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내희 칼럼] 노동절 아침의 단상

2017. 4. 30.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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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노동절을 맞는 지금,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철폐,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며 노동자 6명이 고공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대선 후보들 가운데 누가 이들 노동자, 나아가서 부채를 짊어지고 헬조선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진심으로 하려는 것일까? 선거 당일 나는 이런 질문을 떠올리며 투표를 하게 될 것 같다.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 가운데 단연 최고다. 부끄럽게도 2000년대 초 이후 지금까지 1위 자리를 계속 지켜왔다. 2015년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6.5명으로 몇 년 전보다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오이시디 평균인 12명에 비해 두 배가 훨씬 넘는다. 1990년대만 해도 상황이 이토록 나쁘지는 않았다. 당시 자살률은 8.8명으로 일본(17.5명)과 독일(17.1명)의 절반에 불과했다.

자살률 급증의 가장 큰 원인은 사람들이 살기 어려워진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부채 증가가 특히 문제다. 한국의 가계부채 규모는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에는 211.2조원이었으나 2016년 말에는 무려 1344.3조원이나 되었다. 국내총생산(GDP)은 1637.4조원으로 1997년의 506.3조원보다 3배가 조금 더 증가했을 뿐인데, 가계부채는 그사이에 6배보다 더 늘어난 셈이다. 개인사업자 부채까지 생각하면 그 규모는 더 커진다. 통계상으로 기업대출로 잡히지만 개인사업자 부채는 사실상 가계부채다. 그 규모도 329조원이나 되어 이를 합칠 경우 가계부채는 1673조원이 넘게 된다. “빚지고는 못 산다”는 말이 있다. 2000년대 이후 자살률이 급증한 것은 부채가 이렇게 늘어난 것과 무관할 리 없다.

부채 증가의 이유는 금리가 인하된 데서 찾아야 한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1990년대 초에는 10%를 훌쩍 넘던 것이 2000년대 초에 4%대, 중반에 2%대로 떨어지더니 지금은 1.25%에 불과하다. 반면에 과거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저축률은 한때 오이시디 최하로 떨어지기도 했다. 가계부채가 급증한 것은 저축보다는 대출이 자산 형성에 유리해진 데 따른 필연적 결과다. 금리 인하와 함께 대출 장려도 추진되었다. “빚내서 집 사라”는 말이 그것이다.

대출이 쉬워진 것을 ‘금융 민주화’로 보는 견해도 있다. 과거에는 문턱이 높기만 하던 금융권으로 하여금 일반 대중에게도 문을 열게 만든 금융정책을 민주화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부채와 자살률이 급증한 것을 보면 금융 민주화를 꼭 축복할 일이라 할 수는 없다. 2007년 미국에서 일어난 비우량주택담보대출 위기를 통해서도 이런 점이 확인된다. 당시 문제는 가난한 흑인, 히스패닉, 여성 가계로 하여금 대출을 받아 대거 주택을 구입하게 만든 데 있었다. 주택을 소유하게 된 가난한 사람들이 기뻐한 것도 잠시, 시장 활황이 끝나자 이자 연체 사태가 일어났다. 이때 손해를 본 것은 대부분 가난한 이들로서, 당시 200만이 넘는 가계가 주택을 빼앗긴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대출이 쉬워지며 개인들은 엄청난 빚을 지게 되었고,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대출로 자산을 늘린 가계도 물론 있지만, 자산 대부분이 부채인 가계도 함께 늘어났다. 대출금으로 장만한 주택의 시세보다 껴안은 전셋값이 더 높은 ‘깡통주택’ 수도 만만치 않다. 이러는 사이 한국은 사회적 불평등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2014년 상위 10%의 근로소득은 하위 10%의 무려 56배나 된다. 오이시디 발표에 따르면 2012년 말 상위 1%의 소득은 전체 소득의 12.23%로 오이시디 3위, 상위 10%의 소득은 44.87%로 2위 수준이다. 상대적 빈부격차가 얼마나 심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통계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본주의에서 살아가기 위해 노동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노동권이 너무 열악하다. 임금과 복지 수준이 모두 너무 낮고 소득을 확보하지 못해 생계의 공포로 떠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 결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대거 자살을 하고 있다. 이런 나라는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대통령 탄핵으로 앞당겨진 제19대 대선이 코앞에 다가온 가운데 오늘은 마침 제127주년 노동절이기도 하다. 노동절을 맞는 지금, 서울 광화문 근처에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철폐,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며 노동자 6명이 고공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대선 후보들은 하나같이 한국을 더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내놓고 있지만, 과연 누가 이들 노동자, 나아가서 부채를 짊어지고 헬조선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진심으로 하려는 것일까? 선거 당일 나는 이런 질문을 떠올리며 투표를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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