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트럼프 대통령 "사드 비용 한국 부담" 발언 취소하라

2017. 4. 29.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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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 대통령이 어제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에 배치된 사드는 10억달러의 놀랄 만한 장비"라며 "한국에 이 비용을 지불하는 게 적절하다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왜 우리가 (사드와 관련한) 돈을 지불해야 하느냐"는 말을 모두 네 차례 했다. 그는 미국이 한국을 지켜주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느닷없는 발언을 접하고 충격과 함께 배신감, 분노를 느낀 국민이 많을 것이다.

사드 배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은 미국이었다. 북이 노동미사일을 고각 발사하면서 기존의 미사일 방어망이 역부족이 된 데 따른 것이었다. 미국은 주한미군과 유사시 미군 증원 전력이 들어오는 항만 등 전략 시설을 보호해야 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주한미군 방어가 곧 대한민국 방어와 직결될 뿐만 아니라 부차적으로 사드 방어 범위에 드는 국토까지 보호된다는 전술적 이익이 있었다. 이에 따라 양국 정부는 우리가 사드 관련 부지를 제공하고 미국 측이 사드 장비의 전개·운용 및 유지 비용을 부담하기로 합의했다. 지금까지 미군 장비 전개는 모두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이 같은 방식으로 진행돼 왔다. 양국은 지난 3월 이런 내용을 담은 사드 관련 합의를 약정서로 만들어 보관 중이다. 트럼프는 갑자기 이 합의를 깨겠다는 것이다. 한국에 통보했다는데 우리 정부는 통보받은 바도 없다고 한다.

돈이 많고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이미 사드 배치로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 국론이 갈라졌고 배치 지역 주민의 반발도 심했다. 뜻하지 않게 사드 부지를 제공하게 된 기업은 중국에서 말로 못할 보복을 당하고 있다. 중국 보복은 이 기업만이 아니라 관광객 제한, 한류 금지 등 전방위로 퍼졌고 이제는 자동차 판매까지 격감하고 있다. 이런 한국에 대해 미국 대통령이 기존 합의를 무시하고 '돈을 내라'고 손을 내밀었다. 몰상식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가 중국의 일부였다'는 시진핑의 말을 그대로 전할 정도로 한국에 대해 모르면서도 심각한 오해까지 갖고 있다. 한국이 미국의 군사력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현직 주한미군 관계자들, 전직 주한 미 대사가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지만 그의 귀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동맹 사이에도 돈 문제는 생길 수 있다. 한·미 양국이 5년마다 하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도 순조롭지만은 않다. 그러나 이 문제로 동맹이 흔들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양측 모두 돈 문제를 밖으로 꺼내서 갈등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럼프 식이라면 한국도 매년 1조원 가까운 방위비 분담금을 부담하고 있다는 사실, 세계 최대급 평택 주한미군 기지 건설비도 거의 대부분 한국이 부담했다는 사실, 한국은 손꼽히는 미국의 무기 구매국이고 그 비용은 막대하다는 사실 등을 제시하면서 반박해야 한다. 동맹이 이런 논쟁을 벌이게 된다면 더 이상 미국 측 용어대로 '빛 하나 샐 틈 없는' 동맹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한미동맹은 1953년 6·25 휴전 이후 맺어져 60년 넘게 이어져 왔다. 2009년 양국이 공동 발표한 '미래 비전'의 표현처럼 한미동맹은 이제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 초석(cornerstone)이 됐다. 한미동맹은 그동안 경제적 가치로는 환산하기 어려운 관계를 만들어왔고 많은 나라가 이를 부러워하고 있다. 북의 위협을 억지하는 주한미군의 존재로 한국은 커다란 도움을 받고 있고, 미국도 한미동맹으로 인한 정치·경제·군사적 전략 이익을 향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많은 전문가는 한미동맹이 이런 '가치동맹'에서 한낱 '이익동맹'으로 격하될 가능성을 가장 우려했다. 모든 것을 돈 거래와 단기적 이익 손해로 따지는 트럼프 스타일이 결국 그 우려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장기라고 생각하는 돈 거래 협상술, 허를 찌르고 예상을 넘는 요구로 상대를 흔드는 기술을 안보 동맹에까지 사용하려 하고 있다. 한미 FTA도 재협상에서 나아가 아예 '종료'까지 언급하는 식이다. 한미동맹의 역사와 현재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없는 사람이 이런 방식으로 한국을 다루려 한다면 심각한 문제다. 트럼프 스타일이 반복되면 한국 사회에 반미(反美) 감정이 확산되는 것은 필연적일 것이다. 10억달러가 얼마나 큰돈인지 몰라도 한미동맹에 좀처럼 씻기 어려운 오점을 남겨도 될 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드 비용 한국 부담' 발언을 취소하는 것이 옳다.

곧 취임하는 한국의 새 대통령은 기존의 미국 대통령과 전혀 다른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과 한미동맹을 이해시키고 이견(異見)을 조율해야 하는 무겁고도 중대한 과제를 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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