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업계도 '하도급 쥐어짜기'..하루 14시간 일해도 월 200만원
문제는 비용의 90%가 인건비..한정된 인원 최대한 활용 압박
포괄임금제로 상시 근무 강요..주 52시간 초과는 엄연히 불법
하도급 직원 임금, 대기업 절반 수십명 해고 다반사 '고용불안'
◆ 게임업계 '죽음의 크런치 모드' (中) / 게임 하도급업체는 더 열악 ◆
대형 게임사 밑에서 일을 받아 연명하는 하도급업체들의 노동 행태에는 한국 정보기술(IT) 산업의 기형적 구조가 모두 녹아 있다. 게임 개발자들의 장시간 노동 논란을 일으킨 위메이드아이오의 크런치 모드 사태에 대해 일부에서는 "그 정도면 부러운 수준"이라고 할 정도다.
게임 하나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적게는 수십억 원, 많게는 수백억 원이 투자된다. 흥행에 실패했을 때 타격이 크기 때문에 개발과 유통으로 나눠 리스크를 분담한다. 주로 대형 게임사가 유통을 맡고 개발은 그 계열사에 맡기거나 중소 업체에 하도급한다. 투자비의 대부분은 인건비다. 인건비가 90%가량이다. 여기서부터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하도급을 받은 게임 개발사들이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항목이 인건비라는 얘기다.
중소형 개발사에서 일하는 B씨는 "돈을 나눠서 지급하다가 자기들 입맛에 맞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투자금을 주지 않는다"며 "게임이 퀄리티 있게 나오거나 흥행에 성공해야 계약금액을 다 준다는 단서를 달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 위메이드아이오도 대형 게임사 넷마블게임즈의 모바일 게임 '이카루스 모바일' 출시 일정을 맞추기 위해 '크런치 모드' 논란을 일으켰다.
야근·휴일 근무 수당을 회사에서 성과급인 양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지급하는 이유다.
중소 개발사에서 근무하는 C씨는 "포괄임금제 계약 때문에 추가 인건비가 들지 않는 회사 입장에선 근무시간과 상관없이 프로젝트 일정을 맞추라고 하는 게 일상적"이라며 "야근하고 휴일에 나와도 초과 근무 수당을 따로 주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라 휴일 근무 수당을 받은 위메이드아이오가 부럽다는 이야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포괄임금제라고 해도 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고용노동부 고위 관계자는 "통상 포괄임금제는 주당 52시간을 조건으로 연봉계약을 하도록 돼 있다"며 "이를 넘겨 근무한 경우 초과 수당을 주지 않으면 임금체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적으로 통상근로시간과 연장근로를 합쳐 5일 동안 52시간, 휴일 근로 이틀 동안 각각 8시간 넘게 근무할 수는 없다. 이를 넘기면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개발 자회사, 협력 업체는 임금 수준과 처우 등도 열악하다. 상장을 앞두고 있는 넷마블게임즈는 공채 초봉이 3700만원 선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센티브가 있긴 하지만 넷마블 계열 넷마블네오, 넷마블넥서스 등 개발 전문회사들 연봉은 이보다 수백만 원 이상 적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난해 말 한 넷마블게임즈 직원이 인터넷에 '넷마블이 구로의 등대라고 비판받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글을 올렸다가 수많은 개발자에게 욕을 먹기도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 조사에 따르면 게임 등 IT업계 협력업체 임금 수준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지난해 평균 임금 격차 수준인 62.9%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월 발표한 IT업종 사업장 89개소 대상 서면 실태조사에서 협력업체 임금은 대부분 원도급 근로자의 43.8~59.8% 수준에 불과했다. 한 업체의 경우 대기업인 원도급의 근로자가 임금과 복리후생으로 월 467만원가량을 받는 데 반해 협력 업체 근로자는 43.8% 수준인 205만원을 받는 데 그쳤다.
일상적인 고용 불안도 문제다. 넥슨 자회사 엔도어즈 직원들은 최근 '피의 밸런타인데이'를 경험했다. 지난 2월 13일 개발 직원 십수 명이 당일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 전 엔도어즈 직원 D씨는 "2차 정리해고가 또 언제 시작될지 몰라 남은 직원들도 전전긍긍하고 있다"며 "넥슨 인수 전부터 10년 넘게 다닌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잘려 어안이 벙벙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직 회사에 남은 직원 E씨는 익명 게시판을 통해 "하루아침에 동료들이 대량 해고됐는데 게시판 공지 하나가 전부"라며 "대기업이었다면 이렇게 극단적인 해고 통보는 없었을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위정현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게임은 2000년대 초반 벤처 정신을 앞세워 호황을 이뤘지만 업계가 성숙기에 접어들자 오히려 이 벤처 정신이 독이 됐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그는 "모바일 게임은 PC 게임에 비해 성공률이 10분의 1 수준"이라며 "수익을 내기 힘드니 투자비 가운데 가장 큰 인건비만 자꾸 건드리는 행태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위 교수는 "영화처럼 게임업계도 게임 채널을 총괄하는 대형 퍼블리싱(유통)업체들이 직접 게임 제작에까지 나서며 중소형 개발사들을 압박하고 있다"며 "가장 힘이 없는 개발자들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동철 기자 / 오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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