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도 못지키고 처벌도 미흡한 '글리벡' 논란

송진식 기자 입력 2017. 4. 30.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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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노바티스가 개발한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 / 경향신문 자료사진
·글리벡 과징금‘솜방망이 처벌’ 논란 ·복지부 ‘리베이트 투아웃제’ 불구 과징금 결론

4월 27일 보건복지부가 의사들에게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한국노바티스의 의약품들에 일부 보험급여 정지 및 551억원의 과징금 부과 처분을 내렸다. 최대 관건이었던 표적 항암치료제 ‘글리벡’의 경우 급여 정지 처분을 면해 글리벡을 복용해온 환자들은 추가 비용부담 없이 종전대로 약을 계속 복용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처분은 의료계의 불법 리베이트 관행을 뿌리뽑겠다며 정부가 2014년 도입한 ‘리베이트 투아웃제’가 적용된 첫 번째 사례다. 복지부는 “환자들의 안전을 고려해 내린 결론”이라는 입장이지만 경제정의시민실천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제도의 취지를 훼손한 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서부지검은 2016년 8월 10일 제약사의 불법 리베이트 제공사건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A제약사(한국노바티스)가 2011년 1월부터 2016년 1월까지 25억9000만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제공해 왔다”고 밝혔다. 한국노바티스 및 대표이사 등 전·현직 임원 6명과 리베이트를 수수한 의사 15명 등 34명이 불구속 기소됐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스위스에 기반을 둔 노바티스는 전 세계 시장 연매출이 60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다국적 제약사다. 한국노바티스는 지난해 4484억원의 매출을 올려 한국화이자에 이어 다국적 제약사 매출 순위 2위를 기록했다. 세계적인 제약사임에도 한국노바티스는 2011년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서도 2006년부터 2009년 사이에 의사들에게 71억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실이 적발돼 23억5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의약품 리베이트는 환자의 정당한 의약품 선택권을 제한하고, 국민들의 혈세로 조성되는 건강보험재정에도 큰 손실을 초래한다. 이에 정부는 2014년 7월 리베이트로 두 번 이상 적발 시 해당 약품에 대한 보험급여를 정지하거나 제외하는 리베이트 투아웃제를 도입했다. 약품에 대한 보험급여가 정지되면 환자가 약값을 전부 부담해야 하므로 해당 약품 구매를 꺼리게 돼 제약사는 막대한 매출 손실을 보게 된다. 한국노바티스는 2011년과 2016년 두 차례 리베이트가 적발돼 이 제도의 첫 번째 적용대상이 됐다.

■백혈병환우회 “급여 중단 안된다” 원칙대로라면 한국노바티스가 국내 시장에 판매 중인 42개 약품 모두 급여 정지 처분을 받는 게 맞지만 대상품목 중 글리벡과 같은 주요 의약품이 있다는 게 문제가 됐다. ‘기적의 백혈병 치료제’로 더 널리 알려진 글리벡은 국내 5000여 백혈병 환자 중 3000여명이 사용 중인 약품이다. 글리벡을 치료제로 쓰는 다른 암환자까지 포함하면 급여 정지 처분을 내렸을 때 약품 사용에 문제가 생기는 환자는 6000여명 수준으로 불어난다.

글리벡은 비싼 약품이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글리벡필름코팅정 100㎎’의 경우 한 알당 단가가 2만3045원이다. 암환자의 경우 건강보험급여 지원을 받아 단가의 5%만 부담하면 복용할 수 있지만, 복지부가 보험급여 정지 처분을 내릴 경우 단가를 모두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이 때문에 백혈병환우회는 “급여 중단 시 환자별로 월 6만5000~13만원 수준인 약값이 130만~260만원 선까지 뛰어오를 것”이라며 글리벡에 대해 급여 정지 대신 과징금 처분을 내려줄 것을 요구했다.

반면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이미 시중에 글리벡과 동일한 약효를 가진 복제약품(제네릭)이 여러 종류 나와 있는 점을 들어 “급여를 정지해도 대체약품이 있으니 원칙대로 정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백혈병환우회는 “현재 환자들이 쓰는 건 특허가 2018년에 만기되는 ‘글리벡 베타형’ 약품”이라며 “제네릭은 ‘글리벡 알파형’을 복제한 약이라 제네릭으로 약품을 대체 시 부작용 발생이 우려된다”며 맞섰다. 논쟁이 이어지자 복지부는 간담회를 열고 전문가와 환자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리베이트 투아웃제에서는 ‘약물 변화로 환자들이 건강상에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경우’ 등에 한해 급여 정지 대신 과징금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예외를 두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글리벡의 경우 환자가 수년간 장기 복용해야 하는 항암제”라며 “약제 변경 시 동일성분 간이라도 적응과정에서의 부작용 등 우려가 있으며, 질환의 악화 시 생명과 직결된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해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약효가 동일한 제네릭이 있다 해도 길게는 10년 넘게 같은 약을 복용해온 환자들에게 하루아침에 약을 바꾸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글리벡 베타형만 해도 “특허 만료를 연장하기 위한 노바티스의 꼼수”라는 지적이 있는 반면, 흡수력과 일부 복용 부작용 측면에서 알파형보다 낫다는 학계 의견도 있다. 복지부가 글리벡에 과징금 처분을 내린 결정 자체에 대해선 이견이 별로 없다.

하지만 예외조항 탓에 리베이트 투아웃제가 제대로 된 처벌 및 예방효과를 내지 못한 것에는 문제가 있다. 법에서는 약품당 ‘부당금액’ 규모에 따라 급여 정지 기간이나 과징금 부과규모가 달라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노바티스의 경우 25억9000만원을 리베이트로 제공했고, 생산약품이 총 42종이라는 점을 들어 약품당 부당금액을 평균 6166만7000원으로 책정했다. 부당금액이 ‘5500만원 이상 7500만원 미만’일 경우 1차 위반 시 급여 정지 기간은 6개월, 이를 과징금으로 대체 시 금액은 1년간 총 보험금여액의 30%다. 이에 따라 한국노바티스도 대체약품 등이 있는 9종의 약품은 6개월 급여 정지, 나머지 33종은 급여 정지 대신 해당 약품의 지난해 보험급여 총액(1835억원)의 30%인 551억원을 과징금으로 부과받았다.

■제약사들이 환자 ‘담보’ 잡는 허술한 제도 시민단체는 부당금액 산정부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한국노바티스가 42종의 약품을 판매 중인 것은 맞지만 분명 리베이트를 통해 이익을 보려 하는 ‘주력 약품’이 존재한다. 한국노바티스는 당뇨약으로 쓰이는 가브스정으로 지난해 510억원, 글리벡으로 505억원의 보험급여를 각각 받았다. 이 두 약품으로 받은 보험급여만 1015억원으로 과징금으로 대체된 33개 약품의 지난해 보험급여 총액의 절반을 훌쩍 넘는다. 검찰이 밝히진 않았지만 한국노바티스가 리베이트를 통해 적극 판매를 장려하고자 하는 약품들이 이들 주력 약품이었다는 점은 쉽게 추정이 가능하다. 이에 근거하면 부당금액 산출 역시 주력 약품을 위주로 하는 게 보다 합리적이다.

복지부는 이런 정황을 무시하고 약품당 평균 부당금액을 산출하는 방식을 택했다. 복지부는 “검찰이 각 약품당 리베이트 금액이 얼만지 따로 밝히지 않아 평균 부당금액을 산출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노바티스는 급여 정지를 당했을 때보다 과징금을 부과받는 게 더 이익이 된 셈이 됐다. 가브스정과 글리벡이 과징금이 아닌 6개월간 급여 정지를 당했다고 가정할 경우 지난해 보험급여 기준 한국노바티스의 손실은 이 단 두 종의 약품만으로도 507억원이 넘는다. 제약사들이 환자를 ‘담보’로 잡고 있는 한 이 같은 허술한 제도로는 리베이트 투아웃제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없는 셈이다. 일각에서 리베이트 투아웃제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자는 건의가 나오는 이유다.

곽명섭 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보다 실효성 있는 제재를 위해 과징금의 상한을 현재 40%에서 최대 60%까지 인상하는 방안 및 향후 리베이트 약제에 대한 강제 약가 인하 처분도 선택적으로 병행할 수 있도록 국회 등과 논의과정을 거쳐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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