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시선]무엇이 적폐인가?

최태섭|문화비평가‘잉여사회’ 저자 2017. 4. 28.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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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선이 코앞인 이 시점에서 나는 의문이 생겼다. 이번 대선은 “적폐청산”이 중요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적폐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걸까? 일단 명백한 상황들이 있다. 이 대선은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한 시민들의 촛불로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그들과 국정농단을 도운 세력에 대한 확실한 진상규명과 정당한 심판이 이 적폐청산의 기본이다.

당사자인 박근혜를 비롯하여, 많은 인사들이 구속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을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우리가 촛불을 들고 외쳤던 구호들을 기억해보자. 재벌도 공범이다. 언론도 공범이다. 지금은 갈라진 구 새누리당도 공범이다. 비록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구속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지만, 이 공범들에 대한 청산의 계획은 아직 구체적이지 않다. 아니 오히려 이들은 여전히 한국사회의 주류이며, 여전히 건재하고, 정치적 이합집산과 눈치보기를 통해 숨을 고르며 재기를 도모하는 중이다. 누가 재벌에 맞서고, 언론에 맞서고, 강간모의의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도 아무런 상관없는 보수정치세력과, 성소수자 차별을 자신들의 명줄로 부여잡고 악다구니를 쓰고 있는 대형보수교회들에 맞설 것인가?

지금 유력 대선후보 중 심상정 후보 정도를 제외하면 이른바 적폐에 맞설 의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홍준표, 유승민 후보는 박근혜라는 꼬리를 잘라내고 보수의 패권을 거머쥘 궁리에 바쁘고, 안철수 후보는 지리멸렬한 잡음들을 선거전략이라고 우기는 중이다. 가장 유력한 후보인 문재인 후보는 너무나도 겸손한 나머지 다시 이등병이라도 된 듯 군복을 차려입고서는 대형교회며 재벌에 연이어 머리를 숙이고 있다.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문 후보의 지지자들은 이런 행보에 대하여 ‘정치현실’을 보라며 옹호하는 중이다. 하지만 궁금한 것은 대형교회에 했던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약속이란 말인가? 재벌에 한 약속은?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말대로 정권교체를 위한 광폭행보라면 왜 소수자들 앞에서는 유독 그 발걸음이 멈추는 걸까? 우리가 쟤들보다는 좀 더 나은 차별주의자들이라고 자랑스럽게 외치는 이들에게 무슨 정의와 더 나아진 세상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이 ‘지지자’들은 우리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니 너희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기적의 정치적 설득 논리 덕분에, 당신이 입을 다물라고 외치는 이들과 그 친구들의 지지가 저 멀리 사라지는 것 하나는 확실하다.

이들이 생각하는 적폐청산은 강력한 힘을 얻으면 적폐세력을 일거에 소멸시킬 수 있다는 망상에 가깝다. 하지만 아주 ‘현실적으로’ 민주당 창당 이후 최고의 기회를 얻었던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을 떠올려보라. 그것은 착하고 무능한 것을 넘어서 그 자체로 적폐인 것을 잔뜩 만들어냈다. 노동의 퇴보, 부동산 문제, 국가보안법 폐지 실패, 사학비리 근절 실패, 사회 양극화, 한·미 FTA, 기업지배의 전면화가 모두 ‘민주정권’에서 일어났다.

시대의 흐름이 그러했는데 무엇을 할 수 있었냐고? 그럼 지금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오늘날의 지지는 언제든지 거대한 실망으로 돌아설 준비가 되어 있고, 차기 정부 대통령은 전 정권의 문제들과 새 시대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기대 모두와 맞서야 한다. 국제사회에서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고, 북한 문제는 시한폭탄이다. 나빠졌으면 몇 배는 나빠졌을 상황 앞에서 당선만 되면 다 해낼 것이라는 주장은 얼마나 공허한가?

미몽에서 하루라도 빨리 깨어나지 않으면, 적폐청산은커녕 정권교체가 무색하게 무기력 속으로 빠져드는 ‘마지막’ 민주정권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필요한 것은 점령군이 아니라 지독한 자기성찰로 단련된 민주주의자들이다.

<최태섭|문화비평가‘잉여사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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