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도 죽이고 정책공약도 죽이는 햇볕정책·색깔론 논란, 진짜 누구에게 효과 있나?

김태훈 기자 2017. 4. 29. 15:5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4월 7일 각각 경기도 평택 공군작전사령부와 인천 17사단 신병교육대를 찾아 안보분야를 점검하는 행보를 보였다. / 연합뉴스

·여론조사 지지율 추이, 문재인 변화 없고 안철수 하락 홍준표는 상승

‘양날의 검’을 다루는 방식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대선에서의 안보 이슈는 상대후보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도 있지만 거꾸로 자신이 반격을 당할 수도 있는 ‘양날의 검’과도 같다. 양강구도를 이루고 있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그 자리를 지켰지만,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떨어지는 지지율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급부상의 기회를 잡았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다시 제기한 2007년 참여정부의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논란을 시작으로,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습 배치 등 안보 관련 이슈가 대선과 맞물려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여론전의 승패 역시 안보라는 무기를 누가 더 잘 다루느냐에 따라 갈렸다.

■보수층 표심 안 후보에게서 이탈 대선을 앞두고 커진 안보 논란은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조였던 햇볕정책을 둘러싼 입장차에서 정점을 찍었다. 안철수 후보 입장에선 TV토론에서 “햇볕정책을 계승하느냐”는 홍 후보의 질문에 “공과 과가 있다”고 모호하게 말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자신의 주요 지지기반이었던 호남 민심과는 멀어지는 동시에 표를 얻으려는 보수 지지층의 반감까지 함께 산 것이다. 햇볕정책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힌 문 후보가 북한인권결의안 논란을 함께 겪으면서도 지지층이 돌아서는 양상은 보이지 않았던 점과 대비된다.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이러한 모습은 재확인된다. 한 주 내내 안보 이슈가 대선국면의 주요 주제로 떠올라 있는 동안 문 후보의 지지율은 유지된 반면, 안 후보는 보수층의 결집에 힘입은 홍 후보에게 추격당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졌다. 한국갤럽이 전국 성인 1006명을 대상으로 4월 25일에서 27일까지 실시해 발표한 4월 넷째 주 정례 여론조사(휴대전화 RDD 조사·집전화 RDD 보완·95% 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 ±3.1%포인트·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결과를 보면, 문 후보 지지율은 같은 기관의 1주 전 조사에 비해 1%포인트 떨어진 40%를 기록한 반면, 안 후보 지지율은 전주보다 6%포인트 떨어진 24%에 그쳤다. 같은 기간 홍 후보 지지율은 9%에서 12%로 올랐다.

안 후보 입장에서는 보수층 표심이 대거 이탈한 것이 뼈아프다. 4월 셋째 주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자신이 보수라고 응답한 응답자 중 45%가 안 후보를 지지했지만 1주 만에 지지율이 급락하며 넷째 주 조사에선 29%만이 안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들의 표심은 홍 후보 쪽으로 크게 움직였다. 같은 기간 보수층의 홍 후보 지지율은 20%에서 36%로 크게 올랐다. 안 후보가 잃은 보수층 지지율 16%포인트는 홍 후보가 새로 얻은 16%포인트와 수치가 일치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안 후보 뒤에 있는 박지원 대표의 모습 때문에 영남, 그 중에서도 TK(대구·경북) 보수층이 선뜻 지지를 보내지 못했는데 햇볕정책 논란 때문에 그게 불거진 셈”이라고 말했다.

물론 TV토론에서 안 후보가 보여준 전반적인 이미지가 신뢰를 주지 못한 탓에 부동층이 많이 섞여 있던 안 후보 지지층 내부에서 민심 이반이 나타났다는 것이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갑철수’ ‘MB아바타’ 발언 못지않게 안 후보의 안보분야를 위시한 입장의 모호성 때문에 지지율 낙폭이 컸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김동영 실장은 “안 후보는 TV토론에서 드러난 모습 중에서 특히 보수층의 신뢰를 잃는 안보 관련 발언들 때문에 지지자들이 홍 후보로 이동하는 양상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한 여론조사업체 관계자도 “문 후보가 대선 레이스 중에 자기 표를 까먹을 정도의 안보 관련 발언을 할 가능성은 낮은 데다, 문 후보 지지에서 다른 후보 지지로 이동할 지지층 규모가 크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안 후보는 좀 더 전략적으로 보수층을 노리는 대응태도를 보여야 했다”고 말했다.

■대북 강경정책 찬성 유권자는 26%뿐 대북관계에 관한 유권자들의 인식이 강경노선보다는 평화적인 방향을 선호하는 쪽으로 움직인 것도 이러한 현상의 배경이 되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4월 21일과 22일 전국의 성인 1021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 방식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차기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은 평화적 관계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응답이 68.6%로 나타났다. 강경한 대북정책을 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6.5%로 평화노선을 택한 비율의 절반에 못미쳤다.

이에 따라 같은 조사에서 한반도 안보 및 외교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후보를 묻는 질문에도 문 후보 36.9%, 안 후보 18.6%, 홍 후보 11.6%의 응답률을 보였다. 안보 문제가 부각된 시기임에도 보수성향의 안정 논리 대신 평화 기조의 대북·대외정책을 우선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김동영 실장은 “문 후보는 본인을 직격하는 송 전 장관 문건 논란이 다시 불거진 시점이었는데도 오히려 안보에 관해 불안하다는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행보로 지지율 변동을 겪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안 후보의 지지율 하락에 따라 반사이익으로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는 홍 후보는 반문재인 정서를 자극하는 한편 강경 노선 중심의 안보관 등을 내세워 보수층을 최대한 끌어모으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4월 26일 대구 서문시장을 또다시 찾으며 대선 출마선언 후 여섯 번째 대구를 방문했고, 다음날인 27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구미에서 선거유세를 펼쳤다. 28일에도 서울 마포구의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을 방문하는 등 보수표 결집에 온 힘을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국민들이 친북정권 수립을 굉장히 우려하고 있다”는 식의 발언으로 공공연히 색깔론 프레임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대선 선거운동 기간이 막바지로 들어가는 시점에서 안보 문제를 놓고 보수 지지층을 중심으로 한 대이동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우려 섞인 관측도 나온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북한과 미국 간의 갈등구도가 단시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인 만큼 안보 논쟁이 비화되는 동안 대선에서 치러져야 할 다른 분야 정책 대결이 그만큼 덜 첨예해진다는 지적이다. 한 여론조사업체 관계자는 “여론조사 공표 금지기간이 코앞에 다가온 시점에서 유력 후보들이 너나 없이 안보 이슈에 힘을 쏟다보니 SNS 등에서의 여론 키워드 중에서 복지나 민생 관련 키워드 비중은 낮아진 모습”이라며 “이번 선거에서는 막판까지 네거티브 캠페인이 강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안보 논란이 색깔론 같은 소모적 논쟁으로 피로감을 불러일으킬 여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