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종이돌' 던져 촛불 완성하자

임혁백 |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2017. 4. 28.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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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혼용무도한 대통령을 탄핵으로 끌어낸 것은, 이스라엘인들이 다 같이 큰소리로 외쳐 여리고성을 무너뜨렸다는 성경 구절처럼, 연인원 1600만명의 시민들이 광장에서 한목소리로 대통령 퇴진을 외친 ‘작은 자들의 큰 함성’이었다. 촛불혁명은 4·19학생혁명, 6월 민주화항쟁에 이은 제3차 민주화 혁명이다. 1960년 4월과 1987년 6월 여름에 시민들은 짱돌을 던지면서 무장한 경찰과 거리에서 대결하였으나, 2016~2017년 겨울에 수백만의 시민들은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거리의 의회’(street parliament)를 열어서 대통령을 해임시키고 적폐청산을 통해 자유와 풍요가 넘치는 민주 대한민국을 건설하자는 대토론을 하였다. 광장의 함성은 국회를 흔들어 탄핵소추가 이루어지게 하였고, 헌법재판소로 하여금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선고를 내리게 하여 5·9 촛불대선을 만들어 내었다.

촛불혁명은 광장 민주주의가 대의 민주주의와 훌륭히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광장의 시민들은 이전처럼 거리에서 짱돌을 던지지 않고 평화적으로 시민의회를 열어서 주권국민의 일반의사를 대의기구인 국회에 전달하였고, 국회는 지난해 12월9일 대통령 탄핵소추를 의결하여 촛불시민의 요구에 응답하였다. 광장의 시민들은 탄핵이라는 대의 민주주의 제도를 통해 국정을 농단하고 국민을 농단한 대통령을 해임하였고 그들이 원하는 적폐청산 개혁도 대의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통해서 실현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촛불시민들이 5·9 대선을 만들어내자마자 탄핵정국은 급격히 선거정국으로 이동하였다. 득표 숫자가 결정하는 선거에서는 표가 우상이다. 합리적 후보들은 촛불혁명의 대의보다는 득표를 극대화하려 한다. 표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후보들은 국정을 농단해온 적폐청산 대상 세력과 후보단일화, 대연정 같은 선거공학도 서슴지 않는다. ‘국민통합’이라는 이름으로 적폐정치 세력과 야합하여 선거승리를 도모하는 승리지상주의가 선거공간을 지배하고 있고, 이 틈을 타서 국정농단, 국민농단 세력들은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 적폐세력들도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선거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이용하여 5·9 대선에 뛰어들었다. 선거에 뛰어들자마자 그들이 한 것은 북풍을 일으켜 안보위기를 조장하여 표를 강요하는 구태의연한 ‘안보장사’였다. 적폐세력이 적반하장으로 촛불을 조롱하는 언어를 내뱉으며 집단행동을 하는 장면들이 TV 화면을 채우는 일까지 벌어지자, “이러려고 혹한의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는 촛불시민들의 한숨이 나오고 있다.

적폐세력까지 참여하는 선거연합으로 승리를 도모하는 정치공학이 은밀히 그리고 공개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촛불시민들은 “이러다가 촛불혁명도 ‘미완의 혁명’으로 끝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다시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어야 하나?”라고 우려하는 촛불시민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선거공간을 틈탄 반촛불세력의 준동에 대해 촛불시민들은 너무 위축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민주주의하에서 살고 있고, 민주주의하에서는 1인1표라는 평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들이 ‘종이돌(paper stones)’을 던져 정권을 교체할 수 있고, 정권교체를 통해 적폐를 청산하고 제도개혁을 단행하여 혁명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프랑스 혁명기에 시민들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던져 혁명을 하려 하였으나 정권의 곤봉과 총에 살해당하면서 저지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말 보통평등선거권이 주어지자 프랑스, 독일, 북유럽의 시민들은 더 이상 거리에서 짱돌을 던지지 않고 투표장으로 달려가 ‘종이돌’을 던져 ‘투표함에서의 혁명’을 이루어 내었다. 따라서 선거국면에서 촛불시민들이 해야 할 일은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드는 것도 아니고 거리에서 짱돌을 던지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지금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촛불민심을 실현시켜주겠다고 약속하는 후보에게 ‘종이돌’을 던지는 것이다.

탄핵에서 선거국면으로 이동한 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촛불혁명과 이를 대표하겠다는 후보들의 지지가 변함없이 80% 내외를 유지하고 있고 촛불혁명을 반대하는 후보들의 지지율은 모두 합해도 20%를 넘어본 적이 없다. 80% 대 20%라는 탄핵국면의 정치구도가 선거국면에서도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 촛불시민들은 촛불혁명의 대의가 흔들리고 있다고 의심해서는 안된다.

촛불시민들은 광장에서 대통령을 해임할 수 있었던 데서 얻은 자신감으로 이제 선거라는 대의 민주주의 공간에서도 ‘종이돌’을 던져 정권교체를 하고 촛불혁명을 완성할 수 있다고 확신해야 한다. 그러나 종이돌은 참여하는 시민에게만 ‘평화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여론조사만을 믿고 투표장에 가지 않는 촛불시민들에게 종이돌은 ‘종이호랑이’이거나 주권행사를 팽개친 휴지조각일 뿐이다. ‘종이돌’의 혁명은 종이돌을 투표함에 던질 때 일어나는 것이다.

<임혁백 |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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