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은 어떻게 꼬리 잡혔나

임종업 2017. 4. 27.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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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 특종 전말기
'왜?'라는 질문 던지며 출발
지하철 승객들도 '취재 협조'

[한겨레]

최순실 게이트
-기자들, 대통령을 끌어내리다
한겨레 특별취재반 지음/돌베개·1만5000원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끈질기게 추적·폭로하여 대통령을 파면에 이르게 한 <한겨레> 특별취재팀의 좌충우돌 특종 비하인드 스토리.

취재팀은 2016년 9월2일부터 2017년 1월6일까지 127일 동안 취재원 100명 이상을 만나고 각종 문서를 그러모아 분석했다. 그 결과 박근혜와 최순실이 공모하여 약점 잡힌 대기업한테 수백억원을 갈취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문화계를 옥죄고, 맘에 들지 않는 공무원을 쫓아내는 등 국정비리를 저지른 사실을 밝혀냈다.

특종은 ‘왜’라는 질문, 노련한 경험, 끈질긴 추적과 팀워크로 이뤄짐을 알겠다.

2016년 8월18일, 청와대는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를 의뢰한 이석수 특별감찰관과 <조선일보>의 통화를 문제삼아 ‘국기를 흔드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달랑 민정수석을 살리자고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 보도로 정권 초반 부정선거 논란을 잠재워준 <조선일보>에 전면전을 선포하다니…. 왜? ‘늙은 기자’ 김의겸은 호기심이 일어 여기저기 전화를 건 결과 청와대가 ‘미르·케이(K)스포츠재단’과 ‘미세스 최’를 보호하기 위해 ‘오버’하고 있음을 감지한다. 오랜 취재 경험으로 ‘대물’임을 직감한 그는 회사를 추동하여 강희철, 류이근, 송호진, 하어영, 방준호 등으로 특별취재팀을 꾸린다.

취재팀은 9월20일 ‘재벌돈 288억 걷은 케이스포츠 재단, 이사장은 최순실 단골 마사지 원장’이란 첫 기사를 터뜨린다. 여기서도 물음표가 시작이다. 별 볼 일 없는 스포츠마사지센터 대표가 수백억원을 주무르는 스포츠재단 대표를 맡다니… 왜? 이 기사로 ‘최순실’이란 인물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한달 이상 이어진 ‘미르·케이스포츠재단 의혹’ 기사들은 조각정보를 퍼즐처럼 맞추는 고역이었다. ‘최순실, 케이재단 주요사업 직접 보고받았다’는 사실을 터뜨린 10월24일부터는 ‘최순실 국정농단’ ‘최순실 게이트’로 확대된다. 2주 뒤인 11월8일 ‘박대통령, 수사 앞둔 신동빈 회장 독대해 재단 지원 요구’ 기사를 보도하면서부터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사건 성격이 급변한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올림머리를 하느라 90분을 허비했다는 기사는 ‘뻗치기’의 승리. 청와대를 출입하는 이가 원장인 미용실에서 닷새 동안 버티며 낚은 특종이다. 천덕꾸러기로 주변에서 얼쩡대며 90분이 맞냐는 질문을 던져 원장한테서 “아니오”가 아닌 “정확하게 말해줄 수 없어 죄송합니다”라는 답을 얻어낸 것. 비리 정점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음을 알려준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정현식 전 케이스포츠재단 사무총장 인터뷰는 오랫동안 접촉해 신뢰를 쌓은 결과다. 청와대의 대한항공 인사 개입과 문화계 블랙리스트 하달, 문화체육관광부 간부 노태강·진재수씨 축출 등은 특별취재팀이 아닌 동료 기자들의 인맥과 협조가 큰 역할을 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끈질기게 추적·폭로하여 대통령을 파면에 이르게 한 특별취재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의겸, 하어영, 방준호, 류이근 기자. <한겨레> 자료사진

탄핵 사태가 유력 언론과 정부의 의도대로 흐르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정유라의 대입과 학사 비리는 재단의혹 보도 과정에서 ‘쉬어가는’ 곁가지 보도였다. 하지만 이 기사는 다른 언론사의 관심을 부르고, 교육문제에 민감한 학부모들의 공분을 일으키면서 게이트를 전 국민 관심사로 끌어올렸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단식과 함께 국정감사를 거부하며 방패막이에 나서고,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론을 들고나와 물꼬를 돌리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취재 과정에서 목격한 세태도 눈길을 끈다. 스스로 거짓말을 하면서 언론에 삿대질하는 교수, 정유라 행방을 말해주면서 재밌다는 듯 웃는 독일인, 단독제보하는 것처럼 말하고 여러 언론사를 부른 제보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지하철 소음 속에서 목소리가 높아진 전화 취재에 모두들 조용히 하고, 스쳐 내리면서 “수고하십니다”라고 말을 건넨 승객들.

치욕스러운 ‘최순실 게이트’를 드러낸 이들의 보도는 한국 언론의 쾌거로 일컬어졌다. <최순실 게이트: 기자들, 대통령을 끌어내리다>는 <워싱턴 포스트> 기자들의 <워터게이트: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특종기사가 실린 신문 지면을 실어 저널리즘스쿨 교재로 손색이 없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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