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베이브 루스', 야구 혁명을 꿈꾸다

2017. 4. 2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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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와 커쇼 능력 동시에 갖춘 '만찢남'
일본 최초로 20홈런-100안타-10승
리틀야구에서 시작, 16살에 153km 기록
미 진출 접고 '투타 겸업' 닛폰햄에

일본 역사상 최고구속인 165km 던져
2015 프리미어12 때 한국과 두번 만나
13이닝 21탈삼진 무실점 괴력 뽐내
올 시즌 뒤 메이저리그 진출 선언

[한겨레]

올 시즌 뒤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오타니 쇼헤이가 미국 무대에 ‘투수’로 데뷔할지, ‘타자’로 데뷔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닛폰햄 파이터스 공식 페이스북 갈무리

[토요판] 김양희의 야구광

일본프로야구 오타니 쇼헤이

#A는 왼손 타자다. 지난해 지명타자로 104경기 382타석에서 타율 0.322(323타수 104안타), 22홈런 67타점을 기록했다. 오피에스(OPS·출루율+장타율)는 1.004에 이른다. 올스타전 홈런더비에서도 우승했다. 타석당 홈런 수(17.4타석당 1개)만 놓고 보면 2015 시즌 내셔널리그 최우수선수(MVP) 브라이스 하퍼(워싱턴 내셔널스)보다 많다. 하퍼는 지난해 627타석에서 24홈런(26.1타석당 1개)을 때려냈다.

#B는 오른손 투수다. 지난해 21경기(20경기 선발)에 등판해 10승4패 평균자책점 1.86의 성적을 냈다. 투구 이닝은 140이닝, 탈삼진은 174개였다. 9이닝 기준 삼진 수는 11.2개로 내셔널리그 2년 연속 사이영상(2013~2014년)에 빛나는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 클레이턴 커쇼(10.4개·2016 시즌 기준)보다 많다. 그의 속구 최고 구속은 시속 165㎞에 이른다.

눈치챘는가. 왼손으로 ‘잘 치는’ A와 오른손으로 ‘잘 던지는’ B는 동일인물이다. 하퍼와 커쇼의 능력치를 동시에 갖고 있는 그는, 일본프로리그의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 오타니 쇼헤이(닛폰햄 파이터스)다. 20홈런-100안타-10승의 기록은 일본 야구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일본 야구를 잘 아는 선동열 전 기아 감독은 “아시아권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선수”라며 치켜세운다. 그의 나이 23살. 김성근 한화 감독은 “오타니는 나이답지 않게 인생관이 확실하다. 갈수록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타니 야구의 시작은 주말 리틀야구부터였다. 미쓰비시 사회인야구팀에서 뛰다가 부상으로 은퇴한 뒤 공장 노동자로 일했던 아버지(오타니 도루)는 일을 쉴 때는 아들들(쇼헤이와 그의 형 류타)과 캐치볼 하는 것을 즐겼다. 오타니는 8살 때부터 리틀야구에서 뛰었고 야구를 하는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고는 했다. 지역(이와테현 오슈시) 특성상 요미우리 자이언츠 중계만 볼 수 있던 탓에 요미우리 외야수 마쓰이 히데키를 동경했다. 어린 시절만 해도 오타니는 “야구는 그저 취미일 뿐”이라고만 생각했고 “나보다 잘하는 야구선수가 더 많다”고 느꼈다.

그러나 하나마키히가시고로 진학한 이후 그의 야구 인생은 바뀌었다. 체격(키 193㎝)이 커지면서 공끝에 힘이 실렸다. 하루에 밥 12공기를 챙겨 먹던 시기였다. 16살에 시속 153㎞의 공을 던졌고 이듬해에는 시속 159㎞가 스피드건에 찍혔다.

다르빗슈 유 등번호 달고 2013 시즌 데뷔

햄스트링 부상 등으로 투구 폼이 흐트러지는 시기도 있었지만 그의 구속은 미국 구단들의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다저스를 비롯해 텍사스 레인저스, 보스턴 레드삭스 등이 그의 영입에 눈독을 들였다. 오타니 또한 “미국에서 뛰고 싶다”면서 일본 구단들한테 자신을 신인드래프트 때 지명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일본프로야구에서는 신인드래프트 대상 고졸 선수가 그를 지명한 일본 구단과 계약하지 않고 미국 야구로 진출할 경우 향후 일본 야구로 돌아올 때 3년간 출장이 제한(대졸은 2년)된다.

그러나 닛폰햄이 신인지명 1라운드 때 12개 팀 중 유일하게 오타니를 선택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일본은 12개 구단이 동시에 1순위 선수를 적어내며 복수의 구단이 한 선수를 지명했을 때는 추첨을 한다.) 야마다 마사오 당시 닛폰햄 단장은 “드래프트는 계약할 수 있는 선수를 뽑는 게 아니라 최고의 선수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스카우트 방식”이라고 오타니 지명 이유를 밝혔다.

미국행 의지가 컸던 오타니의 마음을 돌리기는 쉽지 않았다. 일본 야구계 안팎에서도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닛폰햄은 적극적으로 나섰다. 미국 진출 일본 선수들의 유형을 분석한 자료와 함께 오타니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한 로드맵까지 보여줬다.

닛폰햄이 준비한 자료 중에는 버스를 이용한 긴 원정길, 관중 없는 텅 빈 구장, 형편없는 숙소 등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비디오도 포함돼 있었다. 가장 매력적인 제안은 ‘투타 겸업’이었다. 아주 높은 성공 확률로 메이저리그 직행을 원한 오타니의 마음은 움직였다. 평소 동경했던 다르빗슈 유(텍사스 레인저스)의 등번호(11번)를 달고 2013 시즌 개막전에 닛폰햄의 선발 우익수로 출전한 오타니는 4타수 2안타를 때려냈다.

분업화·전문화된 현대 야구에서 오타니처럼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는 프로 선수는 없다. 선발투수가 4~5일의 휴식 없이 불펜투수로 마운드에 오르는 것조차 ‘혹사’라며 입길에 오르는 시대다. 투타 겸업은 부상 확률도 높아 투자적 가치로 봐도 위험하다. 지명타자제도가 없는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미국프로야구 내셔널리그에서는 투수가 타석에 서지만 투타 겸업은 아니다.

“90년대 이후 일본 최고의 투수일 듯”

오랜 역사의 메이저리그에서도 투타 겸업으로 성공한 선수는 드물다. ‘홈런왕’ 베이브 루스(조지 허먼 루스)가 가장 많이 회자되는데 이 또한 1910년대 후반의 일이었다. 루스는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1916년 23승12패 평균자책점 2.75, 1917년 24승13패 평균자책점 2.01의 성적을 냈다. 1917년에는 타자로도 100타석 이상 섰으나 두드러진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된 뒤에는 홈런 타자로 두각을 나타내며 1921년 59홈런, 1927년 60홈런을 때려냈다. 양키스 때는 투수로 단 5차례만 마운드에 올랐다. 루스의 22시즌 통산 기록은 ‘투수’로는 163경기 등판(선발 147경기), 94승46패 평균자책점 2.28, ‘타자’로는 2503경기 출전, 타율 0.342, 714홈런 2214타점이다. 일본 리그에서 4시즌밖에 뛰지 않았으나 오타니 또한 루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

‘투수 오타니’의 최대 장점은 빠른 공이다. 오타니는 지난해 10월 열린 퍼시픽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해 시속 165㎞의 공을 던졌다.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고 구속이다.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아라시 니시야가레>)에서 가상현실을 통해 ‘투수 오타니’의 시속 165㎞ 속구를 직접 접했던 오타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공이 더 빨랐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오타니의 빠른 공은 속구처럼 날아오다가 타자 앞에서 뚝 떨어지는 포크볼과 곁들여지며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2015년 열린 프리미어12 때도 오타니는 한국과 예선전, 준결승전에서 시속 160㎞ 안팎의 속구와 포크볼을 앞세워 13이닝 3피안타 21탈삼진 무실점의 괴력을 선보였다. 대표팀을 이끈 김인식 감독은 “오타니는 공도 빠르고 포크볼도 좋았다. 슬라이더, 커브까지 간간이 던졌는데 90년대 이후 일본 최고의 투수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대표팀 주장 정근우(한화)는 “속구 구속이 빠른데다 공을 놓는 타점 또한 높아서 더 치기 어려웠다. 마치 공이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며 “낮은 공이 스트라이크존에 걸치니까 높은 공에도 속을 수밖에 없었다. 결정구로 던지는 포크볼도 지금까지 볼 수 없던 공이었다”고 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투수 오타니’는 39승13패 평균자책점 2.49, 595탈삼진(517⅔이닝 투구), 이닝당 출루허용(WHIP) 1.066을 기록했다. 9이닝당 평균 탈삼진 수는 10.3개. 커쇼의 통산 기록(9이닝당 9.8개)보다 많다. 김인식 감독은 “오타니는 메이저리그에 가서도 1선발로 뛸 선수다. 구위, 구질 면에서 다르빗슈나 이와쿠마 히사시(시애틀 매리너스)보다 한 수 위”라고 평했다. 선동열 전 감독은 “오타니의 투구 폼은 상당히 부드러워 부상 위험이 적다”고 했다.

‘타자 오타니’도 강하다. 오타니는 지난해 데뷔 첫 3할 타율과 100안타를 기록했다. 올 시즌에는 허벅지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2홈런 포함, 타율 0.407(27타수 11안타 4볼넷)의 성적을 내고 있었다. 닛폰햄 스카우터 오후치 다카시는 <블리처 리포트>와의 인터뷰에서 “오타니가 3학년 때 봄 고시엔에서 고교 맞수 후지나미 신타로를 상대로 홈런을 때려냈는데 그처럼 완벽하고 아름다운 홈런을 여태 본 적이 없다”며 “긴 팔 때문에 투구 밸런스가 흐트러지는 점이 있었으나 타격 메커니즘은 그때부터 완벽했다”고 평했다.

다음 목표는 “시속 170㎞를 던지는 것”

발 또한 느리지 않다. 메이저리그의 한 스카우터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SI)와의 인터뷰에서 “왼쪽 타자 박스에서 1루까지 뛰어가는 데 3.89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메이저리그 타자들과 비교해도 수준급”이라고 했다.

재일동포 출신의 최일언 엔씨(NC) 다이노스 수석코치도 ‘타자 오타니’에 더 주목한다. 최 코치는 “일본 프로 선수들 사이에서는 투수보다 타자로서 오타니를 더 높게 평가한다. 빠른 공을 던지지만 제구가 조금 안 좋기 때문”이라며 “그래도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는 투수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 투구 폼을 조금 더 간결하고 빠르게 가져가면 지금보다 구속은 더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일본 잡지 표지 모델로 나선 오타니 쇼헤이. 닛폰햄 파이터스 공식 페이스북 갈무리

구단이나 감독의 배려도 있으나 투타 겸업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오타니의 노력이다. 던지고 치는 훈련을 병행해야 해서 다른 선수들보다 2배는 더 훈련해야 한다. 그래도 오타니는 지친 기색이 없다. “전혀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사실 오타니의 하루는 야구로 꽉 채워져 있다. 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식사, 체력 훈련 등을 구단 시설에서 소화한다. 술·담배를 일체 하지 않으며 운전면허 또한 없다. 올해 연봉이 2억7000만엔(28억원)인데 한 달 용돈은 10만엔(100만원) 남짓. “돈은 야구를 즐겁게 할 수 있을 만큼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취미 생활은 스포츠 관련 영화를 보거나 훈련 방법이나 식이요법에 관련한 책을 읽는 것. 반신욕과 낮잠도 좋아하지만 클럽 출입은 전혀 하지 않는 ‘모범 생활 사나이’이다.

고교 1학년 때 세운 만다라트 계획표(일본의 한 디자이너가 개발한 목적을 달성하는 기술)대로 오타니는 지금 시속 160㎞의 공을 던지며 포크볼 또한 완성했다. 그의 다음 목표는 “메이저리그 진출”과 “시속 170㎞를 던지는 것”.

올 시즌 뒤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그가 미국 무대에 ‘투수’로 데뷔할지, ‘타자’로 데뷔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지명타자제도가 있는 아메리칸리그 몇몇 팀은 이미 ‘투타 겸업 조건’도 수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 야구 개척자 ‘오타니’이기에 그의 ‘야구’는 미국에서도 통할 수 있지 않을까. “치고 던지는 것. 그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야구다. 한가지만 하고 다른 하나를 하지 않는 것은 나에게 부자연스럽다. 다른 이들이 하지 않는 것(투타 겸업)을 하는 것이 재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는 그냥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다.”(오타니 쇼헤이)

*참고자료: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Shohei Ohtani?Japan's Babe Ruth?is about to change the face of baseball’

<블리처 리포트> ‘Shohei Ohtani: The ‘Best Baseball Player in the World' Isn't in MLB...Yet’

오타니 쇼헤이. 니폰햄 파이터스 공식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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