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뒤엔.. 선수들과 먹고 자는 '물통 당번 회장님'

강호철 기자 2017. 5. 1.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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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상]
- 정몽원 아이스하키협회장
대표팀 경기 맞춰 회사 출장 조정, 관중석 대신 벤치서 전 경기 봐
"난 판 만들 뿐, 주인공은 선수들"

"난 그저 판을 만들었을 뿐이에요. 최선을 다해 준 우리 선수들이 주인공이죠."

30일 아이스하키 남자대표팀을 이끌고 귀국한 정몽원(62·한라건설 회장)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톱 디비전(월드챔피언십·1부리그) 진입의 공을 감독과 선수들에게 돌린 정 회장이지만, 아이스하키계에선 그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회장님도 울었다. 한국의 톱디비전 승격 확정 후 백지선 감독을 껴안은 정몽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오른쪽)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정 회장은 '아이스하키에 미친 사람'이란 소리를 수없이 듣는다. 1994년 반대를 무릅쓰고 만도 위니아(현 안양 한라)라는 이름으로 실업 팀을 창단했고, IMF 한파가 몰아치던 1997년에는 다른 실업 팀이 잇달아 해체되는 위기 속에서 한·중·일·러시아 등이 참가하는 아시아리그 출범을 주도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되자 2013년에는 협회장을 맡아 현재의 대표팀을 만들어냈다.

정 회장은 위에서 재정적 지원에만 주력하는 다른 협회장과는 접근 방법이 다르다. 국가대표팀 경기 일정에 맞춰 그룹 출장까지 조정해 거의 전 경기를 지켜본다. 관중석 대신 벤치 옆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선수들을 응원한다. 심판의 잘못된 판정엔 어김없이 '육두문자'를 날려 주변 사람들이 무안해할 정도다. 아이스하키는 헬멧 때문에 선수들이 일반 페트병의 물을 마시지 않고 빨대가 달린 개인 물통을 쓰는데, 이게 빌 때마다 일일이 채워 넣는 것이 정 회장의 주요 임무다. 협회장이라기보다는 '주무'나 '집사'에 가깝다.

정 회장은 외국에 나가면 항상 선수단이 묵는 2성급, 3성급 호텔에 같이 투숙한다. 아침 식사도 늘 같이하며 '매의 눈'으로 컨디션을 살핀다. 다른 한국팀들의 국제대회 필수품인 라면은 아이스하키 대표팀에선 절대 금지 품목이다. 아예 밀가루, 면류 자체를 못 먹게 한다. 이 원칙은 선수뿐 아니라 함께 있는 모든 관계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식사 때 젓가락으로 면을 집는 모습을 보면 쏜살같이 달려가 "안 돼!"를 외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면류를 먹으면 '경기를 말아먹는다'는 일종의 징크스다. 경기 전, 피리어드 휴식 후 링크로 들어가는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과 일일이 주먹을 마주치는 것도 정 회장의 '역할' 중 하나다.

스틱을 직접 잡은 적은 없지만 수천 경기를 보면서 정 회장의 '관람 수준'은 웬만한 전문가 뺨친다. 밤에 잠을 못 이루면 혼자 대표팀 라인(조) 구성을 궁리하는 것이 취미일 정도다. 물론 자기 생각을 코칭 스태프에게 강요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한다.

귀국 기자회견장에서 수많은 취재진에게 둘러싸인 정 회장은 "평창올림픽에서 어떤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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