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해결한다며.. 청구서 보낸 트럼프

2017. 4. 2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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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비용 요구.. 트럼프의 '안보 장사' 파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 보훈부에서 공익 신고자 보호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하기 직전 손을 뻗어 정당성을 설명하고 있다. 뒤에 마이크 펜스 부통령(왼쪽)과 데이비드 슐킨 보훈부 장관이 서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이 사드(THAAD) 비용을 지불할 것을 요구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협상하거나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위협을 앞에 두고 동맹인 한국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비용 청구서를 내밀었다.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협상하거나 종료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대통령 취임 100일(29일)을 이틀 앞두고 백악관에서 로이터 통신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 한·미 관계에 충격을 주는 발언을 쏟아냈다.

‘4월 위기설’이 잠잠해진 틈을 타 기습적으로 비용을 청구한 데다 한국 대선을 불과 열흘 정도 남긴 민감한 시점에 입장을 밝혀 더욱 논란이 되고 있다. 고도로 계산된 전략적 발언인지, 자국민을 겨냥한 정치적 발언인지 구분하기 어렵지만 한국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방적 주장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인터뷰에서 “한국은 사드 비용을 지불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10억 달러(약 1조1353억원)를 왜 미국이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한국이 그 돈을 내는 게 적절하다고 한국에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양국이 맺은 협약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사드는 한국이 부지를 제공하는 대신 운영에 드는 비용은 미국이 부담하기로 이미 합의가 끝났다. 이후 사드 장비가 경북 성주 부지에 전격 배치될 때까지 한·미 간에 사드 비용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 비록 사드 배치가 한·미동맹 차원에서 결정되긴 했지만 미국의 배치 요구가 더 강했다는 걸 감안하면 비용 청구는 전혀 예상되지 않은 돌출발언이다.

사드 비용 발언에 대해 미 국무부와 국방부, 심지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들조차 사전에 알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누구의 조언을 듣고 이런 발언을 했는지 워싱턴 정가에서도 궁금증이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때는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취임 이후 한 번도 사드 비용을 포함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언급한 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사드 발언이 취임 100일을 앞두고 자신의 실적을 과시하면서 북핵 위기 대처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즉흥적 발언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역대 미 대통령 중 가장 낮은 국정 지지도를 보이고 있는 그가 지지층을 재결집시키기 위해 선거 공약을 되풀이했을 것이란 분석인 것이다.

일각에선 이르면 올해 말 또는 내년 초 시작될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염두에 두고 기선잡기에 나선 것이란 지적도 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 배치에 반발하는 한국의 유력 대선 주자와 야당에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아울러 미리부터 한국의 차기 정부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해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의도로 한 것이든 사드 비용 청구 발언은 한·미 관계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다. 당장 한국의 차기 정부와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 비용 청구 입장을 굽히지 않고 한국의 새 정부가 비용 지불 거부로 맞설 경우 한·미동맹에 상당한 균열이 생길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한·미동맹을 ‘찰떡 공조’에 비유했으나 안보도 거래 대상으로 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원칙 앞에 한·미동맹이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FTA 재협상 혹은 종료 발언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긴 하지만 충격이기는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끔찍한 한·미 FTA를 수용할 수 없다”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손보고 한·미 FTA를 재협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에 대해서도 지난해 대선 기간 중에는 ‘일자리를 죽이는 나쁜 협정’이라며 비판했으나 선거가 끝난 뒤에는 한 번도 거론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미 FTA가 무사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는 없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FTA 재협상에 나서더라도 북한발 위협이 진정되거나 한국의 새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는 거론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워싱턴 정가나 국제기구, 싱크탱크 전문가들 사이에 많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FTA 재협상 혹은 폐기 발언에 대해서도 주무 부처인 미 무역대표부(USTR) 관계자들은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NAFTA 탈퇴를 추진했지만 실무적으로는 아무런 절차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캐나다와 멕시코의 반발도 있지만 미국 내부적으로 진용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FTA 재협상 업무를 담당할 USTR의 대표가 상원 인준을 통과하지 못해 공석이다.

NAFTA 협상에 대한 입장도 오락가락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NAFTA에서 영원히 탈퇴할 것”이라고 했다가 반대 여론이 일자 “폐기 대신 재협상하겠다”며 입장을 번복했다. 그러다가 이날에는 다시 “공정한 협상을 못하면 NAFTA를 끝낼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한·미 FTA 폐기 혹은 재협상 발언도 NAFTA와 마찬가지로 언제 어떻게 달라질지 지금으로서는 예측불허다. 하지만 일단 상대가 놀랄 정도의 ‘최대치’를 던져놓고 줄다리기를 벌여 성과를 챙겨가는‘장사꾼’ 기질의 트럼프 대통령 협상 스타일을 감안하면 적어도 사드 비용 부담과 한·미 FTA 재협상 둘 중 하나는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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