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 아우성 속 양승태 '진퇴양난'

이범준 기자 2017. 4. 27.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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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대법원장 ‘사법개혁 저지 의혹’ 침묵 왜?

대법원을 향해 사법개혁 저지 의혹을 해명하라는 판사들의 요구가 나날이 거세지고 있다. 27일에도 법원 내부게시판에는 판사들의 항의글이 이어졌다. 지난주 공개된 진상조사위원회 조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한 수도권 법원 이모 판사는 “조사보고서를 본 이후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으며 재판 업무에도 집중하기 어렵다”면서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직접 해명할 것을 촉구했다.

전국의 판사들은 잇따라 판사회의를 열어 “양 대법원장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결의 중이다. 지난 26일 서울동부지법, 27일 대전지법에 이어 28일 창원지법, 내달 1일 인천지법, 8일 수원지법 등에서 판사회의가 열린다. 양 대법원장이 자신을 조여오는 압박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양 대법원장은 침묵만 지키고 있다. 판사들은 “양 대법원장이 지금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도 하고, “양 대법원장이 뭉개고 넘어갈 성격은 아니다”라고도 한다. 이런 가운데 ‘양 대법원장이 이미 실기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나온다.

양 대법원장이 사법개혁 저지 의혹에 대해 언급할 시기를 놓친 이유는 자신이 관련된 사건이기 때문이라고 법조계는 본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지난해 비리 혐의로 김수천 부장판사가 구속됐을 때 양 대법원장은 사흘 만에 사과했다”며 “이번에 양 대법원장이 한참 동안 침묵하는 이유는 직접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미 의혹이 제기된 날부터 50일 이상, 진상조사위원회의 발표 이후로도 10일이 지났다.

이렇게 상황이 악화된 이유는 대법원이 사태 초반에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대충 덮으려 했던 데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판사회의가 전국에서 잇따르자 중간 관련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사표를 냈다.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한 달 뒤 조사위에서 거짓말로 밝혀질 “부당지시는 없고 언론보도는 허위”라는 해명을 했다. 판사들은 잠잠해졌고 조사위는 철저한 비공개 조사로 파장을 최소화했다.

하지만 지난 18일 조사위가 허술한 결론을 발표하고, 대법원이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회부해 징계를 늦추자 법원 분위기가 다시 악화됐다. 판사들은 사표까지 언급하며 양 대법원장 등에게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솔직히 답답하다. 양 대법원장께 판사들 분위기를 제대로 전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말했다.

실기한 양 대법원장이 선택할 카드는 두 가지 정도로 보인다. 우선 고 처장 등을 앞세워 적당한 논평을 하면서 임기 끝까지 그대로 가는 것이다. 이 기간은 후임 대법원장이 내정되는 오는 8월까지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법원이 자정능력 없는 곳이 되면서 정치권의 강도 높은 개혁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사들은 우려한다.

다른 선택은 2009년 신영철 대법관 사태 때와 같이 전국법관회의를 열어 판사들의 얘기를 듣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재조사 등 판사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법조계 관계자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임종헌 전 차장이나 고영한 처장은 물론이고, 이인복 조사위원장과 양 대법원장 자신의 책임으로도 이어진다는 점이 주저하는 지점일 것”이라고 했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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