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5·18 계엄군, 전대병원도 군홧발로 짓밟아" 첫 증언

최경호 2017. 5. 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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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병원 『5·18 10일간의 야전병원』서 첫 제기
의료진들, 80년 당시 참혹한 상황 37년 만에 증언
"항전 마지막날 병원 향해 총기난사 후 수색·진압"
옛 전남도청 진압 때 환자 있던 병원도 진압 '경악'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옛 전남도청을 장악한 계엄군. [사진 5·18 기념재단]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옛 전남도청을 최종 진압할 당시 인근 전남대병원까지 점령했다는 진술이 37년 만에 처음 확인됐다.

전남대병원이 1일 공개한 80년 당시 의료진들의 증언집 『5·18 10일간의 야전병원』에 따르면 "5·18 마지막 날인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옛 전남도청을 진압할 당시 환자들이 치료를 받던 전대병원까지 점령했다"는 증언이 처음으로 나왔다.

5·18 나흘째인 80년 5월 21일 "퇴각하던 계엄군이 전대병원 향해 총을 쐈다"는 진술은 있었으나 계엄군이 옛 전남도청을 최종 진압한 5월 27일에 병원에까지 총기를 난사하고 강압적인 수색을 했다는 증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80년 5·18 당시 전남대병원 의료진들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사진 5·18 기념재단]
80년 당시 신군부가 '분쟁 지역의 의료시설과 의료진에 대한 보호 의무'를 담은 제네바협약 등 국제관례까지 무시하며 비인도주의적인 과잉진압을 한 것이 또 한 번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이는 최근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무차별 살상이나 시민을 향한 발포명령이 없었다"고 말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기록이다.

1980년 5·18 당시 전남대병원에서 환자를 돌봤던 의료진들의 증언을 담은 증언집 『5·18 10일간의 야전병원』
아울러 이번에 확인된 증언은 계엄군이 5·18 마지막 날에 옛 전남도청과 전대병원에 대한 진압 작전을 동시에 펼친 것이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날 계엄군은 탱크를 앞세워 광주시내 진입한 시간대인 오전 3시부터 전대병원을 향해 총기를 난사했다. 이후 계엄군은 이날 오전 5시10분 옛 전남도청을 비롯한 시내 전역을 장악하고 진압작전을 종료했다.
5.18 당시 부상을 입고 전남대병원에 입원한 환자. [사진 5.18기념재단]
총기 난사 당시를 증언한 의료진들은 참혹했던 80년 당시를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5·18 당시 마취과 레지던트였던 유경연 전남대의과대 명예교수는 "27일 계엄군은 병원 담 쪽을 에워싸더니 일제히 총격을 가했으며, 이후 안으로 들어와 일일이 병실을 검문했다"고 증언했다.

유 교수는 또 "날이 밝아 확인한 결과 당시 임시숙소로 사용했던 11층 병실의 유리창 대부분은 총격에 깨졌다"고 말했다.

서순팔 전남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5월 27일 새벽 3시쯤 광주에 들어온 20사단이 전남대병원도 접수했다"고 진술했다. 80년 당시 전남대병원 임상병리과 레지던트였던 서 교수는 "(병원)복도를 거닐던 군인들이 확성기를 통해 '너희들은 포위되었다! 투항하라'고 소리쳤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수만(70) 전 5·18 민주유공자유족회장은 "계엄군이 환자들이 치료를 받던 병원을 향해 마구 총질을 하고 강압적인 수색을 벌인 것은 전두환 등 신군부의 만행이 어느 정도였는 지를 또다시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라고 밝혔다.

이 책에는 전남대병원에 첫 번째 집중사격이 이뤄진 5월 21일에 대한 상황도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김신곤 전남대의과대학 명예교수는 "퇴각을 하던 계엄군이 차량에서 무차별 발포를 하면서 시내를 빠져나갔다"며 "대로변에 위치한 병원 수술실에도 총탄이 날아들어 유리파편이 내 다리까지 튀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정형외과 교수였던 노성만 전남대의과대 명예교수는 "계엄군은 당시 정형외과가 있는 건물을 향해 총을 수평으로 들고 쐈다. 불이 켜져 있는 2층을 보고 사격했으며, 총소리에 누구나 할 것 없이 바닥에 엎드렸다"고 말했다. 당시의 총탄 흔적이 남아있는 노 교수의 캐비닛과 가운은 현재 전남대 5·18연구소와 전남대 의학박물관에 각각 전시돼 있다.
5.18 당시 부상을 입은 환자를 시민들이 옮기고 있다. [사진 5.18 기념재단]
전남대병원은 5·18 민주화운동 37주기를 앞두고 80년 당시 병원에서 환자를 돌봤던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 28명의 증언을 담은 증언집을 2일 첫 발간한다. 5·18 의료활동에 대해 병원 자체적으로 책을 낸 경우는 전남대병원이 처음이다.

220쪽 분량의 책에는 80년 5월 당시 병원에 실려온 사상자들의 모습과 밤낮없이 진행된 초응급 수술, 시민들의 자발적인 헌혈 참여 등 참혹하고 긴박한 상황이 담겨있다.

전남대병원은 5·18의 중심지인 옛 전남도청과 불과 1㎞ 가량 떨어져 있어 80년 5월 당시 중환자 등이 치료를 받은 곳이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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