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소후보, 장난으로 대선 나온 것 아니다

백철 기자 2017. 4. 29.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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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4월 24일 대통령선거 비초청 후보 토론회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오영국 후보, 오른쪽 세 번째부터 순서대로 이경희, 윤홍식, 김민찬 후보. / 연합뉴스
·군소 후보들, 3억원 버리고 대체 왜 나올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
대통령 선거가 벌어질 때마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군소후보들이 늘 있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생각지도 못한 공약으로 일시적 주목을 끈 이들도 있었다. 이번 대선에는 후보가 총 14명으로 민주화 이후 가장 많다.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올해 대선과 유사한 2007년 대선에도 총 10명의 후보가 나왔다. 당시 군소후보 중에는 결혼수당 1억원을 공약한 허경영 후보와 포스터에 ‘나라를 지킨 철모’를 등장시킨 전관 후보가 잠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허경영 후보의 최종 득표율은 0.4%에 그쳤다.

선관위의 대선후보 토론 초청 기준으로 보자면 올해 대선의 군소후보는 9명이다. 그러나 새누리당 조원진, 국민대통합당 장성민, 늘푸른한국당 이재오, 민중연합당 김선동, 통일한국당 남재준 후보는 이미 정치판에서 알려진 이들이다. ‘정치 신인’이라는 의미의 군소후보는 기호 7번 오영국, 12번 이경희, 14번 윤홍식, 15번 김민찬 4명이다.

■사명감과 명예욕, 일반인이 상상 못해 대선 군소후보들도 과거 자신과 비슷했던 후보들의 사례를 충분히 살펴봤을 것이다. 비주류 대선 출마자들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은 좋은 편이 아니다. 4월 24일 비초청 후보 방송 토론회 이후 “기탁금 3억원이 아깝다”는 반응도 많았다. 방송 이후 무소속 김민찬 후보의 남침땅굴 질문과 오영국 후보의 흰색 정장이 그나마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됐다.

현실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없는데 이들은 왜 출마한 것일까. 정석적인 대답은 ‘대선을 나가면서까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군소후보들의 공약 중에 눈에 띄는 게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경제애국당 오영국 후보는 사업가답게 유통청을 설치하고, 신용불량자를 전원 신용회복시켜주겠다는 공약을 냈다. 12번 이경희 후보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아키히토 일왕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죄를 관철시키겠다고 했다. 14번 윤홍식 후보는 전국의 학당에 양심노트를 보급하겠다고 약속했다. 15번 김민찬 후보는 DMZ(비무장지대)에 전 세계의 문화를 모아놓은 문화도시를 건설하겠다고 했다.

사적 이익 때문에 대선에 출마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과거 허경영 경제공화당 총재는 대선 출마로 얻은 인기를 이용해 지지자들에게 거액의 특별당비를 받고, 수익사업을 벌인 바도 있다. 사업가인 오영국 후보도 ‘다른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는다. 그는 대선 공약에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하하그룹을 통해 400만개가 넘는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했다. 또한 유통청 공약도 하하그룹의 대리점 사업과 무관하다고 하기 어렵다.

군소후보들이 대선에 출마한 다른 주요 후보들에 비해 시대적 소명의식은 결코 작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현택수 사회문제연구소장은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의 사명감과 명예욕은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현 소장은 “국회의원 선거 경선에서 좌절된 후보도 자신이 말했던 사법개혁 정책을 알리려고 자기가 돈을 내서 일간지에 하단광고까지 낸 바도 있다”며 실제 신문광고 사진을 보여줬다. 그는 “국회의원 예비후보도 자기 돈으로 광고까지 해가며 뜻을 알리려는 역사적이고 시대적인 소명감에 불타 있다. 소명감이 매우 강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대통령 선거까지도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군소후보 선거캠프 측 인사들은 자신들이 ‘장난’으로 선거에 나온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캠프 관계자들의 목소리에도 진지함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무소속 김민찬 후보는 기자에게 “그냥 폼잡으려고 그 큰 돈을 내고 대통령 후보에 나선 게 아니다. DMZ에 세계문화예술도시를 세우겠다는 내 생각과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아니더라도 숨어 있는 많은 전통예술인들에 대해 평생 동안 알려도 많은 이들이 알아줄 것이라 생각하긴 어렵다”며 “비용이 없어 한 장짜리 흑백 공보물밖에 만들지 못했지만 전국민에게 내 생각을 알렸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제 목표의 절반은 달성했다”고 말했다.

4월 20일 서울 종로구 이화동의 담벼락에 대선후보 포스터가 붙어 있다. / 박민규 기자

한국국민당 이경희 후보 측은 “이번 선거는 후보 이름 한 번 알리려고 나온 것이 아니라 꾸준한 정치활동의 연장선”이라고 말했다. 한국국민당은 지난해 총선에도 참가해 후보를 낸 바 있다. 한국국민당 관계자는 “저희는 지속가능한 정당이 목표이며, 대선이 끝난 이후에는 바로 지방선거 준비에 들어갈 것”이라며 “군소주자라고는 하지만 4월 19일 고등직업교육 대선공약 토론회처럼 기회가 되는대로 정책토론회에도 계속 참석하고 있다. 선거 공보물도 모두 컬러로 16페이지를 만들었다. 1회성으로, 혹은 장난으로 선거에 나온 것이라면 이렇게 정성을 쏟을 이유가 있나”라고 말했다.

■선거 벽보와 공보물 비용도 수억원 들어 현 소장은 “현실적으로 당선이 안되는 상황이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출마했다는 것은 그만큼 기존 정치인들을 불신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도전의 상징처럼 생각하는 출마자들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운동가인 무소속 김민찬 후보는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됐지만, 정치권의 무관심으로 전통예술 분야는 여전히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계가 다 힘들지만 특히 전통예술 분야는 새로 배우러 들어오는 학생 숫자 자체가 너무 적다”며 “전통분야 장인들이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는 명인대학 설립도 내 꿈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선거 경험이 없는 후보들이기에 벌어지는 웃지 못할 일들도 있다. 4월 20일 한반도미래연합의 김정선 대선후보는 후보직을 사퇴했다. 금전적 이유가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미래연합 관계자는 “사퇴하기 전까지 며칠간은 정말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다. 기탁금 마련도 쉽지 않았는데 직접 선거운동을 해보니까 현실의 벽이 생각보다 너무 높았다”며 “방송 토론회까지는 참가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내부 의견도 있었지만 안되는 길을 계속 가기보다는 이 정도에서 접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무소속 김민찬 후보는 선거벽보와 공보물 비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김 후보가 선관위에 제출한 재산은 5억원가량으로 군소후보 중에서도 가장 적다. 김 후보는 “처음엔 기탁금부터 해결하고 나머지는 최대한 간소하게 하자는 생각이었는데 벽보와 홍보물까지 우리가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걸 몰랐다”며 “미처 예상치 못한 금액이 2억원이 넘게 들어가서 홍보물을 흑백 1장으로 겨우 만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현 소장은 군소후보의 출마에 대해서는 출마자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후보가 진정성을 갖고 선거에 나온 것이라면 당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비난할 순 없다. 3억원이라는 출마 조건이 까다롭지 않기는 하나, 기탁금 액수를 늘린다거나 해서 돈으로 피선거권을 제약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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