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토크 - 낯선, 날선]"정책 아닌 말싸움 토론..200만명 이주민 위한 공약은 없네요"

김지윤 기자 2017. 4. 2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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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19대 대통령 선거

선거 열기는 매번 너무 뜨거운데 생각보다 투표율이 낮아 놀랐습니다. 알맹이는 없고 트집 잡기 공격만 난무하는 TV토론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민 200만명을 위한 공약이 없다는 데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바라보는 이주민들의 솔직하고도 날카로운 시선입니다.

이주민 토크 ‘낯선, 날선’의 패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앞쪽부터 세키네 지에(일본), 레티마이투(베트남), 박영철(탈북민), 알파고 시나씨(터키), 다니엘 텐들러(독일).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여러 나라 출신의 이주민들과 함께 그들이 본 한국 사회의 민낯을 이야기하는 코너 ‘낯선, 날선’의 네 번째 만남이 지난 24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5층 회의실에서 이뤄졌습니다. 이번 주제는 열흘 앞으로 다가온 19대 대통령 선거였습니다.

베트남에서 온 레티마이투(한국 거주 12년·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인권팀장), 함경북도 무산 출신의 박영철씨(16년·탈북청년모임 ‘위드유’ 대표), 어머니가 한국인인 독일 출신의 다니엘 텐들러(8년·건축사무소 운영), 터키 출신의 알파고 시나씨(14년·지한통신사 특파원), 일본에서 온 세키네 지에(9년·프리랜서)가 참여했습니다. 비판은 애정에서 출발합니다. 이들 중 대통령 선거 투표권이 있는 사람은 2명뿐이지만, 모두가 한마음으로 대한민국의 ‘좋은’ 대통령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 “선거 로고송과 운동원 율동 신기…열기만큼 투표율 높지 않은 건 의외”

토요판팀 = 오는 5월9일 대통령 선거가 치러집니다. 유세 과정을 지켜보셨을 텐데 생소하거나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부분이 있나요.

세키네 지에(이하 세키네) = 한국에서 9년째 살고 있지만, 선거운동 모습은 아직도 볼 때마다 낯설게 느껴져요. 일본은 전문 MC들이 유세 차량을 타고 다니면서 조용히 연설만 하거든요. 투표할 때도 용지에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을 손글씨로 쓰기 때문에 후보 번호도 없어요. 그래서 후보들이 ‘○번 누구입니다’라고 소개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해요. 특히 신나게 로고송을 틀어놓고 운동원들이 율동하는 모습이 재밌는데 그런 건 대체 누가 만드는 거죠?(웃음)

다니엘 텐들러(이하 텐들러) = 독일은 대통령을 직접선거로 선출하지 않아요. 국민들이 국회의원만 직접 뽑고, 국회가 대통령과 총리를 뽑죠. 선거 분위기를 비교하자면, 독일은 좀 건조하다고 할까요. 이렇게 역동적이진 않아요. 한국에서처럼 노래를 크게 틀거나 인사하면 욕먹어요. 귀찮게 한다고(웃음). 물론 길거리 유세도 있고 팸플릿은 나눠주죠. 그렇지만 이렇게 여러 곳에서 하진 않고, 시청 앞 광장처럼 몇 군데를 정해두고 해요.

터키 출신 알파고 시나씨 애국가 음정 틀려 귀화 낙방, 투표권 못 얻었지만 관심 커

알파고 시나씨(이하 알파고) = 선거 로고송은 터키에도 있어요. 가수들이 지지하지 않는 정당에 자기 노래를 쓰지 못하게 해서 가끔 서로 싸우기도 해요(웃음). 최근 치러진 터키 대선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카자흐스탄의 노래를 가져와 로고송으로 썼어요. 터키 내 소수민족인 쿠르드족과의 협상 때문에 다수민족인 투르크족 사이에서 반대여론이 높아지자, 투르크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카자흐스탄의 노래를 이용해 표를 끌어모으려 한 고도의 전략이었죠.

토요판팀 = 대선후보 TV토론은 보셨는지 궁금하네요. 한국은 토론회 다음날이면 후보들의 발언이 크게 화제가 되곤 합니다. 후보들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좀 됐나요.

베트남 출신 레티마이투 공약 어려워 가족 따라 찍기도 정당들, 이주민에게 관심 필요

레티마이투 = 베트남은 후보에 대한 정보가 많이 주어지는 편이 아니에요. 그런데 한국에 오니 후보들이 매일 TV에 나오고, 공고물이 집까지 날아오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더 자세하게 공약을 확인할 수 있어서 편한 것 같아요.

세키네 = 일본에는 TV토론이 없어요. 그래서 주의 깊게 봤는데, 사실 전 조금 실망했어요. 정책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싸움, 트집 잡기만 하더라고요. 토론을 통해 후보의 정책을 새로 알게 됐다기보다는, 안 좋은 인상만 기억에 남았다고 할까요. 그렇다고 토론을 잘하는 사람이 지지율이 높은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가끔은 TV토론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들어요.

토요판팀 = 그럼 TV토론이 없거나 길거리 유세를 많이 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유권자들이 후보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얻나요.

텐들러 = 사실 한국의 길거리 유세도 정보를 주진 않잖아요. 정보를 얻으려면 인터넷이든 뭐든 찾아봐야죠. 마찬가지예요. 끊임없이 주입하지 않더라도 관심있는 사람들은 팸플릿이나 신문 등을 보고 스스로 판단해요. 물론 그냥 감으로 뽑는 사람들도 많을 테지만요. 어느 나라나 다 마찬가지일 겁니다.

토요판팀 =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갑자기 각국의 투표율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네요.

일본 출신 세키네 지에 일본은 용지에 도장 대신 글씨, TV토론 신기했지만 의미 없어

세키네 = 일본은 50~60% 사이예요.

텐들러 = 독일은 70~80% 정도인데, 한국은 어때요?

토요판팀 = 지난 대선에서 한국은 75%였어요. 총선은 58%였고요.

세키네 = 정말요? 이렇게 열기가 뜨거운데도 투표율은 그거밖에 안된다고요? 전 정말 95%쯤 될 줄 알았어요. 일본은 선거일이 보통 일요일이거든요. 근데 한국은 평일을 공휴일로 지정해서 투표를 하길래 인상 깊었는데, 그런데도 생각보다 투표율이 낮네요.

함경북도 출신 박영철 남북관계 경색돼 통일도 멀어져, 탈북민은 선거에 민감할 수밖에

박영철 = 저는 20살 때 남한으로 내려온 후 총선, 대선, 보궐선거까지 한번도 빠짐없이 다 참여했어요. 그러다 실망한 적이 한 번 있어요. 정책이 마음에 들어서 정당을 보고 찍었는데, 그 사람이 뽑히고 난 후 다른 정당으로 옮겼어요. 국민과의 약속을 어긴 셈이잖아요. 실망이 컸어요.

토요판팀 = 내 한 표에 별다른 힘이 없다고 느껴질 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촛불집회 이후 열리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는 국민들이 거는 기대와 관심이 더 큰 상황입니다.

알파고 = 그렇죠. 한국은 특히 대통령 권한이 크잖아요. 대통령 한 명이 바뀌면 많은 것들이 바뀌는 것 같아요.

텐들러 = 맞아요. 독일은 지지하는 정당 출신이 당선되지 않아도 크게 절망하지는 않아요. 정당 간에 정치색이 다를 뿐 누가 되더라도 기본적인 것까지 흔들리진 않거든요. 그런데 한국은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가 위험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전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는 걸 보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해체되는 것 아닌가 싶은 걱정까지 했어요. 그렇게 보면 국민의 힘으로 탄핵을 이끌어낸 후 열리는 이번 대선은 지난번보다 행복한 선거라고 생각해요.

박영철 = 탈북민들은 특히 더 선거 결과에 민감할 수밖에 없어요. 탈북민들은 북에 가족이 남아 있거나, 남한에 가정이 있어도 북한에 친·인척이 남아 있는 경우가 있죠. 과거에 남북관계가 좋았을 땐 적게나마 여기서 일해 번 돈을 북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할 때 수수료가 저렴해서 부담이 덜 됐어요. 그뿐만 아니라 북한을 탈출하기도 지금처럼 어렵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최근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그 길이 거의 막혀버렸어요. 계속 이렇게 단절되면 통일도 점점 멀어지는 거예요. 전 통일되는 날이 제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투표권을 가진 뒤로는 경색돼 있는 남북관계를 얼마나 회복시킬 의지가 있는가, 그런 데에 관심이 가고 그런 사람에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싶어요.

■ “이주민 200만명 시대, 이주민을 위한 공약은 없어”

알파고 =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측면도 있어요. 외국인의 눈으로 봤을 때 한국의 정당들은 대북정책을 빼면 거의 차이점이 없어요. 서로 진보니, 보수니 하면서 싸우지만 우리가 보기엔 다른 정책에 있어서는 둘 다 비슷해요(웃음).

독일 출신 다니엘 텐들러 독일, 누가 당선돼도 절망 안 해, 기본적인 건 흔들지 않기 때문

텐들러 = 맞아요. 외국인의 관점에서 봤을 땐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 국민의당은 물론 더불어민주당도 보수예요.

알파고 = 그냥 우파와 강도가 센 우파(웃음). 아이러니한 게 뭐냐면 첫 이주민 국회의원이던 이자스민씨나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 조명철씨도 그렇고, 다 새누리당 공천을 받았어요. 구색 맞추기였든 뭐였든, 더불어민주당이 먼저 앞장섰어야죠.

토요판팀 = 혹시 후보들의 공약을 보고 실망하시진 않았나요? 이주민을 위한 공약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데요.

레티마이투 = 그 전에, 이주민들의 투표권에 대해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한국에 거주하는 200만명의 이주민 중 투표권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투표권을 가지려면 국적을 취득해야 하는데, 귀화가 쉽지 않거든요. 한국 사람과 결혼을 했거나 아니면 한국 거주 5년 이상, 재산 6000만원 이상 등의 까다로운 조건들을 통과해야 해요.

알파고 = 전 한국인과 결혼했지만 귀화 테스트에서 떨어져서 아직 투표권이 없어요. 마지막 면접에서 애국가를 부르다가 음정이 틀리는 바람에. 아내한테 혼났어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떨어지냐고(웃음).

레티마이투 = 귀화심사 과정도 까다롭지만, 한국인과 결혼하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사실상 귀화할 수 있는 길이 봉쇄돼 있어요. 고용허가제 기간이 최대 4년10개월이다보니 5년 이상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시킬 수가 없거든요.

박영철 = 예전에 경기 안산의 이주노동자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어요. 대부분 투표권이 없지만 의외로 한국 정치에 관심이 많더라고요. 당시 강금실씨가 법무장관이었을 땐데 엄청나게 많은 불법체류자를 추방했거든요. 누가 대통령이 되고 장관이 되느냐에 따라 생존권이 위협받을 수 있으니까 관심이 클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레티마이투 = 각 정당이 재외국민들에게 선거운동하고 홍보하는 것처럼, 귀화한 국내 이주민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한국어를 잘해도 한국의 정치, 역사, 문화를 다 이해해야 하니까 각 정당의 공약을 제대로 분석하고 이해하기 쉽지 않거든요. 그러다보니 제 주변에도 결혼한 이주여성들이 남편이나 시댁 가족들을 따라서 찍는 경우가 많아요. 전 이번 선거에서 이주민을 포함한 소수자들, 대기업이 아니라 일반 서민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 투표할 계획이에요.

텐들러 = 이번 선거를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성숙해지길 바라요. 앞으론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흔들릴 수 없도록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위한 기본 바탕이 더 단단해지면 좋겠어요.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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