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자마자 미세먼지 확인..오늘도 창문 못 여나요?

이정연 2017. 5. 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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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그린 대선여지도 ⑤ 미세먼지

하루의 시작과 끝, 대기정보 확인하기
미세먼지 짙은 날 달리고 난 뒤 찾아온 두통

대통령 후보마다 미세먼지 감축 공약 봇물
시민들이 치르는 '불신 비용' 줄일까?

더는 미세먼지 안전지대가 아닌 고향
16개월 된 조카에게 맞는 마스크도 없어

[한겨레]

시민들은 미세먼지 기초정보를 각자 얻기 위해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한다. 28일 스마트폰에서 '미세미세'(사진 왼쪽)와 '대기오염정보' 앱으로 확인한 미세먼지 수치. 사진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자, 이제 하루를 여는 의식을 시작합니다.

침대에 누운 채 스마트폰을 들자마자 날씨와 대기환경정보를 확인합니다. 4월25일 오전 예보, ‘미세먼지 나쁨’. 전날 밤 12시 자기 전에 확인했던 대기오염 예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소나기 소식이 있습니다. 차라리 비가 오는 것을 반깁니다. 공기를 충분히 씻겨줄 비가 오고, 그 뒤에는 조금이나마 청량한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을까 하는 바람에서입니다. 그러나 최근 알려지기로는 강수량이 많지 않으면 공기 중 미세먼지를 씻어내는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몸을 일으켜 커튼을 열고, 창밖을 내다봅니다. 미세먼지가 많다니 창문을 활짝 열어젖힐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창밖 멀리 난지 하늘공원의 언덕이 보입니다. 그 뒤편 배경이 되는 하늘색에 누런 띠가 아른거립니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그래도 환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야. 미세먼지 농도가 ‘보통’ 수준으로 내려가면 환기하자’ 생각합니다. 잠시 환기를 하는 동안 사람인 저는 마스크를 쓰면 되지만, 함께 사는 반려동물 고양이 ‘하모’는 마스크도 쓸 수 없으니 창문 열기가 더 겁이 납니다. 바깥 공기에 스며오는 냄새를 맡을 때면 얼굴을 세우고 킁킁거리는 하모도 참 답답하겠죠. 미봉책으로 주방의 환풍기와 화장실의 환풍기도 출근 전 내내 켜 놓습니다. 현관을 나서며 황사 방지용 마스크를 챙깁니다. 오늘은 미세먼지 수준이 ‘보통’도 아니고 ‘나쁨’이라니 미세먼지의 94%를 걸러준다는, KF94 마스크를 골라 챙깁니다. 미세먼지 섞인 비를 피해야겠기에 큰 우산도 챙깁니다. 참 무겁고 답답한 하루의 시작입니다.

봄이 오면 아무 일이 없어도 행복감이 차오를 때가 있습니다. 기대감 때문입니다. 회사 안팎에서 운동 마니아로 꼽힙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스케이트보드, 서핑, 러닝, 웨이트 트레이닝 등을 기사로 소개하기도 했죠. 동료들이 “요즘엔 달리기 안 해요?”라며 심심찮게 묻습니다. 겨울이 하루빨리 지나고 봄이 오길 고대했습니다. 한강공원으로 자전거를 타러 나가려고 체인에 기름칠도 해두었습니다. 오솔길 달리기(트레일 러닝)나 등산을 하려 주말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3월 이후 몇 번이나 운동 계획을 취소해야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미세먼지가 심한 날 바깥 운동하기를 멈춘 것은 지난 3월18일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기부 달리기 ‘평화나비 런’에 참가하고 난 뒤입니다. 기온이 20도 가까이 올라 따뜻했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확인한 미세먼지 예보는 ‘나쁨’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기부 달리기 대회여서 꼭 참가하고 싶었기 때문에 많이 망설이지는 않았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달렸습니다. 달리기 구간이 5㎞라서 잠깐 뛰면 되겠지, 생각했습니다. 함께 뛴 친구들은 마스크도 챙겨오지 않았지만 “괜찮을 거야”라며 저만치 뛰어갔습니다. 실제로 달리는 동안에는 마스크 안에 땀이 차는 것 말고는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죠.

문제는 뛰고 난 뒤였습니다. 갈증이 나서 시원한 차를 마시자는 친구들과 근처 한 카페로 갔습니다. 친구는 “목이 좀 칼칼하네”라며 콜록거리더니, 눈도 따갑다며 손으로 비벼댔습니다. 별 이상을 느끼지 못했던 저는 머리가 심하게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정말 미세먼지 때문일까? 겨울 동안 안 움직이다가 달려서 그런 걸 거야”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늦은 저녁 약속을 취소해야 했습니다. 축 처진 몸이 도무지 일으켜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일요일까지 지끈거리는 두통이 이어졌고, 머리를 부여잡은 채 주말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봄이 지났습니다. 올해 1~3월 90일 중 서울 지역의 미세먼지(PM2.5, 지름이 2.5㎛인 입자, 이전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세계보건기구(WHO) 일일 권고기준치(25㎍/㎥)를 넘은 날이 57일이었습니다. 거의 사흘에 이틀꼴입니다. 제가 사는 서울 마포구의 공기 오염도도 살펴봤습니다. 한국환경공단이 운영하는 누리집 에어코리아에서 4월1~27일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해봤습니다. 미세먼지 농도가 세계보건기구 권고기준치를 넘지 않은 날은 27일 중 단 8일이었습니다. 제가 달리기를 했던 3월18일의 정보도 확인해봤습니다. 그날 미세먼지 농도는 73㎍/㎥를 기록했습니다. 공기 질이 최악 수준이었던 것이죠.

미세먼지 농도가 짙은 시기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라 그런지, 각 정당의 후보들은 ‘미세먼지 관련 공약’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다시 만나는 파란 하늘’을,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마스크가 필요 없는 봄’을 미세먼지 관련 공약의 슬로건으로 내세웠습니다. 당장 미세먼지에 대한 불만과 피해를 호소하는 시민들이 많으니 외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미세먼지 관리 기준 강화, 석탄발전소 축소, 자동차 교통 수요 관리, 어린이·노인 등 취약 계층 보호 등 각 부문에서 다양한 공약을 내놓고 있죠.

미세먼지 관리 기준을 강화해 더욱 확실하고도 광범위한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은 미세먼지 관리 기준을 세계보건기구의 2단계 잠정목표(연평균 PM2.5 기준 25㎍/㎥)에서 3단계 잠정목표(15㎍/㎥)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국내 대기 관련 정책은 2단계 잠정목표에 맞춰 수립·시행되고 있습니다. 대선 후보들도 미세먼지 관리 기준 강화는 너나 할 것 없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문 후보는 여기에 ‘임기 내 미세먼지 30% 감축’을 덧붙였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은 임기 내 미세먼지 50% 감축을 요구하고 있죠.

지난 9일 오전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여의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당선된 후보가 공약대로 공기 질을 혁신적으로 끌어올리겠다면, 오늘날 대기오염 상태가 어떤지 더욱 자세히 들여다봐야겠죠.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얼마 전 ’먼지몬’이라는 미세먼지 측정기를 마련했습니다.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미세먼지 측정소의 수치와 먼지몬의 수치가 5㎍/㎥ 차이 나기는 예사입니다. 시민들은 정부가 제공하는 대기오염 관련 기초 정보를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믿을 수 없는 정보를 바탕으로 세워지는 정책을 신뢰할 수 없게 된 것이죠. 무너진 신뢰 때문에 치러야 하는 ‘불신 비용’이 너무 커져 버렸습니다.

시민들은 각자 시간과 돈 등 여러 비용을 치르며 좀 더 정확한 대기오염 관련 정보를 얻으려 백방으로 뜁니다. 친구 주명인(38)씨는 미세먼지 이야기를 꺼내자 화마저 냅니다. 그는 “아이 낳아 기르라고 등 떠밀면서 맑은 공기 하나 챙기지 못한 정부가 원망스럽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결국 미세먼지 측정기를 샀습니다. 날씨 애플리케이션에 나온 수치와 차이가 클 때는 컴퓨터를 켜서 일본 기상청이 제공하는 대기오염 관련 정보까지 확인합니다. 친구는 “인간답게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공기 같은 공공재 아니냐. 그런데 관련 기초 정보마저 관리가 제대로 안 되어 있어 여러 경로와 도구들을 활용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게 어이가 없다”며 넋두리를 늘어놓습니다. 미세먼지는 물론 미세먼지 예방에 지친 시민들이 가장 먼저 바라는 것은 ‘믿을 만한 정보의 제공’일 것입니다. 이에 대해선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다소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합니다. 측정소를 확대하고, 노후 측정기를 교체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습니다.

“미세먼지 때문에 우울증에 걸릴 거 같아. 날씨가 궂은 날이 많아 햇빛 보기 어려운 나라에서 날씨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다던데, 그게 이제 이해가 된다니까. 미세먼지 우울증이라는 병명이 생기겠어.” 친구와 이야기하다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맞장구치는 친구도 지쳐 이야기합니다. 바이크를 주요 교통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친구 아영(가명)씨도 유독 힘이 듭니다. “너무 막막하고, 답답해. 이런 공기를 마시며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게… 미세먼지가 점점 더 심해지고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없으니 더 힘든 거 같아. 바이크를 타면서 누리는 즐거움이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서 라이딩을 하는 건데, 그런 즐거움도 점점 더 누리기 어려워지고 말이야.” 미세먼지 농도가 짙은 가운데 차가 많은 도로 속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공기 오염을 더욱 실감할 수 있습니다. 차량은 미세먼지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경유 차량은 미세먼지 유발 주범으로 꼽히고 있죠.

교통 수요 관리 대책도 후보자들이 여럿 내놓은 공약입니다. 문재인 후보와 유승민 후보는 각각 노후 경유차를 퇴출하는 중·장기 로드맵과 노후 경유차의 조기 폐차 목표량 상향 조정을 내놓았죠. 이들이 경유차를 줄이는 데 역점을 뒀다면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여기에 더해 차량으로 인한 공기 오염 부담을 운전자들이 분담하고, 보행자들은 더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교통유발 부담금을 확대하고, 미세먼지 관련 경보가 울릴 경우에는 대중교통비를 할인해주는 정책을 선보였습니다. 심상정 후보는 재원 마련 계획도 함께 내놓았죠. 중·장기적으로 ’미세먼지 기후 정의세’를 신설하는 방안이 그것입니다.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강력한 정책을 시행하려면 살림살이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유승민 후보는 미세먼지 관련 예산을 2배 늘리겠다고 주장합니다.

누가 되든 깨끗한 공기만큼은 마시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바람을 안고 사람이 많은 곳이면 어김없이 서 있는 유세 차량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유심히 들어보곤 합니다. 지난 4월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역을 지나던 중이었습니다. 길을 건너려 기다리는 사이 매캐한 냄새에 코를 막았습니다. 유세 차량에서 흘러나오는 매연이었습니다. 도로에 지나다니는 차도 많았지만, 좁은 건널목에 세워진 트럭이 뿜는 매연이 더해지자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선거 캠프마다 미세먼지 공약을 쏟아냈지만, 선거 과정에서 공약의 정신을 담는 것까지는 신경 쓰지 못한 걸까요? 시민들의 눈에 딱 걸렸습니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은 25일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 후보들이 미세먼지를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경유차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요즘 선거운동을 하는 장면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도심을 가로지르는 유세 차량을 보면, 화물을 싣는 곳에 큰 화면의 모니터를 놓고 유세 연설을 할 수 있도록 트럭을 개조해 만든 차량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트럭이 대부분 경유차라는 지적이죠. 이 단체는 “더불어민주당이 300여대, 국민의당 280여대, 바른정당과 정의당은 각각 20여대의 경유차를 쓰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경비 절감 등을 위해 경유차를 쓰는 것을 용인해줘야 하는 걸까요? 선거 비용을 아껴야 하는 각 대통령 후보 캠프의 사정도 있겠지만, 미세먼지를 뿜어내는 유세 차량보다 친환경 차량 도입을 검토라도 해봤을지 의구심도 함께 듭니다. 선거만큼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하는 이벤트가 없지만, 당장 일상을 바꿔나가지 않으면 미세먼지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는 점에서 ‘과정’에도 세심한 신경을 쓰는 후보가 있기를 바란 건 욕심이었을까요?

'대선후보 경유 유세차량 대책 촉구 기자회견'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려 서울환경운동연합이 공식 선거운동기간 시작과 함께 미세먼지 주요 배출원인 경유차를 선거유세 차량으로 이용하는 각 당 대통령 후보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시야를 넓혀 멀리 떨어져 지내는 가족들의 삶을 들여다보니 대통령 후보들이 내놓은 미세먼지 공약 중 가장 우선순위 자리에 있지 않지만 꼭 지켜줬으면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아니 이거 어쩐다냐. 여기도 공기청정기를 사야 하는 거냐. 맨날 그거 틀어놓고 창문도 못 열고 살아야 한다냐. 어떡하면 좋겄냐.” 미세먼지 농도가 짙은 3월 어느 날,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당황스러워하며 전화를 거셨습니다. 제 고향은 전라남도 곡성입니다. 네, 그 ‘뭣이 중헌디’의 곡성입니다. 멀리 지리산이 보이고, 가까이에 섬진강이 흐르는 물과 공기가 맑은 곳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것도 옛말입니다. 누런 하늘빛이 비치기 일쑤입니다.

곡성의 미세먼지 농도가 어느 지경인지 살펴봤습니다. 에어코리아 누리집에 들어가 보니, ‘곡성군’은 아예 측정소가 없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의 미세먼지 측정소는 20㎞ 이상 떨어진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의 측정소로 나옵니다. 어머니에게 뭐라 드릴 정보가 없습니다. 대기오염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따져봐야 공기청정기를 살지 말지 결정할 텐데 말입니다. 제가 가진 미세먼지 측정기라도 드려서 불안감이나 궁금증을 조금이라도 해소해드려야 할 판입니다.

공기의 흐름이 행정구역 경계선을 따라 달라질 리 없습니다. 그러나 대기오염 개선 대책은 수도권 위주의 정책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여기에 도시·농촌 지역의 구분이 필요할까요? 환경부는 최근 미세먼지 관리 특별대책 후속 조치로 소각장과 발전소 등 수도권 150여개 대형 사업장을 대상으로 ‘먼지 총량제’ 시범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대통령 선거 후보들은 강력한 대기오염 개선 정책 시행 지역을 수도권에서부터 넓히겠다고 합니다. 문재인 후보는 미세먼지 총량 관리제를 수도권에서 충청권으로 확대하겠다고 합니다. 안철수·심상정 후보는 전국 측정망을 정밀화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습니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언제 고향에 미세먼지 측정기가 설치될지 두고 보려고 합니다.

’봄’이에게 봄다운 봄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16개월 된 조카가 있습니다.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가 되었지요. 이름은 ‘이봄’입니다. 봄이는 아주 활발한 녀석입니다. 멀리 부산에 살기 때문에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가끔 봄이가 야외에서 뛰노는 모습을 보며 실실 웃습니다. 그러다 걱정이 끼쳐옵니다. ‘아, 마스크를 안 썼네!’ 말괄량이 조카가 마스크 쓰기를 너무 싫어할 게 눈에 훤히 보이지만 극성스런 고모는 쇼핑몰 검색에 들어갑니다. 미세먼지 방지용이니 당연히 황사·보건용 마스크를 사줘야겠죠. 그러나 또 실패합니다. 어린이들이 쓸 수 있는 소형 마스크는 있지만, 더 어린 두세 살 아이들이 쓸 수 있는 마스크는 면 소재의 마스크 말고는 찾기 어렵습니다. 면 소재 마스크는 미세먼지를 걸러내는 필터가 없고, 조금 큰 소형 마스크는 아직 어린 조카에게는 헐거워 소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대통령 선거 후보들이 가장 먼저 이런 것부터 챙겼으면 합니다. 당장 공기를 깨끗하게 만들 수 없다면, 적어도 어린아이들이 쓰기 좋은 마스크라도 개발해 보급해주길 바랍니다.

노인과 어린이 등 취약계층을 위한 대책도 공약에 대부분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인과 어린이가 많은 시설에 공기청정기를 보급하고, 별도의 건강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나 흘러야 노인정과 어린이집에 정부가 공급한 공기청정기가 설치될지 의문입니다. 공기를 미뤄 놓았다 숨 쉴 수도 없는데 말이죠.

바이크를 타고 시원스럽게 도로를 달리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미세먼지가 짙은 날이면 도로 위 공기질은 더 나빠져 곤혹스럽다.

오늘도 또 ‘미세먼지’ 홍보 보도자료가 들어왔습니다. 저는 생활용품·화장품·유통서비스 등의 분야를 취재하고 기사를 씁니다. 미세먼지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커지자, 기업들은 기뻐합니다. 하루에 100곳 이상의 기업과 브랜드에서 보도자료를 보내옵니다. 제가 받은 이메일 가운데 미세먼지라는 열쇳말이 들어가는 자료를 추려봤더니, 4월에만 65개의 자료가 들어와 있었습니다. 각자도생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소비자들은 ‘미세먼지를 줄이는’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가면 솔깃해합니다. 그러나 미세먼지를 줄여주고 닦아낸다는 근거가 확실해 보이지 않는 제품들이 너무 많습니다. 미세먼지 관련 제품의 마케팅은 날로 진화해가는데, 막을 방패는 마땅치 않습니다. 방패가 아니라 정말 미세먼지 피해 예방에 도움이 되는 제품이라도 걸러주는 ‘체’가 필요합니다.

이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을 시작합니다. 적정기술을 활용해서인지 값이 싸서 마련한 공기청정기를 켭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알람을 설정하고, 날씨와 대기오염 예보를 확인합니다. 미세먼지는 보통 수준이라고 하는데, 황사가 또 불어온답니다. 황금연휴를 앞두고 설레었던 마음이 착 가라앉습니다. 5년 뒤 봄에는 제발 가슴 펴고 깊이 숨 쉴 수 있는 날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미세먼지 ‘나쁨’일 땐 어떻게 해야 하지? 미세먼지 예보를 알고도, ’공기가 나쁘다’ 생각할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경부는 지난해 <바로 알면 보인다. 미세먼지, 도대체 뭘까>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펴냈습니다. 미세먼지 예보등급에 따른 행동 요령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국내 미세먼지 예보등급은 ‘좋음’(미세먼지 PM10 0~30㎍/㎥, PM2.5 0~15㎍/㎥), ‘보통’(PM10 31~80㎍/㎥, PM2.5 16~50㎍/㎥), ‘나쁨’(PM10 81~150㎍/㎥, PM2.5 51~100㎍/㎥), ‘매우 나쁨’(PM10 151㎍/㎥ 이상, PM2.5 101㎍/㎥ 이상)으로 나뉩니다. 이 책자를 보면, 미세먼지 ‘보통’일 때 어린이와 노인, 폐·심장 질환을 앓고 있는 ‘민감군’이 바깥 활동을 특별히 피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몸 상태에 따라 유의해 활동하기를 권고하고 있죠. 미세먼지 예보등급이 ‘나쁨’일 때는 민감군에 속하는 사람들은 긴 시간 또는 무리한 야외 활동을 피해야 합니다. 이때는 일반인 중에서도 눈이 아프거나 기침이 나면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야외 활동을 삼갈 필요가 있습니다. 민감군에 속하면 미세먼지 예보등급이 ‘매우 나쁨’일 때 가급적 실내 활동을 하고, 꼭 바깥 활동을 해야 할 때는 의사와 상의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대기오염 경보(주의보·경보)가 발령되면 외출 시 꼭 황사 방지용 마스크를 쓰도록 환경부는 권고합니다. 이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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