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칠수록 대세 굳어지는 '반문재인'의 역설

성한용 입력 2017. 4. 29. 13:56 수정 2017. 4. 2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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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대선 구도 '문재인이냐 아니냐'로 재편
명분 없는 '안철수-홍준표-유승민 단일화'
친문패권세력-좌파세력 비난 설득력 잃어

[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36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농어업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5·9 대통령 선거가 막판으로 치달으면서 점점 더 크게 들리는 단어가 있습니다. ‘문재인’입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문재인이 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문재인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문재인’을 말하고 있습니다.

정치컨설턴트 박성민씨는 오래전부터 “이번 대선은 문재인이냐 아니냐 단순한 구도다”라고 했습니다. 문재인-안철수 양강구도가 형성됐던 짧은 시기를 빼면 대체로 박성민씨의 예측이 맞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른정당 의원 20명이 28일 안철수-홍준표-유승민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20명은 권성동·김성태·김용태·김재경·김학용·박성중·박순자·여상규·이군현·이은재·이종구·이진복·장제원·정양석·정운천·주호영·하태경·홍문표·홍일표·황영철 의원입니다. 평소 합리적 보수, 개혁적 보수라고 알려져 있던 의원들이 꽤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낸 입장문을 보면 좀 이상합니다.

“친문패권 세력의 대세론 속에 나라의 미래는 어두워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보 불안세력, 좌파세력의 집권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것이 나라를 걱정하는 다수 국민들의 시대적 명령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좌파 집권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바로 중도·보수가 함께하는 3자 후보 단일화”라고 했습니다.

문재인 후보를 ‘친문패권 세력’, ‘좌파 세력’이라고 지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20명 가운데 이은재 의원(서울 강남병)은 이날 오후 바른정당을 탈당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역시 “좌파 세력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문재인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이 ‘좌파 세력’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들의 주장은 지난 26일 “북한 김정은에게 평화를 구걸하려는 문재인 진보·좌파 정권의 출현을 저지하기 위해”, 안철수-홍준표-유승민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대한민국국민포럼·범시민사회단체연합’의 주장과 똑같습니다. 평소 입만 열면 ‘진보좌파’의 집권을 막고 ‘보수우파’가 계속 집권해야 한다고 말하는 김무성 의원, 대선후보로 선출된 뒤 문재인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안철수 후보와 국민의당에 ‘좌파’ 딱지를 마구 붙이고 있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주장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정말 실망스럽습니다. 바른정당은 지난 연말 새누리당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던 사람들입니다. 보수에도 양심이 있다는 것을 입증했던 사람들입니다. 어려운 결단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새로운 정당을 창당한 뒤 유승민 의원을 대선후보로 선출했습니다. 보수의 새로운 희망이었습니다.

바른정당 중앙당 창당대회가 열린 지난 1월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홀에서 김무성 의원이 소속 의원, 지도부와 함께 무릎 꿇고 ‘국민에게 드리는 사죄의 글’을 읽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주호영 원내대표, 정병국 대표, 김 의원, 유승민 의원,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그런데 5·9 대선을 앞두고 패색이 짙어지자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유승민 후보를 끌어내리려 하고 있습니다.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는 주장과 행동입니다.

정권을 빼앗기고 야당으로 전락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문재인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거부감이 이들의 이성과 판단력을 마비시킨 것 같습니다.

이들의 주장이 옳은 것인지 찬찬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문재인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이 정말 ‘패권세력’일까요?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패권세력은 무리를 지어 권력을 장악하고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친박세력 정도는 돼야 붙일 수 있는 호칭입니다.

문재인 후보와 이른바 친문세력은 당내 주류-비주류 대결에서 패권적 행태를 보인 일은 있습니다. 따라서 더불어민주당 비주류 의원들이 문재인 후보와 당내 친문 세력을 향해 그런 비난을 하는 것은 타당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0년 동안 국가 권력을 장악한 일이 없습니다. 당연히 패권을 휘둘러서 국정을 농단하거나 국민에게 피해를 준 일이 없습니다. 패권세력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특히 ‘친박 패권’에 가담했던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 의원들은 문재인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을 패권세력이라고 비난할 자격이 전혀 없습니다.

둘째, 좌파세력은 어떤가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 당선 뒤 북한을 먼저 방문하겠다고 했다거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좌파세력의 굴레를 씌우고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북 ‘퍼주기’ 지원을 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엔엘엘)을 포기했다는 이유를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대부분 말꼬리 잡기에 불과한 터무니 없는 내용입니다. 과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부에서도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했고 성사 직전 단계까지 갔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7·4 남북공동성명,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 채택과 북방정책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엔엘엘 포기도 그렇습니다. 논란이 일자 북한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북방한계선을 포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자기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식이 있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북한의 주장이 엉터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면서 독도 문제에 대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는 보도를 <요미우리>가 했습니다. 국내 일각에서 <요미우리> 보도를 근거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포기 의혹을 제기했지만 당시 야당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독도를 포기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을 좌파세력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개 대한민국 분단체제의 수혜자들입니다. 남북 분단 상황에서 야당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빨갱이’, ‘친북’, ‘종북’, ‘좌파’로 몰아 그 반사이익으로 정치권력을 잡고 부를 쌓은 기득권 세력이라는 얘깁니다.

안철수 대통령 후보가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국민대통합과 협치에 관한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반문재인’을 외치고 있는 것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뿐만이 아닙니다. 문재인 후보를 바짝 추격하다가 최근에는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안철수 후보와 국민의당도 결국 ‘반문재인’으로 이번 선거를 치를 생각인 것 같습니다.

물론 안철수 후보는 여러 차례 “왜 안철수가 대통령이 돼야 하는가”를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그 메시지는 국민들에게 좀처럼 각인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내가 갑철수냐, 안철수냐”, “내가 엠비 아바타냐”고 묻는 장면을 보고 국민들은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 대해 상당한 적개심을 가진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안철수 후보 스스로 한순간의 실수로 자신의 정체성을 ‘반문재인’으로 가둬버린 것입니다.

더구나 안철수 후보 주변에는 ‘반문재인’ 인사들이 너무 많습니다.

손학규 선대위원장은 2012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패배했던 사람입니다. 박지원 대표는 2015년 2·8 전당대회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패배했던 사람입니다. 2016년 4·13 총선을 앞두고 권노갑·김옥두 등 동교동계 인사들과 함께 ‘반문재인’을 기치로 탈당했습니다. ‘호남’과 ‘진보’를 외치던 정동영 천정배 의원도 ‘반문재인’입니다. 최근 적극적으로 안철수 후보 지원유세에 나선 김한길 전 대표, 안철수 후보 지지 의사를 밝힐 예정인 김종인 전 대표도 ‘반문재인’입니다.

이들이 반문재인 성향의 인사들이 안철수 후보 옆에 차례차례 모여든 이유는 물론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인도 사람입니다. 문재인 후보와 정치를 하면서 품게 된 서운함과 배신감 등 감정 때문에 ‘반문재인’을 하게 됐고,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을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대선 후보’ 안철수를 선택했을 가능성도 큽니다.

정가의 흐름에 밝은 한 당직자는 저에게 이런 분석과 예언을 했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차가운 사람이다. 다른 정치인들과 더불어 잘 지내는 ‘기술’이 부족하다. 그런데 문재인 후보의 그런 기질 때문에 이번 5·9 대선이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한 획을 긋게 될 것 같다. 지금 안철수 후보를 돕는 반문재인 인사 중에는 정치적으로 퇴물들이 너무 많다. 대부분 이번 대선판을 끝으로 정계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너무 잔인한 전망인가요? 정치판의 금언 중에 “누군가를 지나치게 미워하지 말라. 상대를 향한 증오가 너 자신을 망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김대중 총재 시절 공천이 유력했지만 막판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습니다. 그 뒤로 그는 디제이(김대중 총재)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했습니다. 기자들에게 디제이 욕만 하고 다녔습니다. ‘반디제이’는 그의 신념이었습니다. 그는 평생 디제이 욕만 하다가 어느 날 슬그머니 정치판에서 사라졌습니다.

뭔가에 반대하고 극복하는 것을 정치적 명분으로 삼으려면 그 대상이 일단은 거창해야 합니다. ‘반공’(반공산주의), ‘반독재’ 정도는 돼야 일생을 걸고 투쟁할 목표가 될 수 있습니다. 겨우 ‘반디제이’나 ‘반문재인’은 정치적 명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식의 명분 없는 ‘안티 이데올로기’는 오히려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나치의 ‘반유대주의’처럼 기득권자들의 음모에 이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5·9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반문재인’ 구호가 커지는 것은 그만큼 문재인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갤럽이 28일 공개한 4월 넷째 주 여론조사를 보면, 문재인 후보는 40%의 지지율로 24%인 안철수 후보를 앞서 지난주(11%포인트)보다 격차를 더 벌렸습니다. 홍준표 후보 12%, 심상정 후보 7%, 유승민 후보 4%였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을 참고하면 됩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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