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입고 명품백 든 한국화가 김현정"..포브스도 주목

박다해 기자 입력 2017. 4. 2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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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 선정돼.."'튀는' 행보에 비판있지만, 이제야 여유있게 받아들여"

[머니투데이 박다해 기자] ['포브스-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 선정돼…"'튀는' 행보에 비판있지만, 이제야 여유있게 받아들여"]

'내숭'시리즈를 그리는 화가 김현정은 최근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에 선정됐다. /사진제공=김현정


한복을 입은 여성이 명품 가방을 힐끗 들여다보면서 라면을 먹는다. 패스트푸드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가 하면 스마트폰을 한 손에 쥐고 잠든다. '내숭'시리즈로 잘 알려진 한국화가 김현정의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단아하고 전통적'이란 한복과 한국화에 대한 편견을 깬다. 냉장고에 가득한 음식들 앞에서 피자 한 판을 해치우다가도 동네 뒷산 약수터에나 있을 법한 운동기구에서 운동을 하는 모습은 한복만 입었을 뿐, 영락없는 현대인의 초상이다. 그의 작품이 '21세기 풍속화'로 불리는 이유다.

김현정은 최근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30 Under 30 2017 Asia)에 이름을 올렸다. 아시아에서 1차 선정된 후보 1000여 명 중에 '선구적인 여성'(pioneer women) 분야에 최종 선정됐다. "기존 관습에 도전했다"는 평이다. 국내 순수 미술 작가로는 유일하게, 최초로 선정됐다.

김현정은 선정 이후 머니투데이와 만나 "한국의 풍속화와 같은 작업을 하다 보니 신선하고 재밌게 바라본 것 같다. 활동할 때도 대중과 소통하려는 자세를 좋게 본 것 아닐까 싶다"며 "감사하면서도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포브스에서 국내 순수미술작가가 꼽힌 것은 김현정이 처음이다. /사진=포브스 홈페이지


그는 여느 화가와는 조금 다르게 '튀는' 행보를 보여왔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꼭 한복을 입고 나선다. SNS계정 여러 개를 활발하게 운영하면서 관객과의 소통에 중점을 둔다. 자신의 작품을 모바일메신저 이모티콘으로도 제작했다. 그의 행보를 두고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격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2013년 데뷔 초기에는 자신을 비난하는 악성 댓글을 고소하면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화가는 비밀스러운 존재여야 된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세요. 비판도 어마어마하죠. 이모티콘을 보고 '돈 벌려고 하냐'는 분도 있고요. 그런데 사실 돈을 벌려고 하면 작품만 파는 게 최고예요. 제 목표는 '미술이 사회와 호흡하고 문턱을 낮추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 이 기준에 맞춰서 결정하는 거죠."

그는 이번 선정을 두고도 "남들과 다른 행보가 '이게 맞나?'란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틀리진 않았다'는 격려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뽑혔다고 뭐가 되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상이구나 싶어요."

김현정의 '내숭' 시리즈-'나를 움직이는 당신'/ 사진제공=김현정

'내숭'시리즈는 자신의 모습을 담아낸 자화상이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절묘하게 포착해 그린다. 하지만 한복과 현대적인 소재의 결합 때문에 신선미 작가의 '개미요정' 시리즈를 표절했다는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표절이였다면 소송에 걸리지 않았을까요?" 그는 소재가 같다고 '표절'로 보긴 어렵다고 말한다. 신 작가가 일본 채색기법을 쓰는 반면 자신은 수묵담채기법과 한지 콜라주 방식을 사용한다는 설명이다.

말하고자 하는 바도 다르다. "저는 일단 자화상이잖아요.(웃음)" 그는 한복을 입고 암벽등반을 하는 작품 '쉘위댄스'를 그리기 위해 직접 실내 클라이밍을 배우기도 했다. "직접 경험해보고 그리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아이디어'가 중요한 현대미술엔 제가 좀 더 가깝지 않나요."

라면을 먹으면서 명품가방과 스타벅스 컵을 바라보는 모습이나 속살이 비치듯 표현한 한복 치마를 두고 이를 불편해 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도 있었다. '된장녀'란 여성 비하 단어를 그림으로 표현했다거나 성적인 모습만 강조했다는 비판이다.

그는 "'내숭'이 성별에 국한 된 건 아니다"라며 "누구나 이런 모습 갖고 있지 않나"라고 반문한다. 다만 자신의 모습과 욕망 등을 작품에 투영하다 보니 여성으로 표현될 수 밖에 없다는 것. 속이 들여다보이는 반투명한 치마는 겉과 속이 다른 '내숭'적인 모습을 오히려 솔직하게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김현정 '이태리 스타일' 그는 '내숭'시리즈 외에도 다양한 일상의 풍경을 담은 작품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사진제공=김현정


"제가 이 시대의 모든 여성을 대변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보는 사람이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어쩔 수 없죠. 비판도 받아들여요."

데뷔 5년 차, 그에게선 약간의 여유가 비쳤다. "데뷔 초기에는 '화가도 악플을 받는다'는 개념 자체가 없어서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이제야 여유가 좀 생겼어요. 제 작품이 의도와는 달리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해요."

그의 목표는 여전히 관객과 가까운 화가다. "음악으로 치면 대중음악을 하고 싶은 거죠. 스키를 탄다고 치면 다들 너무 고급 코스에서만 타는 느낌이에요. 현대미술을 알려주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싶어요. 이모티콘요? 전체 미술시장이 커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2000억 규모의 국내 산업 구조는 굉장히 작아요. 그 안에서 밥그릇 싸움하는 거죠. 다른 시장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서울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며 복수전공으로 '경영학'을 택했다는 화가다운 답변이다. 그는 지금, 이 시대 사람의 삶을 색다르게 담아낸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 '감정'을 주제로 표현한 이모티콘도 제작할 계획이다.

찜질방에서의 모습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작품 '비너스의 탄생' /사진제공=김현정

박다해 기자 doal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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