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트럼프가 묻는다 "한국, 정말 미국의 동맹 맞아?"

박수찬 2017. 4. 2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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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첫 상하원 합동연설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 도중 손으로 앞을 가리키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비용을 10억달러(약 1조1300억원)로 추산하면서 이를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고 말해 파문이 일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 또는 종료 가능성도 언급해 한미 동맹 관계 전반에 걸쳐 충격파가 확산될 기미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취임 100일을 앞두고 백악관에서 가진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10억달러나 하는 사드를 한국을 지켜주기 위해 반입하는데 왜 미국이 돈을 내야 하느냐”며 “한국이 이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드는 한국을 보호하고 나도 한국을 보호하길 원한다”면서도 “그러나 한국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한국은 이를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 FTA에 대해서는 “끔찍한 협정으로 재협상하거나 종료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지자 우리 정부는 즉각 부인하면서 발언의 진의를 파악하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다. 일각에서는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인상이나 통상 압력을 뜻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어떤 것이든 한미 동맹에 던지는 파장은 결코 작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한국의 차기 정부가 출범한 직후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역할 증대를 다양한 방법으로 요구할 경우 우리 정부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은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발언에 정부 ‘당혹’…“자승자박” 지적도

28일 오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 외신 인터뷰를 통해 전해지자 국방부와 외교부 등 안보부서 관계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사드와 한미 FTA에 대한 양국간 합의를 뿌리째 뒤흔드는 발언으로 국내에서 꾸준히 제기되는 사드 반대 여론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었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대통령이 28일 참전군인 관련 행사에 참석해 마이크 펜스(왼쪽) 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방부는 지난해 3월 사드 배치를 협의할 한미 공동실무단을 구성한 직후부터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근거해 부지와 기반시설은 우리 정부가 제공하고, 사드 전개와 운영유지에 소요되는 비용은 미군이 부담한다”고 설명해왔다. 이같은 설명은 국회 보고자료나 대국민 홍보자료 등 국방부가 대외적으로 배포한 사드 관련 자료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부가 1년 넘게 유지해온 입장을 한순간에 거짓말로 만들어버린 격이 됐다. 국방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보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파장을 조기에 차단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주한미군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한반도에 반입하는 무기에 대해 우리 정부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SOFA 5조 등은 ‘미측은 미국 군대의 유지에 따르는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 한국은 미측에 부지와 통신, 전기, 수도 등 기반시설을 제공한다’고 규정한다. 국방부가 12억달러(약 1조3600억원)로 추산되는 사드 1개 포대를 구입해 주한미군에 제공하지 않고 경북 성주군 성주골프장을 주둔지로 ‘공여’한 것도 SOFA에 따른 것이다.
한미 공병대가 남한강변에서 부교를 놓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육군 제공

일각에서는 사드 배치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자승자박(自繩自縛) 자세가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에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초 사드 배치는 2014년 6월 커티스 스캐퍼로티 당시 한미연합사령관이 북한 탄도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주한미군과 그 가족을 지키기 위해 미국 정부에 배치를 요청한 것에서 시작됐다. 북한이 노동미사일을 고각발사해 유사시 미군 증원전력이 들어올 부산항과 물자 비축기지인 대구 일대를 공격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1월 북한의 6차 핵실험과 2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 직후 사드 배치가 공식 협의에 들어가면서 주한미군 장병들을 북한 탄도미사일로부터 보호한다는 당초 취지는 언급 횟수가 크게 줄어들고 한국을 방어한다는 논리가 앞서기 시작했다. 한미 군 관계자들이 회동하거나 통화를 할 때마다 사드 배치를 차질 없이 진행한다는 표현은 반드시 들어갔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전후로는 ‘조속한 작전운용’이라는 표현이 수시로 등장했다. 취임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사드 배치가 한국을 보호하기 위한 시혜적 조치이며, 한국으로부터 대가를 받아야겠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는 대목이다.

◆美 “체리 피커 동맹은 필요없다”…한국의 선택은?

경영학에서 사용하는 개념 중에 체리 피커(cherry picker)라는 것이 있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지 않으면서 자기 실속만 차리는 소비자를 뜻하는 체리 피커는 기업들에게 골치아픈 존재다. 기업들은 놀이공원이나 영화관 할인 등과 같은 비용부담이 큰 서비스를 줄이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일반고객과 분리해 대응하는 디마케팅(demarketing)을 하기도 한다.
28일 오후 경북 성주군 성주골프장 부지에 사드 운용 장비들이 배치돼 있다. 성주=연합뉴스

국가간의 동맹도 마찬가지다.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하면서 국제분쟁에 개입하는 미국의 경우 지역 동맹국들의 기여가 낮은 것을 불만스러워했다. 유럽 국가들은 냉전 종식 이후 국방비 증가에 소극적이었으며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미군의 힘에 무임승차하는 모습마저 보였다.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이던 2006년 5월 미국 하원 군사위원회 덩컨 헌터 위원장이 “일이 생기면 미국은 티본 스테이크를 가져오는데, 우리 동맹국(유럽)이란 친구들은 일회용 포크만 들고 온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이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 마련에 나섰으나 성과는 크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부유하지만 말만 많고 실질적인 도움을 별로 주지 않는 동맹국들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부 장관은 지난 2월16일 NATO 국방장관 회담에서 회원국들에 방위비 증액을 공식 요구했다. 메티스 장관은 “회원국들은 연말까지 방위비를 증액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NATO에 대한 미국의 방위공약을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납세자가 서구 가치의 방어를 위해 불균형한 분담을 하고 있을 순 없다”며 “미국이 동맹관계에 대한 공약을 조정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면 당신의 자본으로 우리의 공동방위에 대한 지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NATO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은 사드를 기점으로 우리나라에도 가해질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대형 도발을 감행할 때마다 미국은 핵항공모함과 전략폭격기, 핵잠수함, 스텔스 전투기 등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했다. 핵공격을 억제할 핵우산도 제공한다. 주한미군 병력은 주둔비를 우리 정부가 방위비분담금을 대고 있지만 전략자산 전개 비용은 별개 문제다.
미 해군 이지스구축함에서 SM-2 요격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여기에 사드가 추가됐다. 사업가 출신으로 돈 문제에 민감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외신 인터뷰를 통해 “미국이 한국 방위를 위해 이만큼 기여하고 있으니 한국이 그 대가를 내놓기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충격과 공포를 유발한 뒤 “한국, 당신은 미국의 동맹국인가?”하고 묻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미국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형태의 동맹 체제에 익숙해져 있었다. 1953년 휴전 협정 이후 미국은 말 그대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높아진 지금, 냉전 시대의 동맹 체제는 낡은 것이 됐다. 미국은 우리나라에게 더 많은 부담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방위비분담금 등을 통해 많은 것을 부담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은 자국의 전쟁에 늘 전투병을 파견하는 영국, 호주, 캐나다와 남중국해에서 중국 견제에 나선 일본, 이란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예맨 내전에 뛰어든 사우디의 공헌과 우리나라의 기여를 비교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북한과 대치중인 상황에서 파병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미 동맹에서 우리의 역할을 증대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외신 인터뷰에서 언급한 한미 FTA 재협상은 물론 선거 기간 주장했던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인상 등을 다음달 출범할 차기 정부에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체리 피커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사업가 출신의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을 보호하는 대가로 동맹국의 기여를 높이거나 무역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목표를 높게 잡은 뒤 목표 달성을 위해 전진한다”는 트럼프 대통령과 기싸움을 펼치면서 국익을 보호하고 한미 동맹의 근간도 지켜야 하는 차기 정부의 어깨가 무거워지고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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