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플피디아] 대세는 기울었다? 전혀.. 편향된 정보의 '거품' 필터버블

김철오 기자 2017. 4. 2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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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끈 쥔 주먹. 뉴시스


‘필터버블(Filter Bubble)’은 검색엔진이나 SNS 이용자가 편향된 정보의 ‘거품’에 갇히는 현상이다.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 등 IT 기업들은 이용자의 정치적 성향, 경제활동 선호도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맞춤형 정보를 제공한다. SNS에서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 위주로 팔로어가 구성된다. 그 결과 이용자는 자신의 견해가 타인의 의견을 압도한다고 착각하고, 선거에서 지지했던 후보의 패배를 납득하지 못한다. 필터버블은 IT 기업들의 상업 목적으로, 또는 이용자 스스로 정보를 ‘편식’한 결과다.

1. 필터버블은 무엇인가

필터버블은 미국 시민단체 무브온 이사장 엘리 프레이저가 2011년 5월 펴낸 저서 ‘생각 조종자들’에서 개념을 세운 표현이다. 이 책의 원제는 우리나라 번역본과 다르게 용어가 그대로 사용된 ‘필터버블(The Filter Bubble)’이다. 프레이저는 이 책에서 IT 기업들이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도입해 이용자의 상업 활동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가치관의 왜곡을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구글 같은 검색엔진,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SNS, 아마존 알리바바 같은 쇼핑몰은 이용자의 정보 탐색, 콘텐츠 소비, 인맥 관리, 전자상거래를 위한 모든 활동 유형을 수집한다. 이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맞춤형 정보를 이용자에게 제공한다. 유튜브에서 강아지 영상을 자주 시청한 이용자를 애견인으로 판단하고 다음 방문에서 애견용품 쇼핑몰로 유도하는 식이다. 말 그대로 ‘취향 저격’ 서비스다.

문제는 이용자가 이런 활동을 반복하면서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필터버블 속으로 들어간다는 점에 있다. 특히 정치적 성향을 빈번하게 노출하는 이용자는 선거에서 지지하는 후보의 소식만 접하거나 비슷한 성향의 유권자끼리만 모일 수 있다. 반대 성향 유권자의 주장, 선거 판세를 가늠할 뉴스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의해 걸러진다. SNS의 경우 비슷한 성향의 유권자 위주로 팔로어를 늘리는 과정에서 타임라인을 스스로 왜곡할 수 있다.

이 경우 선거판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현상을 관찰하고 판단할 기회조차 놓칠 수 있다. 정치 이외의 사안에서 자신의 경제·문화적 선호가 소비자 다수의 선택을 받아 유행을 선도하는 것으로 오판할 수도 있다. 프레이저는 2011년 TED 강연에서 이용자의 기호에 맞춰 각색된 정보를 ‘정크푸드(불량식품)’에 비유했다.

엘리 프레이저 트위터 프로필 사진

2. 필터버블은 어떻게 나타났는가

프레이저는 TED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진보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놀랄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언제나 보수주의자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을 경청하고 싶었습니다. 그들과 관련된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 좋았습니다. 어느 날 내 페이스북 뉴스피드에서 보수주의자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진보주의자들의 링크를 더 많이 클릭한 결과였습니다. 페이스북은 내가 어떤 링크를 클릭하는지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내 의견을 묻지 않고 보수주의자들의 링크를 편집했습니다. 그들은 사라졌습니다.”

프레이저의 발언은 5년 뒤 세계를 발칵 뒤집은 사건의 예언과 같았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의 제45대 미국 대통령 당선이다.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트럼프는 SNS 이용자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지 못했다. SNS 이용자의 연령층은 대부분 20~40대다. 트럼프에게 비판적인 세대다. SNS 타임라인은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지지 입장과 무관하게 트럼프의 낙선을 확신하는 의견으로 넘쳐났다. 하지만 2016년 11월 8일 미국 대선의 결과는 달랐다. 트럼프는 선거인단 538명 중 306명을 확보하고 당선됐다.

인공지능은 이미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하고 있었다. 인도 벤처기업 제닉AI 창립자 산지브 라이가 개발한 인공지능 ‘모그IA’는 미국 대선을 일주일여 앞둔 같은 해 10월 30일 승자를 트럼프로 지목했다. 검색엔진, SNS, 동영상 사이트에서 수집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였다. 당시 라이는 “트럼프가 패배하면, 사상 처음으로 인터넷 동향과 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트럼프와 관련한 빅데이터를 편견 없이 받아들인 인공지능과 다르게 SNS 이용자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쪽으로 각색된 정보를 받고 있었다.

2016년 11월 8일 당시 미국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선후보 지지자들. AP뉴시스


2016년 11월 8일 당시 미국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대선후보 지지자들. AP뉴시스


3. 마지막까지 낙관해선 안 된다… 필터버블의 교훈

SNS 이용자들이 필터버블에 갇혀 판세를 읽지 못한 사례는 트럼프의 당선만이 아니다.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역시 상대적으로 우세한 여론이 필터버블의 장막에 가려진 사례로 볼 수 있다. 영국은 2016년 6월 23일 국민투표에서 3355만명의 51.9%인 1742만명의 찬성표로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했다. 반대(48.1%)를 3.8%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영국의 EU 분담금 부담 가중, 취업 목적의 이민자 증가, 계속되는 난민 유입으로 불안감을 느낀 계층은 브렉시트 찬성 쪽으로 표를 던졌다. 브렉시트를 주도한 정당은 영국 보수당이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은 ‘샤이 보수(Shy Conservatives)’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공개적으로 의견을 말하기 부끄러워 숨은 보수’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하지만 검색엔진과 SNS에서 이들의 의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진보 성향의 정치인과 유권자, 언론인이 판세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도록 SNS 타임라인이나 검색엔진의 결과물이 다르게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샤이’는 숨었던 것이 아닌, 정보의 제한적 공급에 따라 숨겨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지난 3월 10일 파면 선고를 앞두고 “탄핵반대 여론이 더 많다”고 믿었던 것으로 알려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착각 역시 당시의 여당 관계자들, 지지자들의 의견만 수렴하면서 생긴 필터버블의 한 사례다.

국민일보 더피플피디아: 필터버블

더피플피디아는 국민(The People)과 백과사전(Encyclopedia)을 합성한 말입니다. 문헌과 언론 보도, 또는 관련자의 말과 경험을 통해 확인한 내용을 백과사전처럼 자료로 축적하는 비정기 연재입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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