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악재도 극복한 '언더독(underdog)'..아이스하키 대표팀, 꿈은 이루어졌다!

김형열 기자 2017. 4. 29.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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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수권 준비 과정부터 월드챔피언십 진출까지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이번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함께 손발을 맞출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대표 선수 대부분이 소속된 실업팀 안양 한라가 지난 11일까지 아시아리그 챔피언 결정전을 치르는 바람에 대표팀은 14일 저녁에야 소집될 수 있었고, 단 3차례 훈련을 한 뒤 18일에 결전의 장소 우크라이나로 떠났습니다.

더구나 출국 전 마지막으로 손발을 맞춘 17일 오전 훈련 때는 급하게 경기장(안양 실내 빙상장)을 섭외했다가 대표팀과 한 중학교 팀의 훈련 시간이 겹치는 작은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대표팀과 중학교 팀 모두 경기장을 대여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의사소통이 안 돼 50여명의 양 팀 선수단이 동시에 링크에 들어선 겁니다. 경기장 대여 과정에서 누군가의 실수가 있었을 테고, 결전을 앞두고 마지막 준비를 해야 할 백지선 감독 입장에서는 기분 좋을 리 없는 상황이었지만, 백 감독은 현명하게 이 문제를 풀었습니다.

함께 훈련한 중학생 팀과 서로 인사하는 대표팀

백 감독은 중학교 팀에게 무조건 양보를 요구하는 대신 직접 중학생 선수들을 지도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중학생 선수들은 태극마크를 단 선배들과 함께 링크에 올라 NHL 스타 출신 지도자에게 배우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30분가량 지도를 받은 뒤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며 예정보다 일찍 링크를 떠났습니다. 대표 선수들은 이후 한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땀방울을 흘리며 장도에 오르기 전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훈련을 마친 뒤 백 감독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래도 짧은 소집기간이나 링크 문제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백 감독의 답변은 제 예상과 달랐습니다.

[SBS 뉴스 사이트에서 해당 동영상 보기]


[백지선 감독 : 우리는 (아시안 게임이 열린) 2월 달에 많은 훈련을 했고, 그 때 이미 좋은 훈련 성과를 냈습니다. 또 우리 선수들은 소속팀에서 플레이오프를 거치며 실전을 많이 치렀기 때문에 모든 것이 준비됐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현재의 시스템에 익숙합니다. 이제 컨디션 조절만 잘하고 떠나면 됩니다.]

이번 대회 개막을 앞두고 대부분의 아이스하키 관계자들이 우리 대표팀의 목표는 2부 리그 잔류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은 이번 대회 출전국 가운데 가장 세계 랭킹이 낮고, 다른 5개 팀과 상대 전적에서도 일방적으로 밀립니다. 또, 핵심 귀화 공격수인 라던스키와 테스트위드가 부상으로 대회 출전이 좌절됐습니다. (귀화 선수 가운데 공격수는 스위프트 단 한 명만 출전했습니다.) 여기에 대회 직전 훈련 시간도, 훈련 여건도 좋은 상황이 아니었지만 백 감독은 어떤 핑계 거리도 찾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자신의 지도력과 선수들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에 긍정의 힘이 넘쳤습니다.

[SBS 뉴스 사이트에서 해당 동영상 보기]


[백지선 감독 : 이번 대회에서 우리 팬들은 상상 이상으로 열심히 뛰는 선수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충분히 경쟁력을 갖췄습니다. 대표팀 유니폼에 대한 최고의 자부심과 명예를 갖고 한국을 대표하는 우리 선수들을 보게 될 겁니다.]

그리고 대표팀은 해냈습니다. 지난해 유로 아이스하키 챌린지에서 연장 끝에 졌던 폴란드와 개막전에서 만나 통쾌하게 설욕전을 펼쳤고, 통산 12전 전패를 기록했던 카자흐스탄에 역사적인 첫 승을 거뒀습니다. 2승 1무 12패로 절대 열세였던 헝가리의 벽도 넘었습니다. 헝가리의 거친 파울에 부상 선수들이 속출하며 오스트리아전에서 고개를 숙였지만, 박우상과 김원중이 진통제를 맞고 경기에 나서는 투혼을 보이며 우크라이나와 마지막 경기에서 가장 짜릿하고 극적인 드라마를 완성했습니다.

● '꿈의 무대' 월드챔피언십…기적은 '진행형'

아이스하키는 다른 어떤 종목보다 국가별 수준차가 큽니다. 이 때문에 세계선수권도 6개의 디비전, 즉 6부 리그로 나눠서 치러집니다. 6부 리그 가운데 1부 리그 격인 월드챔피언십은 세계 최강 16개국만 출전하는데, 축구의 월드컵 본선과 같은 꿈의 무대로 불립니다. 하지만 월드챔피언십에 진출하는 것은 축구 월드컵 본선 이상으로 힘이 듭니다.

국제아이스하키연명(IIHF) 홈페이지를 장식한 한국의 승격 소식

매년 열리는 월드챔피언십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두 팀은 이듬해부터 2부 리그로 강등되고,  2부 리그 1,2위 팀이 월드챔피언십으로 승격되는데 (3부 리그부터는 우승 팀만 승격, 꼴찌 팀만 강등됩니다.) 문제는 팀들의 수준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계선수권이 현재의 6개 디비전으로 정착된 2012년 이후 캐나다와 미국, 러시아를 비롯한 아이스하키 강국 14개 팀은 단 한 번도 월드 챔피언십에서 내려온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월드챔피언십에서 꼴찌를 해서 2부 리그로 강등되는 두 팀도 웬만하면 이듬해 2부 리그에서 1,2위를 차지해 다음 해 다시 월드챔피언십으로 올라갑니다. 이번 대회에서 우리와 맞붙은 카자흐스탄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현재 월드 챔피언십에 있는 슬로베니아와 이탈리아가 바로 이런 팀입니다. 소위 ‘엘리베이터 팀’으로 불리는 이들만 월드챔피언십과 2부 리그를 번갈아 오르락내리락 할 뿐 다른 팀들에게는 월드챔피언십 무대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2년 전만해도 3부 리그에 있던 팀입니다. 3부 리그 팀이 2부 리그를 거쳐 단 2년 만에 월드챔피언십에 진출한 경우는 이전에 4부 리그로 진행되던 시대는 물론, 100년 가까운 아이스하키 전체 역사를 따져도 전무후무한 기록입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무대는 고사하고, 아시아에서도 ‘넘버 3’가 힘들었던 한국 아이스하키는 이제 당당히 세계 최고의 무대에 올랐습니다. 카자흐스탄과 일본만 만나면 두 자릿수 점수 차로 대패하던 한국은 내년 덴마크 월드 챔피언십에 출전하는 유일한 아시아 국가가 됐습니다. 기적을 쓰고 있는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다음 목표는 평창입니다. 한국 아이스하키의 기적은 아직 진행형입니다.       

김형열 기자henry13@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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