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사육장'으로 불렸던 대구희망원, 희망은 있나

조민제 대구희망원대책위 집행위원장 2017. 4. 2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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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기고]

[미디어오늘 조민제 대구희망원대책위 집행위원장]

정부가 정한 4월20일 ‘장애인의 날’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은폐하는 날로 기능하는 걸 거부하고 모든 차별에 맞서는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만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017년 현재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적폐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입니다. 2012년 8월부터 광화문광장 지하도에서 1700일 넘게 농성하고 있지만 제2의 도가니, 제2의 형제복지원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장애인 수용시설 정책 때문입니다.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과 미디어오늘은 5월9일 촛불대선을 앞두고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장애인 수용시설폐지’ 등 3대 핵심의제를 고민하고자 이 글을 연재합니다. - 편집자주

‘인 간 사 육 장’

이 말은 대구시립희망원(이하 대구희망원)에 거주하는 생활인들이 소위 ‘대구희망원’을 지칭하는 ‘은어’였다. 1958년 대구시가 설립했고 1980년부터 37년째 천주교대구대교구가 수탁 받아 운영 중인 대구희망원은 장애인과 노숙인 1150명이 집단으로 ‘수용’된 국내 세 번째 규모의 시설로 장애인거주시설, 노숙인재활시설, 노숙인요양시설, 정신장애인요양시설을 산하시설로 두고 있다.

대구희망원은 2016년, 노동조합 등의 내부고발과 대구희망원대책위의 문제제기로 인권유린 및 비리사실이 드러나기 전까지 사람들은 ‘가톨릭이 운영하는 좋은 시설’, ‘대통령상을 수상한 사회복지우수시설’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실제로 대구희망원은 2014년까지 6회에 걸쳐 우수시설로 선정됐고 2006년에는 최우수시설로 대통령상까지 수상한 이력이 있는 시설이었으니 만약 내부고발마저 없었다면 과거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역시 사람들은 ‘착한 사람들이 운영하는 좋은 시설’로 영원히 기억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구희망원에서 수십 년에 걸쳐 이뤄진 인권유린 및 비리는 매우 참혹했다. 지난 해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국정 감사, 검찰 수사, 대구시 특별 감사 등이 진행되며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실을 간략하게나마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대구희망원 내에서 발생한 인권유린 및 비리사실

2010년 1월부터 2016년 8월까지 309명의 사망자 발생
(부산형제복지원 사건의 경우, 10년간 생활인 500명이 사망함)
사망사실을 고의적으로 조작 및 은폐한 사실 다수확인
종사자의 생활인에 대한 폭행 및 금품갈취 등의 사실 다수확인
생활인에게 1천원도 되지 않는 시급을 지급하며 강제노동에 투입
감금실을 운영하며 302명의 생활인을 441회에 걸쳐 최장 47일 동안 구금
납품되는 식자재의 단가와 수량을 부풀려 청구함으로써 수억원의 비자금을 조성
생활인에게 지급될 생계비를 군청으로부터 부당 청구하여 수억원의 비자금을 조성
공무원의 친인척을 직원으로 부정채용하거나 생활인으로 부정입소시킨 사실 다수확인

위와 같은 심각한 사태가 대구희망원 내에서 일어났음에도 대구시와 천주교대구대교구는 매년 지도점검과 법인감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였고 관리감독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문제는 그 누구도 이러한 사실에 대해 정기점검과 감사를 통해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 지난 4월15일 광화문 해치광장 경사로에 대구시립희망원에서 사망한 거주인 309명을 의미하는 영정 309개와 ‘3대 적폐’로 인해 사망한 이들을 추모하는 합동 분향소가 설치됐다. 사진=비마이너 제공

특히 익명제보자의 투서를 통해 대구시 공무원이 개입해 자신의 친인척을 직원으로 부정 채용한 문제는 2014년에 사실이 확인됐음에도, 대구시가 관련 공무원을 ‘주의’ 등의 솜방망이 징계로 무마해 대구시가 개입하고 희망원의 잘못을 고칠 ‘골든타임’마저 놓쳐버렸고 결국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16년에 대대적인 내부고발로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오게 만든 점은 국민의 세금으로 매년 120여억원 보조금을 지원하는 대구시가 사죄하고 무한의 책임져야할 부분일 것이다.

대구희망원 사태가 점차 여론화되자 천주교대구대교구는 2016년 10월, 대구희망원에 대한 운영권 반납을 발표하고 원장신부와 간부 23명이 사표를 제출하며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운영권반납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사퇴를 공언한 원장신부와 간부 중 사퇴한 사람은 여전히 단 한명도 없다. 이를 비추어봤을 때 천주교대구대교구가 과연 희망원 사태에 대해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검찰 수사를 통해 대구희망원의 前원장신부가 구속되고 수녀, 사무국장 등 관련자들의 재판이 시작되자, 2017년 3월 대구시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구희망원을 또 다른 민간법인에 위탁하고 탈시설을 점진적으로 하겠다는 방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했고, 대구희망원대책위는 이에 강력히 반발하며 대구시에 대구희망원사태 관계자 전원처벌, 대구희망원의 공적운영, 생활인의 탈시설 지원 및 시설폐쇄를 포함한 근본대책을 요구하며 3월 30일부터 현재까지 시청 앞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대구희망원대책위가 대구시의 대책에 격렬히 반대하는 이유는 그간 수십년에 걸쳐 인권유린과 비리의 온상이 돼버린 대구희망원에 대해 특단의 조치 없이 다른 법인에게 민간위탁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한다는 점은‘심각하게 고장이 나서 수리가 시급히 필요한 버스에 운전자만 교체하려는 꼴’과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1150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집단으로 수용되어 있는 대규모시설에 대해 폐쇄를 목표로 생활인에 대한 탈시설을 대폭적으로 지원하지 않는다면 결국 규모의 문제이지, 통제를 기반으로 한 수용시설에서 인권유린 및 비리는 계속 반복될 것이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렇기에 대구희망원대책위는 대구시가 출자출연한 공적 재단을 설립하여 공적인 책임 속에서 희망원을 운영하며 시설폐쇄와 탈시설을 적극 추진해야만 궁극적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에 대한 재원과 체계를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더불어 현재 대한민국 정부가 수용시설 생활인의 탈시설에 대해 지원하고 있는 정책이 ‘전무’하기 때문에 중앙정부에 수용시설 정책폐지와 탈시설 정책 및 예산확보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으며, 제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에게도 대구희망원을 시설폐쇄 및 탈시설 시범사업으로 실시할 것으로 공약화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아직까지 3만1222명의 장애인이 수용시설에 갇혀 살고 있다. (장애인복지시설일람표, 보건복지부, 2016)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지역사회에서 배제되고 시설에 격리 수용될 이유는 그 무엇 하나 없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이미 대규모 수용시설은 전격 폐쇄하고 탈시설을 통한 지역사회 자립생활지원을 하고 있는 것이 수십년 전에 진행된 일들이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수천개의 시설 속에 사람이 갇혀 살아가고 있고 그것을 ‘복지’라고 부르고 있으며 시설에서 일어난 문제들을 그저‘안타까운 일’이라고 치부하고 있다.

더 이상 사람을 때리고 가두고 짓밟고 죽이는 것은 ‘복지’가 아니다.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를 통해 국민들이 새로운 시대에 대한 갈망과 적폐청산, 정의실현이 요구하고 있는 만큼 복지정책의 오랜 ‘적폐’였던 ‘수용시설정책’은 반드시 폐지돼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구희망원 인권유린 및 비리 척결을 위한 투쟁은 대구라는 특정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사회에서 비용과 효율성이라는 명분으로 자행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과 감금을 걷어내는 시작점이며, 더 이상 수용시설에서 일어난 인권유린 및 비리사건이 땜질식 처방으로 무마될 것이 아니라 시설에 있는 사람들이 지역사회로 나와서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한 지원방향으로 나아갈 전환점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대구희망원, 그 곳에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 살고 있다. 단지 그들은 장애인이었거나 노숙인이라는 이유로 격리되고 수용됐을 뿐이다. 대구희망원사태를 계기로 더 이상 사람을 수용시설로 격리할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살아 갈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는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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