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벽보, 뗀 사람 잘못일까 허락없이 붙인 사람 잘못일까

김형준 2017. 4. 3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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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 하는 건데, 하마터면 쇠고랑 찰 뻔 했죠."

서울 마포구에서 건물관리인으로 일하는 이모씨는 지난달 21일 자신이 맡고 있는 상가 건물 벽면에 붙어 있는 선거벽보를 보고 한참을 고민했다.

30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당산동의 한 건물관리인 양모(60)씨는 자신이 관리하는 건물에 붙은 선거벽보를 뗀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영등포경찰서에 불구속 입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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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건된 건물관리인 “직업상 본분”

선관위 “사유지라도 훼손은 위법”

30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일대에 선거벽보와 함께 붙어있는 주의문.

“할 일 하는 건데, 하마터면 쇠고랑 찰 뻔 했죠.”

서울 마포구에서 건물관리인으로 일하는 이모씨는 지난달 21일 자신이 맡고 있는 상가 건물 벽면에 붙어 있는 선거벽보를 보고 한참을 고민했다. 명색이 관리인인데, 본인에게 허락도 없이 벽보를 붙였으니 당장 떼버리고 싶었지만 주변에서는 “혹시 모르니 그대로 두라”는 조언을 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선거벽보를 뗀 사람들이 경찰에 붙잡혔다는 언론 보도를 접할 때마다 등골이 오싹했다”고 털어놨다.

대선 벽보를 둘러싸고, 때 아닌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또 대선 후보를 소개하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 측에서 도심 곳곳에 후보들 사진을 담은 벽보를 붙여놓고 있는데, ‘내 담벼락에, 내가 관리하는 건물에 허락도 없이 부착한다’는 불만과 함께 실제 벽보를 훼손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30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당산동의 한 건물관리인 양모(60)씨는 자신이 관리하는 건물에 붙은 선거벽보를 뗀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영등포경찰서에 불구속 입건됐다. 양씨는 이씨가 ‘뗄까 말까’를 고민하던 날, 선거벽보를 떼낸 것으로 조사됐다. 떼 낸 벽보를 돌돌 말아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봐 벽보를 훼손하겠다는 목적보다는 ‘관리인의 본분’ 때문에 뗐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게 경찰 설명. 영등포서 관계자는 “(그렇다고 해도) 일단 선관위에 물어보는 게 옳았다”고 했다.

마포구 연남동에 사는 미국인 영어강사 R(54)씨도 같은 날 같은 혐의로 마포경찰서에 불구속 입건됐다. 그 역시 이웃 주민들에게 “우리 집(My home)”이란 말을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 집 담벼락에 허락도 없이 붙였으니, 떼어 낸 것’이라는 얘기다.

‘신경전’은 선관위의 사전고지가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선거벽보를 ‘허락 없이 뗀’ 사람의 잘못이 있기에 앞서, 사유지에 ‘허락 없이 부착한’ 선관위 잘못도 있단 것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최대한 건물주나 관리인들에게 사전고지를 하고 붙이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일부 협조를 구하지 못한 곳도 있는 것 같다”며 “다만 사유지더라도 선거벽보 훼손은 명백한 위법 행위”라고 밝혔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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