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 소환]설문대할망

김지연 | 전시기획자 입력 2017. 4. 2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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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어린 시절부터 제주라는 섬 안에서 ‘말처럼’ 뛰어놀며 성장한 작가 홍진숙이 섬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을 것은 당연하다. 제주도에서 그는 종종 섬이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어디론가 흐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단다. 섬은 그에게 견고하게 고정되어 있는 존재라기보다는 자신과 감정적으로 유연하게 교감하는 유동적 존재였던 셈이다. 익숙한 공간이지만 그래도 조금 다른 시각으로 섬을 느끼고 싶었던 작가는 일단 제주의 자연과 역사를 꼼꼼하게 들여다보았다.

홍진숙, 설문대할망 다시 불러오기, 2009, 163×112㎝, 장지에 채색

바다, 용천수, 여신처럼 제주의 역사 속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공부하며 자연 속에 깃들어 있는 세상의 질서와 신비를 만났다. 특히 제주 전역에서 전해지는 신들의 이야기는 작가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인간의 원초적인 신념이 투영되어 있는 신화에는 대자연과 우주에 대한 인간의 상상이 담겨 있다. 한라산을 베고 누우면 발끝이 제주도 북쪽에 있는 관탈섬에 닿을 만큼 커다란 존재. 호기심이 많고 활발했던 그는 옥황상제의 딸이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하늘에서 땅으로 쫓겨난 그는 치마폭에 있던 흙을 내려놓아 제주도를 만들고, 평평한 땅의 흙을 모아 한라산을 만들었다. 제주를 만든 대모신. 그는 설문대할망이다. 작가는 화폭에 설문대할망을 담았다.

물장오리의 깊이를 재보다가 창터진물에 빠져 죽었다는 설문대할망의 삶은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비극이다. 하지만 홍진숙은 환생꽃으로 깊은 잠에서 깨어나 생명의 숨을 쉬고 있는 존재로 설문대할망을 묘사했다. “여신의 얼굴이지만 동시에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듯한 이미지의 중첩성이 돋보인다”는 한 평론가의 표현처럼 홍진숙은 차원을 넘나들며 살아 숨쉬는 설문대할망을 여기 다시 불러들여 생명이 움트는 제주를 이야기한다.

<김지연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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