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가위, 에이즈 완치 길 열었다

송기원 연세대학교 교수 2017. 4. 3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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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유전자 가위의 활용

[송기원 연세대학교 교수]

 

기존 기술과 대비하여 상대적으로 효율이 높고 간편한 유전자가위를 이용하여 인간의 의도대로 세균, 식물 동물 등 다양한 생물체에서 유전체의 교정이나 편집이 시도되었거나 시도되고 있다.


지난 이야기에서는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하여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가 자손을 가지 못하게 하거나 말라리아균에 내성을 갖는 모기를 만들어 말라리아의 확산을 막을 수 있도록 하는 시도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밖에도 맥주를 만드는 효모에서 특정 유전자를 유전자가위로 제거하여 맥주의 맛을 높이는 방법이 이미 사용되고 있으며, 식물에서는 갈변이 잘 일어나지 않는 사과와 곡물의 껍데기에 주로 많이 들어있는 피트산 (phytic acid) 함량을 낮춘 옥수수 등이 개발되었다. 피트산은 순기능도 있으나 체내에서 칼슘·철분·마그네슘과 같은 미네랄과 잘 결합해 이 물질들을 몸 밖으로 배출시킴으로서 필수 미네랄 이용성 저하 및 단백질 흡수 저하 등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피트산을 만드는 기능의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발현이 잘 안되도록 바꾼 것이다. 


또한 동물의 경우 '광우병 내성 소'나 '인간화 장기 생산용 돼지', 그리고 '근육강화 돼지' 등을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광우병 내성 소'는 광우병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외의 중요한 생체 기능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프리온' 단백질의 유전자를 유전자가위 기술로 제거하거나 발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서울대 김진수 교수 연구팀은 2015년 7월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윤희준 중국 옌볜대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돼지의 유전체에서 근육을 없애는 기능의 마이오제닌이라는 단백질에 해당하는 유전자를 제거하여 일반 돼지보다 근육량이 많은 '슈퍼근육 돼지'를 만들었다.


평균 수명의 증가와 함께 증가하는 장기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른 동물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이종 간 장기이식은 인간의 중요 관심사였다. 다른 종의 장기를 이식할 수 있다면 장기와 수요와 기증되는 장기의 심각한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특히 돼지의 장기들을 인간의 장기와 크기가 유사하여 돼지를 장기이식을 위한 종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의 가능성이 오랜 기간 타진되어 왔다. 그러나 돼지를 이용한 이종 장기 이식의 상용화를 가로막는 여러 장벽이 존재하는 바, 그중 하나가 바로 돼지에 존재하는 PERV라는 바이러스였다. 이 바이러스는 돼지의 유전체 내부에 존재하고 돼지에게는 해가 없지만, 인체 내부에 들어오면 숙주가 바뀌게 되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그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제약회사들이 PERV의 활성을 억제하는 약물의 개발에 투자해 왔다. 하지만 2015년 10월, 하버드 의대 George Church와 Luhan Yang이 이끄는 연구팀은 CRISPR-Cas9을 이용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 연구팀은 돼지의 세포 유전자에 포함되어 있는 62개의 PERV 바이러스 유전자를 크리스퍼-Cas9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하여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이렇게 PREV 바이러스 유전자를 제거한 돼지 세포는 인간 신장 세포에 대한 PERV 감염을 1000분의 1로 줄인다는 것을 확인했다. 현재는 세포 단계에서 실험을 진행했지만, 향후 돼지 수정란에서 CRISPR-Cas9을 이용해 PERV 유전자를 제거한 후 성체로 키워 장기이식에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또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유전자 치료를 위해 인간에 적용하기에 앞서 쥐 등 실험동물에서 가능성을 검증하는 연구들이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에릭 올슨 연구팀은 2014년 쥐의 배아를 대상으로, 2015년 12월에는 성체 쥐를 대상으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유전자 치료를 통해 뒤시엔느 근위축증을 치료하는 성과를 발표했다. 비록 실험적 단계에서 낮은 수준의 치료 성공률에 그쳤다고는 하지만, 그 가능성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평가하고 있다.

사람에게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기술이 가장 성공적으로 적용된 예는 HIV 바이러스에 의해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에 걸린 환자를 완치시킨 것이다. HIV 바이러스는 T 세포라는 면역세포에 존재하는 CCR5라는 수용체를 통해 세포 내부로 침입하여 면역시스템을 망가트리는 후천성 면역결핍증을 유발한다. 하버드 대학교의 Chad Cowan과 Derrick Rossi 연구팀은 CRISPR-Cas9를 이용해 골수의 조혈모세포에서 CCR5를 제거한 후 이렇게 CCR5가 제거된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는 방법을 통해 HIV를 치료하는 계획을 세웠고, 실제로 Timothy Brown이라는 환자에게 이렇게 CCR5 유전자를 제거한 조혈모세포를 이식하여 에이즈를 완치시킬 수 있음을 보였다.

또 다른 연구그룹은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하여 HIV 수용체를 없애는 것이 아닌, CRISPR-Cas9을 이용해 직접 HIV 바이러스를 공격하도록 하는 전략을 설계했다. HIV 바이러스의 유전자 말단 부분에 존재하는 LTR(long terminal repeats)을 표적으로 삼아 이를 선택적으로 잘라내도록 유도한 것이다. 


또한 크리스퍼 가위가 유전체의 다른 부분을 임의로 자르는 효과를 피하기 위해서 HIV 바이러스와 인간의 전체 유전자를 분석하여 바이러스 특이적인 잘라 낼 염기 서열을 선택했다. 그 결과 CRISPR-Cas9 시스템이 HIV 바이러스의 유전자와 인간 유전체에 복제된 HIV 유전자를 탐지하여 잘라내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몸에서 정자나 난자를 만드는 생식세포가 아닌 체세포의 치료에 이 방식을 적용시키기 위해선 수많은 체세포들에 CRISPR-Cas9을 전달해야하는 기술적인 한계가 있다. 


, 유전자 가위를 이용하여 세포의 유전체 정보를 바꾸는 경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수정란이나 아주 초기 배아세포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래야 여기서부터 유래한 생명체 대부분의 세포가 바뀐 유전정보를 따라 만들어 지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다양한 식물이나 동물에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적용한 경우는 모두 씨나 수정란에 이 기술을 적용하여 개체의 모든 세포에서 유전체 정보가 모두 바뀐 생명체를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궁극적으로 유전자 치료를 위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면 초기 배아세포에 이 기술을 적용하는 문제를 피해가기 어렵게 된다. 다음 글에서는 크리스퍼를 인간 배아에 적용하는 가술과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송기원 연세대학교 교수 (mendram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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