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전화만 받으라고?" 씨티銀 영업점 폐점에 직원들 '뿔'났다

이승주 기자 2017. 4. 2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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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점에서 수십년을 일했는데 하루종일 전화만 받으라는게 말이 됩니까?”

한국씨티은행 본점. /조선일보DB

한국씨티은행이 전국 126개 영업점 중 101개를 폐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직원들의 불만이 날로 커지고 있다.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고 원거리 근무를 해야 하는데, 묵을 숙소도 없고 하는 업무도 사실상 콜센터 직원들이 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28일 한국씨티은행 노동조합에 따르면 사측의 계획대로 전국 101개 영업점을 폐업할 경우 716명의 직원 중 서울 내 영업점 직원 265명을 제외한 450여명이 원거리 근무를 해야 한다. 노조는 이들 대부분이 사실상 콜센터 역할을 하는 ‘고객집중센터’와 ‘고객가치센터’ 등으로 배치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방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은 일하던 지점이 없어지면서 서울로 주거지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다.

직원들은 그저 막막할 따름이다. 원거리 근무가 당장 눈 앞의 현실이 된 상황에서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 뿐더러 대중교통으로 오갈 형편이 안되면 묵을 곳이 필요한데 사측은 직원 숙소 등 제반 사항을 아직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조 관계자는 “사측은 원거리 근무자의 주거 문제 등 영업점을 축소했을 때 발생할 뻔한 문제들에 대한 아무런 대비도 없이 영업점 축소부터 진행하려 한다”며 “직원들의 주거문제 등 기본적인 것들은 갖춰놓고 영업점 축소를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씨티은행의 한 직원은 “원거리 근무 해야한다는 예상은 하고 있고 마음은 먹었지만, 쉽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며 “아무래도 근무 능률이나 안정성, 업무 생산성이 크게 떨어질 것 같다”고 했다.

가정이 있는 지방 영업점에서 근무하다 하루 아침에 서울 내 ‘고객집중센터’와 ‘고객가치센터’에서 근무해야 할 여성 직원들의 경우 자녀 육아에 대한 부담도 크다. 아이를 두고 주말부부를 결정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퇴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지방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주변에 애 봐줄 사람이 없는데 원거리 근무를 하라고 하니까 퇴직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며 “사실상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원거리 근무가 어려운 직원은 나가라는 것처럼 들려 억울한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수십년간 영업점에서 근무하던 직원을 하루 아침에 콜센터에 배치하는 것을 두고도 잡음이 많다. 사측은 단순 콜센터 업무가 아니라 ‘고객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했지만, 직원들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씨티은행 한 직원은 “얼굴도 모르는 처음 전화한 직원한테 본인 자산과 같은 민감한 얘기를 할 고객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결국은 예·적금이나 펀드, 카드론, 신용대출 등 상품 판매나 권유하는 콜센터 업무나 하게 될 것 같다”고 푸념했다.

한편 콜센터로 직원들을 부당하게 배치한다는 논란에 대해 씨티은행 측 관계자는 “고객가치센터와 고객집중센터는 고객들이 비대면채널로 금융전문가(은행원)를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새로운 채널”이라며 “단순 콜센터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한국씨티은행 본점 로비 모습. /한국씨티은행 노동조합 제공

또한 “고객집중센터에서 파일럿 교육을 받은 직원들 가운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직원도 많다”며 “불만이 있는 직원들과 계속 소통을 하고 애로 사항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 직원들 “은행이길 포기했나?” 분통… 경남·충청 지점 사라져 고객들 불편만 가중

직원들 사이에서는 씨티은행이 시중은행 역할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사측 계획대로라면 경남(창원), 충남(천안), 충북(청주), 울산, 제주 지역은 영업점 폐점 이후 씨티은행 지점이 한 곳도 남아있지 않게 되는데, 이런식으로 지방 영업점을 다 없애버리면 씨티은행이 시중은행의 공공성 의무를 다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노조는 해당 지역을 대표하는 이들 점포에는 적게는 2만명에서 많게는 3만명 가량의 고객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문제는 해당 지역 영업점이 사라지게 되면 궁극적으로 이 지역 고객들을 전부 잃을 수 있다는 점이다.

씨티은행 한 직원은 “사측은 은행업무의 95%가 온라인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은행 거래를 하다보면 반드시 고객이 은행원과 대면해야 하는 순간이 필요하다”며 “대면 업무를 위해 차 타고 몇 시간 씩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배나 비행기 타고 섬을 나가야 한다면 누가 씨티은행을 이용하겠느냐”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솔직히 말해 씨티은행이 내놓은 상품이 타행에 비해 지나치게 뛰어난 것도 아니고, 우리 고객들은 철저히 인간관계나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쌓아온 것”이라며 “하루 아침에 영업점이 문을 닫을 처지가 돼 고객들에게 죄송한 마음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씨티은행 관계자는 “소비자금융 전략 변화의 목표는 지점 수 조정이 아니라 변화하는 고객의 금융 서비스 이용 방식에 발맞춰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새롭게 변화하는 것”이라며 “가용 인력은 고객가치센터나 고객집중센터 뿐만 아니라 자산관리(WM) 센터와 여신영업센터 등으로도 재배치 될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조 측은 영업점 폐점에 맞서 태업과 파업 등 어떤 수를 써서라도 맞설 계획이다. 노조는 지난 13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 조정 신청했는데, 이날 조정 결과가 나오는 대로 씨티은행 노조 조합원 2697명을 대상으로 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해 파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김호재 노조 홍보부위원장은 “영업점 축소는 단순 경영상의 문제가 아니라 직원들의 생계가 걸린 문제이자 씨티은행의 향후 먹거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며 “직원들을 볼모로 삼고 회사가 도박을 하는 것은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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