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년간 한 자리를 지킨 '동네서점 생존기'

CBS노컷뉴스 구민주 기자 2017. 4. 30.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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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에 이자만 1천만원.."추억,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
안양 대동문고 전창민 대표가 서점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구민주 기자)
"장소에 대한 '기억'과 '추억'은 그 장소가 사라지면 같이 없어져 버리잖아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50여년 안양 1번가 '만남의 장소'로 명맥을 이어오던 안양 대동문고. 10여년 전, 앉아서 주문만 하면 책을 가져다주는 인터넷 서점에 주춤하는가 싶더니, 길 건너에 들어선 대형서점은 대동문고를 존폐의 기로에 세우고 말았다.

지난 2008년. 안양 대동문고는 부도를 맞았다. 반토막 난 매출에 결국 매장과 건물이 모두 경매로 넘어갔다.

아버지로부터 대동문고를 이어받은 뒤 처음으로 쓰디 쓴 눈물을 흘렸던 전창민(46) 대표. 하지만 그에겐 대동문고를 쉽게 포기 하지 못 할 '그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했다.

"우리 서점이 역사가 오래 된 만큼 사람들 기억 속에 많이 남아 있잖아요. 책을 하나 꺼내 들고는 때로는 연인을 때로는 친구를 기다리던…. 여기 사람들에게 이 곳은 그런 설레는 추억의 공간일 겁니다. 그런 건 돈으로 살 수 없잖아요."

그가 지금도 가장 아끼는 사진 한 장이 있다. 57년 전 대동문고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찍었던 빚바랜 흑백 사진 한 장. 그 세월만큼이나 사람들의 기억속에 쌓여 있을 대동문고를 지키기 위해 전씨는 오늘도 '골리앗'을 상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1961년에 처음 만들어진 대동문고의 모습 (사진= 대동문고 제공)
◇ 한달에 이자만 1천만원…"추억,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

부도 이후 전 대표는 큰 빚을 내 매장 한 개 층을 겨우 되찾았다.

한 달 이자만 1천만 원. 월말이면 돈을 빌리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겨우 책 대금을 맞출 수 있는 처지지만 긍정적인 생각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57년 동안 좋은 시절이 없던 건 아니다. 작은 구멍가게로 시작한 대동문고는 조금씩 그 규모를 늘려가며 번듯한 건물을 세워 책으로 가득 채우고, 50명이 넘는 직원을 두기도 했다.

안양의 명소가 되면서 각종 세미나나 이벤트를 수시로 열어 시민들과 호흡했고, 매출 일부를 떼어내 지역내 어려운 이웃들을 도왔을 정도로 인심도 넉넉했다.

전 대표는 "대동문고가 안양 사람들과 함께 자라온 서점이라는 자부심이 있다"며 "새로 들어온 대형서점이 반듯하고 좀 편할진 몰라도 역사를 함께한 경험과 추억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어려운 상황에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는 있지만, 안양 사람들의 기억 속 대동문고는 여전히 향수가 있다.

대동문고에서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던 옛 손님은 눈물을 짓기도 했다. 오래 전 부산에서 안양으로 이사와 갈 곳이 없어 아기를 데리고 서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는 이 여성은 어려움에 처한 대동문고의 안타까운 현실에 가슴 아파했다.

대동문고 단골 손님인 양대성(48)씨는 "젊은 시절 대동문고는 나에게 놀이터나 마찬가지였다. 친구들과 약속을 해도 늘 대동문고에서 만났다"며 "이제껏 서점이 버텨온 것은 단골인 안양사람들 때문인 것 같다"고 회상했다.

전 대표의 자부심 안에는 어렵던 시절 낯선 타향에서의 안락함과 지루하지 않게 친구를 기다릴 수 있게 해준 편안하고 따뜻했던 대동서점이 자리하고 있다.

57년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대동문고의 모습 (사진= 구민주 기자)
◇ 동네서점은 도심 속 '공원'…지역문화 보존 위해 동네서점 살려야

하지만 갈수록 상황이 녹록치만은 않다. 매장 유지비 등 고정비용은 그대론데, 매출은 늘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시설과 서비스에 대한 재투자도 어렵다. 겨울에 히터 한 번 켜보지 못했고, 에스컬레이터 역시 멈춰선 지 몇 해다.

"지금까지 버텨온 수준에 불과하죠. 인터넷과 대형서점의 시스템, 시설에 경쟁력도 밀리다보니 악순환이 반복돼 동네 서점이 점점 설자리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005년부터 매출에 타격을 줬던 교보문고가 영업을 마치고 떠난다는 말에 희망을 가졌었지만, 그 자리에 또 다른 대형서점인 영풍문고가 들어올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지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동네 토박이 서점이지만 대형서점과 경쟁하기엔 한계가 있다"면서 "어렵게 버텼는데 또다른 대형서점이 들어온다고 하니 이대로 서점 문을 닫게 될까봐 걱정된다"고 하소연했다.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는 동네서점을 살리고 싶다는 전창민 대표.

그는 "사람들이 공원에 가서 휴식을 취하듯, 동네서점도 도심의 공원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동네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단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점이 살아남기 힘든 상황에서 대형서점까지 들어오면 아무리 노력해도 동네서점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며 "지역 경제와 지역공동체 문화를 보전할 수 있는 동네서점 살리기에 정부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CBS노컷뉴스 구민주 기자] kum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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