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호국의 성지' 진남관 미스터리

2017. 5. 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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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도시이자 연간 1000만 명이 찾는 전남 제일의 관광도시인 여수는 구국(救國)의 도시라는 또 하나의 자긍심이 있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는 최근 동아일보에 2000년대 중반 박인수 씨(사망·증언 당시 93세)가 "일제가 진남관을 학교로 바꾸면서 기둥 2개를 자르고 벽을 해체했다"고 증언한 녹취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박 씨는 1911년 일제가 진남관을 개조해 만든 여수보통공립학교를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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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민족혼 말살 위해 기둥 70개 중 2개 잘랐다"
보수과정서 주민 증언 확보.. 2020년까지 원형복원 계획

[동아일보]

전남 여수시 군자동에 있는 국보 304호 진남관은 정면 15칸, 측면 5칸으로 지방관아로서는 국내 최대 목조단층건물이다. 문화재청과 여수시는 150억 원을 들어 2020년까지 진남관 정비·보수 공사를 벌인다.
공업도시이자 연간 1000만 명이 찾는 전남 제일의 관광도시인 여수는 구국(救國)의 도시라는 또 하나의 자긍심이 있다. 그 중심에는 호국의 성지 진남관(鎭南館·국보 304호)이 있다. 조선시대 당시 왜구를 진압해 평안한 남해를 만들기를 소망한다는 뜻이 담긴 진남관. 진남관 기둥은 원래 70개였지만 현재 68개밖에 없다. 기둥 2개가 잘린 시기와 이유가 미스터리였다.

그런데 최근 일제가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진남관 기둥을 잘랐다는 증언이 나왔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가 향토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주민의 증언을 채록한 것이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는 최근 동아일보에 2000년대 중반 박인수 씨(사망·증언 당시 93세)가 “일제가 진남관을 학교로 바꾸면서 기둥 2개를 자르고 벽을 해체했다”고 증언한 녹취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박 씨는 1911년 일제가 진남관을 개조해 만든 여수보통공립학교를 다녔다.

김병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65)은 “박 씨 외에 이 같은 증언을 한 주민이 여럿 있다”며 “일제는 경술국치 이후 전라좌수영 성곽을 허물고 진남관 주변 고소대(姑蘇臺)에 있는 좌수영대첩비(보물 571호)를 빼돌려 경복궁 뜰에 묻어놓는 등 민족혼 말살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과 전남 여수시가 진남관 보수·정비 공사에 앞서 2013년 진행한 실시설계 용역 과정에서 작성한 도면(첫번째 사진)과 여수시가 촬영한 훼손된 진남관 기둥 2개 흔적(동그란 점선 부분). 여수시 제공
문화재청과 여수시는 2008년부터 4년간 진남관 안전진단을 한 결과 기울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다. 2013년 보수공사를 위한 조사 과정에서 진남관 기둥인 고주(高柱) 2개가 잘린 것이 확인됐다. 진남관 기둥은 둘레 2.2∼2.7m, 평균 높이 4.5m다. 조사를 맡았던 주우일 거창대 교수(53)는 “기둥이 잘린 흔적이 있어 일제가 기둥 2개를 훼손한 것으로 막연하게 추정을 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 등이 없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과 여수시는 10일부터 진남관 보수 정비를 위해 가설 덧집 공사를 시작한다. 덧집은 해체 과정에서 비바람으로부터 목재나 기본 골재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다. 진남관은 높이 28m, 가로 80m, 세로 30m 크기의 덧집 안에서 하나하나 해체된 뒤 정비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진남관 터의 각종 유물 발굴 작업도 이뤄진다. 발굴조사 이후 복원되면 진남관은 2020년 새 모습을 드러낸다. 훼손된 기둥 2개와 벽체도 원형대로 복원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덕문 국립문화재연구소 안전방제연구실장(58)은 “진남관이 크게 기운 것은 사람으로 치면 갈비뼈 기능을 하는 고주 2개와 내부 벽이 제거됐기 때문”이라며 “관광객들이 보수·정비 현장을 살펴볼 수 있어 민족혼을 일깨우는 공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남관은 여수 종포해양공원 끝자락 ‘이순신 광장’ 뒤편에 있다. 이순신 장군 동상과 거북선, 벽화가 있는 이순신 광장 터에는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을 진수했다고 알려진 좌수영 선소(船所)와 바다가 있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매립됐다.

진남관 주변은 고려 공민왕 때 왜구를 물리치면서 수군 중심지가 됐다. 조선시대 들어 1479년 지금의 해군함대사령부 격인 전라좌수영이 들어섰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직전인 1591년 전라좌수영 절도사로 부임해 진해루라는 누각에 머물며 전쟁을 지휘했다. 진해루는 정유재란 때 왜구에 의해 불탔다. 1718년 전라좌수사 이제면이 진해루 터에 진남관을 중건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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