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선 정책 검증-사교육비 감소, 구체성·실천의지가 부족하다

2017. 4. 28.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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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대, 교육은 서민들의 희망이자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이끈 동력이었다. 그러나 사교육이 번성하면서 교육은 사람들의 꿈을 빼앗고 사회 양극화를 확대 재생산하는 반민주적 시스템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사교육은 만악의 근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들은 살인적인 학습 부담에 신음하고 학부모들은 연간 20조원에 이르는 사교육비를 대느라 허리가 휘고 있다. 젊은 세대의 저출산과 중장년 세대의 노후 불안도 과다한 사교육에 뿌리가 있다. 가계 소비를 옥죄고 있는 사교육비는 경제 회복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 나선 후보들은 사교육을 잡기 위한 각종 공약을 내놓았다. 사교육 수요를 줄이고 사교육 공급을 통제하는 2가지 방향으로 접근했다. 대부분의 후보들은 복잡한 대학입시 제도가 사교육을 부추기는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이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대입을 학생부교과와 학생부종합, 수능시험 등 3가지로 단순화하겠다고 했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도 학생부와 면접, 수능 3가지로 학생들을 선발하겠다고 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공약도 대동소이하다.

전체적으로 옳은 방향이다. 900가지에 이르는 현재의 복잡한 대입전형 방식은 ‘컨설팅 사교육’을 유발하고 고소득층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수능의 영향력을 축소하겠다는 공약도 학생들의 입시 부담과 사교육 수요를 줄인다는 관점에서는 바람직하다. 문 후보와 심 후보는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꾸겠다고 했고, 안 후보는 수능을 과거 예비고사처럼 대입 자격시험으로 돌리겠다고 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은 특목고와 자사고, 국제고의 축소·폐지도 내세웠다. 만시지탄이다. 지난해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초등학생 24만원, 중학생 27만5000원이었다. 고등학생 26만2000원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사교육 상당 부분은 특목고 입시를 위한 선행학습이다. 설립 취지와 다르게 운영되는 외국어고와 자사고는 사회적으로 합의가 이뤄진 고교 평준화의 기반도 위협하고 있으므로 이번 기회에 과감히 정리돼야 한다.

학원 등 사교육업체에 대한 합리적인 통제는 ‘나쁜 사교육’의 공급을 제한하기 위해 필요하다. 대입제도 변경과 특목고 폐지로 사교육 수요가 감소하기까지는 1~5년의 시간이 걸린다. 사교육으로 인한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정부 정책의 체감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학원의 선행교육과 학생들의 심신을 위협하는 심야 교습을 제한해야 한다. 그러나 심 후보 외에 다른 후보들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문 후보는 학원 휴일 휴무제를 제시했지만 초등학생에 국한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법으로 강제하기 어렵다는 이유지만 학원업계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학교는 학원에, 교사는 학원강사에게 밀리면서 공교육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사교육 문제는 궁극적으로 공교육 질을 높여 해결해야 한다. 교육 투자를 늘리고 교사들의 헌신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을 모를 리 없지만 어느 후보도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 폐지·축소도 학교교육의 질 제고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교육기관 간 권한 배분은 부차적인 문제다. 교육부가 시·도교육감에게 권한을 이양하면 교육감은 이 권한을 단위 학교에 넘겨 일선 교사들이 책임지고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부와 교육청이 교사를 통제하고 간섭하는 기관이 아니라 교사의 수업과 학생 생활지도를 지원하는 기관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문제는 실천이다. 역대 정권의 사교육 정책이 실패한 것도 실천력이 담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은 사회의 발전과 영속, 개인의 자아실현을 보장하는 핵심 공공재이다. 한국 사회가 사교육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과감한 행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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