, 방산 비리, 자원외교 비리도 다시 조사해 부정축재 재산 있으면 환수하겠다"면서 "대통령이 되면 적폐청산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28일 발표한 공약집에서 문 후보는 '이명박·박근혜 9년 집권 적폐청산'을 12대 약속의 맨 위에 올려놓은 데 이어 조사위 구성까지 직접 밝혔다.

처음에 '적폐 대청소'를 부르짖다 한때 '통합'을 얘기하는 등 오락가락하던 문 후보가 선거 승리를 확신한 다음에는 속마음을 확실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친노(親盧) 좌장이라는 이해찬 공동선대위원장이 그 직전 유세에서 "극우 보수세력을 완전히 궤멸" "쭉 장기 집권"을 언급했다. 문 후보는 자신의 집권을 막는 것은 "부패 기득권 연장이자 촛불 민심 배신"이라고 했다.

최순실 사건은 검찰→특검→검찰로 이어지며 수사할 만큼 했다. 그래도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면 또 수사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후보가 아무런 새 단서도 없이 수사를 말한다는 것은 지나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당하고 감옥에까지 가 있다. 문 후보는 아직 분이 덜 풀렸는가.

그동안 국민은 맹목적 보복 심리에서 비롯된 전(前) 정권 사정(司正)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질리도록 경험했다. 박근혜 정권 4년 동안 검찰을 동원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자원 외교를 샅샅이 뒤졌으나 아무런 성과 없이 애꿎은 자살자만 만들었다. 문 후보와 그 진영은 그 수사 결과를 보고서도 또 파헤쳐 보겠다고 한다. 재판까지 끝난 일에 또 칼을 대겠다는 것은 결국 이명박 정권에서 이뤄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와 노 전 대통령 자살에 대한 한(恨)을 풀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 수사와 자살 이후 우리 사회에선 '전직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자성(自省)이 있었다. '정치 보복은 이제 그만하자'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이 이명박 정권에 보복하는 일이 다시 벌어졌고, 이제 다음 집권이 유력한 세력이 또 한풀이 보복을 하겠다고 공언한다. 다음에는 이들이 고스란히 정치 보복을 당할 것이다. 우리 정치에서 이 보복의 다람쥐 쳇바퀴는 멈추지 않을 것만 같다.

'적폐청산특별조사위'를 만든다는 문 후보 말을 들으면 2017년 대한민국이 과거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노무현 정권 당시에 등장한 과거사위원회들의 재판(再版)이 나온다는데 이 나라는 앞으로 가는 건가, 뒤로 가는 건가.

많은 국민은 대선 이후를 더 걱정하고 있다. 후보 누구도 앞으로 대한민국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조차 주지 못하고 있다. 가장 당선 가능성이 큰 후보는 입만 열면 '이명박·박근혜 정부' 탓만 하더니 이제는 정치 보복을 노골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박근혜 탄핵·구속 말고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라고 하니 어떤 바람이 불지 모를 지경이다. 그 바람은 필연적으로 강한 역풍을 부를 수밖에 없다. 나라가 통합이 아니라 분열, 협치가 아니라 대결로 소란스러워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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