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수급자 되는 것, 이토록 어렵습니다

강동희 입력 2017. 4. 30.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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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절차와 부담스러운 비용.. 당사자가 돼서야 깨달았다

[오마이뉴스 글:강동희, 편집:김예지]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11년째 정신과 질환과 동고동락하며 살고 있습니다. 제 증상을 빼고는 일상을 설명할 수 없고, 오랜 치료의 과정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제 인생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저를 처음 치료한 의사는 보호자였던 부모님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매우 중증이고, 평생 어떠한 일도 할 수 없으며, 치료만 받아야 하고, 군대도 당연히 못 간다고. 절 향해 많은 꿈을 꾸셨던 부모님은 어떤 심경이셨을까요. 아버지는 진료실을 나온 뒤 심한 욕설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의 제 삶은 기적이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던 의사의 예상과 달리 저는 콜센터 노동자로 취직해 좋은 대인관계를 맺고, '보통 사람들'도 흔히 겪기 어려울 귀한 추억과 사랑을 경험했으며, 업무적으로도 인정받아 CS강사라는 번듯한 직업도 갖게 됩니다.

기적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콜센터 일을 하면서 주경야독해 독학학위제로 영어영문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여러 언론과 기관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생애 가장 찬란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어떤 의사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같은 증상을 가진 다른 이들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들을 해내고 있다고. 다른 의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 NBA에서 잘 뛰는 한국인 선수가 있다면 그 사람을 보는 기분이 이럴 거 같다고 말이죠.

그런데 얼마 전엔가, 그 '알 수 없는 힘'이 제 곁을 잠시 떠났습니다. 출근할 수 없었습니다. 고장이 나 버린 겁니다. 일을 하지 못하는 기간은 누적돼 3개월 4개월이 됐고 급기야 4월 말에 이르자 쌀독에 쌀이 떨어졌습니다. 끊임없이 재취업을 시도했으나 떨어졌고, 처음 만난 이들에게 강렬하고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재주가 있어 '면접의 신'으로 불렸던 옛 시절이 무색하게도 면접에서도 계속 탈락했습니다.

결국 생활고는 점점 더 심해져 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마침내 저는 주민센터를 찾아 '이 나라 국민으로서의 기초적인 생활을 보장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예, 국민 기초생활보장 신청자가 된 것입니다.

서류만 11개에 총 비용은 1만 4천8백 원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한 장면. 주인공 다니엘은 심장병 때문에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관공서에 찾아간다. 그리고 복잡하고 관료적인 절차를 마주하며 좌절한다.
ⓒ 영화사 진진
저는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그동안 제 자신이 가진 능력 이상으로 '국민의 의무'를 다했기 때문입니다. 평생 돈을 버는 일은 못할 거라던 의사의 말이 무색하게 사무실에서 두 번째로 오래 일한 사원이 됐고, 승진도 했습니다. 노동의 의무를 다하니 당연히 납세의 의무도 자동으로 실천했고 일하면서 주경야독해 의무교육 이상의 교육의 의무를 완성했습니다. 비록 현역은 아니지만 민방위 훈련에 누락 없이 참석해 국방의 의무도 다했습니다.

그렇게 제 의무를 다한 제가, 잠시 증상이 나빠진 시기 동안 국민의 권리인 '사회권'을 행사하겠다고 주민센터 복지 창구에 앉은 겁니다. 부끄러울 게 뭐가 있어? 라고, 생각하려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일을 할 수 없고,부모님도 저를 도울 수 없으며,재산도 없다는 '확인 절차'를 거치며 저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민센터의 담당 공무원이 정중하고 친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신청을 위한 절차와 비용 등이 너무나 부담스러웠던 것이죠. 서류만 열 한 가지. 그중 최근 1년간 은행거래내역서와 근로능력평가서, 혼인관계증명서와 가족관계증명서는 유료였습니다. 통합 14,800원이 들었습니다. 당장 오늘의 식사를 걱정해야 하는 제게 한 달 후에 들어올 수도,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는 얼마를 위해 3일 치 식료품값을 포기하라니, 너무 가혹하단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그 중 혼인관계증명과 가족관계증명은 주민센터 내부에서도 바로 확인이 가능하고 굳이 수급 요청자가 서류를 따로 내지 않더라도 정부 전산으로 충분히 확인이 가능한 것인데 각 1천 원씩을 부담해야한다는 점이 매우 불합리하게 느껴졌습니다. 2천 원은 제가 우유 두 팩을 사서 3일 동안 먹을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절차 또한 매우 복잡해서, 직장생활 하면서 매일 수십장의 A4용지를 만졌던 저임에도 굉장히 헤매게 되더군요. 대출 서류보다도 더 복잡했습니다. 특히 부양의무자 란의 경우 저에 대한 부양의무가 있는 부모님께 직접 찾아뵙고 서명을 받아와야만 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애초에 부모 도움을 받을 형편이었으면 왜 주민센터에 왔겠습니까. 다시는 부모 자식 하지 말자며 헤어진 게 3년 전인데 정부 보조금 때문에 그러니 좀 만나달라 소리가 쉬웠겠냐고요.

저는 제 몫의 노동을 하고 제가 내야 할 세금을 냈으며 저 혼자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지원금을 요구했습니다. 절 돌봐줄 다른 사람과의 법적인 관계와 이들의 소득 수준을 증빙할 이유가 없었죠. 결국 하기는 했습니다만.

 국민기초생활보장을 위한 자료들
ⓒ 강동희
그렇게 해서 바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냐고요? 아니요. 심사에 한달에서 한달 반 정도가 걸린다고 하더군요. 이에 저는 당장 식사 문제가 시급하다는 점을 들어 긴급복지를 신청했습니다.또 다시 20분 정도 서류를 쓰고 20분 정도의 면담을 거쳤습니다. 은행 병원 주민센터 등을 돌며 떼온 서류에다가 고시원 원장의 사업장등록증과 통장사본까지 가지고 오라고 하는군요. 참 더운 날이었습니다. 옷이 다 젖을 정도였어요. 그리고 마음은 더 축축했습니다.

정치가 다양해져야 하는 이유

저는 진보의 가치를 믿고, 국가 존립의 근거는 복지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관련해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썼고요. 하지만 이게 '내 일'이었던 적은 사실 없습니다.

이번에 이런 일을 겪으면서, 정말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1차적으로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 참 문제 많다는 생각을 했죠. 직장인도 힘든데 글 모르시거나 장애 있으신 분이 이 '해 오라는 서류'들을 다 해올 수 있을까. 심사 기간도 너무 깁니다. 당장 어제오늘 아무것도 못 드신 분들이 창구에 앉아 계시는데 결과는 한 달이 지나야 나온다니, 적절치 않죠. 또한 백 원 이백 원이 아쉬운 상황에 계신 분들께 병원 우체국 은행 등을 돌며 만 원 이상을 부담해야 하는 자료들을 출력하도록 하는 것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특히 결혼관계증명서처럼 그냥 전산에 '치면 나오는' 것에 천 원을 쓰라는 건 잘못된 것이죠.

그러나 깨달음은 한 가지 더 있었으니, 바로 책은 선생이 맞지만 선생일 뿐이더라는 것입니다. 부양할 가족이 있으면 복지혜택을 못 받는 부양의무제에 대해, 저는 이번 일이 생기기 전부터 이것이 불합리하다고 배웠고 심지어 서명운동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는 것과 당사자가 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습니다. 글로는 다 적을 수 없는, 심지어 지금 이 글에도 미처 다 적지 못하는 지점이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우린 정치가 보다 다양한 민의를 다룰 수 있도록 다양성이 있는 국회와 지자체를 지향해야 합니다. 성남시장 이재명 씨는 장애인이시고, 군소정당의 여성 의원 후보로서 3선에 성공한 심상정 의원은 이번에 여성 대통령에 도전하죠.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 목록.
ⓒ 강동희
이것만으론 부족합니다.차마 말로 못할 '그 무엇'까지 이해하고 남이 아무리 들여다보려 해도 볼 수 없는 갑갑함을 풀어주려면 장애인. 여성뿐 아니라 하비 덴트같은 성소수자 정치인까지도 마구마구 나와야 합니다.

저는 반드시 재기할 것입니다. 이제 겨우 심사 단계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어떻게 되든 이 과정에서 제도의 허점을 비롯한 많은 것을 알게 된 것은 소득입니다. 또한 당장 밥이 없어 굶고 있는 시민이 도움을 구하기 위해 나라의 곳간을 두드릴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 준 수많은 '진보'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끝까지 조심스럽고 정중하고 친절하셨던, 주민센터 선생님들께도요.

반드시 다시 일어나,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모든 이들이 저처럼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저는 일을 하고 세금을 낼 것입니다. 물론, 대통령도 뽑을 것이고요. 여러분도 복지를 고민하는 이들의 목소리, 복지를 필요로하는 이들의 신음, 그리고 복지를 약속하는 지도자의 약속에 귀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이것이 바로 나라를 나라답고 든든하게 만드는 기초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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