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어린 여성의 날'이 있다?

베이징ㆍ정해인 통신원 2017. 4. 28.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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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여성의 지위는 개혁·개방 이후부터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눈 낮춘' 결혼을 장려하는 한편, 기혼 여성을 폄하한다. 정책 실패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모양새다.

최근 중국에서는 즈난아이(直男癌)라는 단어가 다시 떠올랐다. 이 단어는 ‘남성 우월이 너무 심한 나머지 암처럼 구제불능인 남성’을 의미한다. 이 단어가 암 환자들에 대한 또 다른 혐오를 낳는다는 이유로 여혐증, 혹은 남성우월주의로 대체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온라인상에서 잇달아 터진 성차별 사건 때문이다.

지난 1월, 중국 굴지의 IT 기업인 텐센트의 송년회에서 여성 직원들에게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행동을 시킨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졌다. 여론은 들끓고 회사는 사과했다. 2월에는 한한(韩寒)이라는 영화감독이 영화 <바람과 파도를 타고 나아가다>(乘風破浪)의 주제곡 ‘사나이 선언’을 공개했다. 노래 가사는 한 남성이 아내에게 요구하는 조건들을 나열했다. “나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면 안 돼. 아침엔 늦게 일어나면 안 돼. 밥을 맛있게 해야 해. 시어머니와는 잘 지내야 해.” 비판이 쏟아졌다. 불붙은 성차별 이슈는 지난 3월8일 중국 부녀절이자 세계 여성의 날까지 이어졌다.

중국 여성의 지위는 지난 30년간 일관되게 하향했다. 중국 국내외에서 조사한 지표상으로 봐도 그렇다. 2006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매긴 남녀평등지수 순위에서 중국은 144개국 중 63위였다. 2016년, 이 순위는 99위로 추락했다. 중국 국가통계국과 전국부녀연합의 2011년 조사에 따르면 중국 도시의 여성 고용률은 1990년 76.3%, 2000년 63.7%, 2010년 60.8%로 꾸준히 하락했다. 같은 시기, 남성 소득 대비 여성 소득수준도 1990년 77.5%, 2000년 70.1%, 2010년 67.3%로 벌어졌다.

ⓒ웨이보 한 중국 여성이 3월7일 ‘여생절’을 비판하며 “공주라는 이름으로 나를 속박하지 말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개혁·개방 이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1949년, 마오쩌둥은 집권 즉시 강력한 성평등 정책을 추진했다. “부녀(여성)가 하늘의 절반을 받치고 있다(婦女能頂半邊天)”라는 슬로건 아래, ‘부녀(여성) 해방’과 ‘남녀평등’을 내걸었다. 1950년 반포된 중화인민공화국의 첫 번째 법은 ‘혼인법’이다. 여성은 직업 선택, 재산 소유, 이혼의 권리, 결혼 생활에서의 권리를 보장받는다는 내용이다. 1954년에는 여성이 정치·경제·가정생활 등에서 남성과 평등한 권리가 있음을 헌법에 명시했다.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것이 미덕이라 여겨져 10세기 초부터 이어져오던 전족 같은 남존여비의 구습들이 사라졌다. 활동적인 여성이 추앙을 받았다. 집에서 나와 열심히 노동하는 여성을 칭송하는 ‘철녀(鐵姑娘)’라는 신조어도 나타났다. 동시에 아이를 5명 이상 낳은 여성에게는 ‘영광스러운 엄마(光榮妈妈)’ 칭호를, 10명 이상 낳은 여성에게는 ‘영웅엄마(英雄妈妈)’라는 칭호를 주었다.

이 시기 정착된 문화들은 중국이 여전히 세계경제포럼 성평등지수에서 한국·일본에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에서 여성의 지위는 국가가 기획한 면이 있다. 철녀·영웅엄마라는 정체성은 마오쩌둥이 건국 초기에 전쟁을 우려하여 노동력과 병력을 확보하기 위해 펼친 정책의 산물이었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시장이 계획경제를 대체하며 여성의 지위는 새로워졌다. 국영기업이 무너지고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채용 때 공공연히 결혼 유무와 자녀 계획을 묻는 기업이 늘어났다. 기존 국가 복지 시스템이 무너지자 탁아소·유치원에 아이를 보낼 여력이 없는 여성들은 국가가 그렇게도 원했던 노동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여론과 학계가 이를 부추겼다. 일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여자들이 귀가해야 가정이 안녕하다’는 부녀회가론(婦女回家論)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혼 여성을 폄하하는 비속어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다. ‘하늘의 절반을 떠받친다’던 ‘부녀’라는 단어에 기혼이고, 아름답지 않고, 교양 없고, 늙어가는 여성의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심지어 1924년부터 기념해온 3월8일 부녀절을 지칭하는 ‘싼바(三八)’는 기혼 여성을 폄하하는 비속어가 되어버렸다.

ⓒEPA 국영기업이 무너지고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성차별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2014년 3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서 상담을 받고 있는 여대생.

‘어린 여성’을 위한 기념일은 왜 생겼을까

1990년대부터는 ‘어린 여성의 날’을 지칭하는 여생절(女生節)을 부녀절 하루 전날인 3월7일에 따로 기념하기 시작했다. 이날 하루, 성차별적 고정관념은 극대화되어 드러난다. 남성들은 어린 여성에게 선물 공세를 펼치며 구애를 하고, 심지어는 학교에 “봄바람보다 너와 자는 게 좋다(春風十里,不如睡你)”라는 플래카드까지 걸며 여성들을 성적 대상화했다. 여성은 남성에 의해 평가당하고, 선택받는 수동적인 대상으로 전락했다. 기업들은 이날을 여신절(女神節), 여왕절(女王節)이라 부르며 미모의 모델을 내세워 선전하고, 아름다운 여성을 겨냥한 세일 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였다. 결국 금전적 여유가 있고, 예쁘고, 드세지 않고, 결혼하지 않은 여성만을 ‘여성답다’며 인정하고 나머지는 배척하는 풍속이 자리 잡았다.

남성에게 선택받지 못해 제때 결혼하지 못한 여성에게는 ‘잉녀(剩女:잉여 여성)’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2007년 중국 교육부는 이 단어를 새로운 신조어로 등록했다. 사회학자 훙리다(洪理达)는 저서 <잉녀시대> (2016)에서 잉녀를 둘러싼 사회현상을 설명했다. 저자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가족과 친척뿐 아니라, 미디어와 정부로부터도 결혼 압력을 받는다. 중국의 관영 매체인 신화사가 2008년 게재한 ‘결혼이 늦어진 여성들, 한없이 늦어지면 안 된다’는 제목의 글이 대표적이다. 이 글은 여성이 눈을 낮추고, 상대방의 단점을 눈감아줄 줄 알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또 고학력·고직위·고수입 여성들이 결혼을 결심할 때 그들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남성들은 이미 떠나고 없다고 걱정한다. 이 글은 각종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퍼져 나갔다. 전국부녀연합조차 홈페이지에 해당 글을 올렸다. 전국부녀연합은 공산당이 1949년에 여성 권익 신장을 위해 만든 조직이다.

훙리다는 딸을 둔 부모가 결혼에 대한 압박 때문에 맞선 결혼 때 재산·집문서의 등록 소유권을 남성 측에 양보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낮은 혼인율은 오랜 기간의 산아제한 정책과 낙태로 말미암은 성비 불균형이 주요 원인이다. 즉, 남성의 수가 여성을 웃도는 것이 문제인데, 결혼 못한 남성의 문제를 여성들에게 떠넘기는 셈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비판하는 운동들도 나타났다. 2013년에는 중국 내 첫 성차별 관련 소송이 있었다. 베이징 소재 대학의 한 졸업예정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채용 거부를 한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한 것이다. 법원은 여성의 손을 들어주었다. 지난 2월에도 광저우에서 대학 졸업을 앞둔 여학생이 중국 노동부에 항의서를 제출했다. 구인 사이트의 구인 광고 채용 조건에 여성을 차별하는 요소가 너무 많다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여성들은 ‘우리는 모두 같은 부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3월8일 부녀절의 의미를 되살리자는 운동을 벌였다. 올해에도 이 운동이 이어졌다. 온라인에서도 활발했다. 웨이보 등 SNS를 통해 여성주의 게시판이 만들어졌다. 지식 교환 플랫폼인 쯔후(知乎)에서도 성차별에 대한 의견 교환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베이징ㆍ정해인 통신원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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