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간절한 노래

2017. 4. 29.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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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세월호 참사 3주기 영국 록밴드 콜드플레이 공연장과
광화문광장에 울려퍼진 세월호 추모곡

‘세월호 참사 3주년’이었던 2017년 4월16일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펼쳐진 영국 록밴드 콜드플레이 공연. 현대카드 제공

서울 잠실 <옐로> 노래와 노란 물결

“스톱!”

노래가 갑자기 중단됐다. 영국에서 온 록밴드 콜드플레이가 공연을 시작해 두 번째 곡을 부를 때였다. 서울 잠실동 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을 가득 메운 4만5천여 관객이 술렁였다. 보컬리스트 크리스 마틴이 입을 열었다.

“우린 지금 잠시 공연을 멈추려 해요. 지금 이 곡은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부르는 노래거든요. 10초 동안 모든 걸 멈추고 이 공간에 추모의 감정만 있기 바랍니다. 모두 함께하면 정말 좋을 거예요. 오케이, 10초, 시작~!”

순간, 무대 뒤 대형 전광판에 노란 리본이 나타났다. “아!” 사람들의 입에서 외마디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러고는 고요한 침묵. 10초 동안 휴대전화 카메라 셔터 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사람들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10초 뒤 콜드플레이는 초창기 히트곡 <옐로>(Yellow)를 마저 불렀다. 사람들이 손목에 차고 있던 밴드에서 노란 빛이 반짝였다. 중앙통제센터에서 무선으로 제어하는 전자 밴드였다. 객석 전체에 노란 물결이 넘실댔다. 크리스 마틴의 손목에도 노란 팔찌가 있었다. 사람들이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차는 팔찌와 같았다. 이날은 2017년 4월16일,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꼭 3년 되는 날이었다.

이 장면을 실제로 본 건 아니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그리고 이후 올라온 유튜브 영상에서 봤다. 나는 그 전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었다. 콜드플레이는 애초 4월15일 하루만 공연하려 했다. 하지만 입장권 4만5천 장이 순식간에 동났고 예매에 실패한 수십만 명이 발을 동동 구르는 사태가 빚어지자 공연을 하루 더 연장한 것이다.

첫날인 4월15일 공연장을 찾았다. 두 번째 곡으로 <옐로>가 나오는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세월호를 생각했다. 겉으론 흥겨워하면서도 왠지 숙연했다. 콜드플레이 멤버들이 세월호에 대해 한마디 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별다른 언급 없이 공연을 이어갔다. 서운한 마음이 살짝 들었지만 그들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알고 보니 콜드플레이는 세월호 3주기 당일 공연에서 추모 시간을 따로 가지려고 전날 공연 때 참았던 모양이다. 나중에 그 영상을 보고 ‘16일에 갈걸’ 잠시 생각했지만 그게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날 콜드플레이의 노래와 함께한 관객은 물론, 나처럼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수천만의 사람들이 얘기를 전해듣고 영상을 보며 커다란 위안과 감동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국경을 초월한 음악의 힘이 이런 걸까.

서울 광화문 ‘잊지 않겠다’ 눈물의 약속

내가 콜드플레이 공연장에 있던 4월15일 저녁, 서울 광화문에선 또 다른 노래들이 울려퍼졌다. ‘세월호 3주기 참사 기억문화제’가 열려 가수들이 무대에 선 것이다.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나온 이승환이 부른 첫 곡은 <물어본다>였다. “도망치지 않으려 피해가지 않으려/ 내 안에 숨지 않게 나에게 속지 않게/ 오 그런 나이어왔는지 나에게 물어본다/ 부끄럽지 않도록 불행하지 않도록 더 늦지 않도록.” 2004년 발표한 곡인데도 지금 이 순간 우리 스스로에게 묻고 싶은 얘기가 고스란히 담겼다. 이어 그는 세월호 추모곡으로 발표한 <가만히 있으라>와 가사에서 자연스럽게 세월호를 떠올리게 되는 <10억 광년의 신호>를 불렀다.

<너의 편>을 부른 한영애는 “네 편, 내 편 나누는 게 아니고요 사랑의 편, 정의의 편, 흐려진 희망의 편, 그리고 약한 자의 편, 나는 너의 편이라 노래했다”고 말했다. 권진원은 세월호 추모곡으로 발표한 <사월, 꽃은 피는데>를 부른 뒤 “3년이 지난 오늘도 너무 가슴이 아프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음악인으로서 딸을 둔 엄마로서 여러분과 늘 함께하겠다. 잊지 않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들뿐 아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수많은 가수가 추모곡을 꾸준히 만들고 불러왔다. 서울 홍익대 앞 인디 음악인은 물론 적지 않은 주류 가수들이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걸 감내하면서 세월호 노래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은 믿고 있었으리라. 노래가 가진 위안과 치유의 힘을.

전남 팽목항 절절한 염원을 담은 ‘집에 가자’

싱어송라이터 황푸하는 지난 1월 말 전남 진도 팽목항을 찾았다. 설 연휴인데도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가족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황푸하는 은화 어머니와 다윤이 어머니를 만났다.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만이 부모의 가슴을 아프게 한 건 아니었다. 미수습자에 대한 무지와 오해, 무관심과 망각이 가족들을 더욱 지치고 힘들게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황푸하는 생각했다. 노래를 만들어 이들의 이야기를 알려야겠다고. 동료 음악가 김목인과 시와가 기꺼이 함께하기로 했다.

미수습자를 찾기 위한 프로젝트 앨범 발매와 공연을 위해 크라우드펀딩에 나섰다. 300만원을 목표로 했는데 한 달 만에 163명이 500만원을 모아주었다. 그중 200만원을 들여 네 곡을 담은 디지털 음반 <집에 가자>를 만들었다. 나머지 300만원은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전달했다. 4월5일 공개된 음반은 각종 음원 사이트에서 무료로 들을 수 있다.

4월7일 저녁 서울 서교동 공연장 벨로주. 가슴에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단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후원자들이다. 김목인, 시와, 황푸하가 무대에 올라 노래했다. “엄마가 왔으니 집에 가자/ 엄마 손 꼭 잡고 집에 가자/ 얼마나 추웠니 그곳에서/ 엄마가 왔으니 집에 가자”고.

지금 목포신항에 있는 세월호에는 미수습자 9명이 있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배가 올라와도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4월20일 현재까지 미수습자 유해가 발견됐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차가운 바다 바람이/ 멈추고 따뜻한 사월/ 봄바람이 불어옵니다/ 외로운 등대 아래서/ 지내온 삼 년을 이겨내고/ 만날 준비를 합니다/ 너와 함께/ 학교 가보고/ 네가 좋아하는/ 춤도 춰보고/ 함께하는/ 꿈을 꾸며/ 이제는 같이 봄을 맞자.”

이토록 간절한 마음으로 노래를 듣기는 난생처음이다.

서정민씨네플레이 대표·전 <한겨레> 대중음악 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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