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서의 On Stage]단 한 번뿐인 사랑 그 말할 수 없는 끌림

장인서 2017. 4. 2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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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초연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동명의 원작소설·영화로도 유명한 작품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이끌리지만, 불륜이라는 장벽 앞에 이뤄지지 못한 남녀
그 애틋한 사랑의 감정, 무대 위로 옮겨

프란체스카 가족의 생활공간·로즈먼 다리 극의 핵심 무대장치로 활용
대극장서 잘 쓰지 않는 그랜드피아노 연주, 실제 무대서 요리하는 모습도 인상적

1992년 발표된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국내선 처음 선보이는 이번 작품에는 박은태(왼쪽)과 옥주현이 각각 남녀 주인공을 맡았다.


[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1.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프리랜서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 픽업트럭을 타고 워싱턴을 떠난 그가 몬타나, 북다코타, 덜루스, 히빙을 거쳐 매디슨 카운티로 들어섰다. #2. 이탈리아 출신의 아름다운 여성 프란체스카 존슨. 그는 3박4일간 남편과 아이들을 마을 박람회에 보낸 뒤 현관 앞 그네에 앉아 아이스티를 마시며 저 멀리서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다가오는 픽업트럭을 멍하니 바라본다. #3. 픽업트럭은 프란체스카의 집 앞에 멈춰 섰다. 트럭에서 내린 로버트는 '로즈먼 다리'로 가는 길을 물었고, 프란체스카는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조수석에 올라 그를 안내한다.

세 장면은 1965년 8월16일 월요일, 권태로울 정도로 평화로운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일어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대수로울 것 없는 우연한 만남. 로버트 제임스 월러(1939~2017.3)가 1992년에 발표한 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속 두 주인공의 이야기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95년, 클린트 이스트우드ㆍ메릴 스트리프 주연의 동명 영화로 제작돼 또 한 번 세계적인 인기를 모은다. 이번에는 국내 초연 라이선스 뮤지컬로 관객과 만난다. 쇼노트와 프레인글로벌이 공동제작해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선보이는 이번 공연은 김태형(39)이 연출을 맡았다. 2014년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초연된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음악과 대본을 가져오고 무대와 영상, 의상 등을 새로 다듬었다. 뮤지컬 스타 박은태(36)와 옥주현(37)이 남녀 주인공을 맡았다.

1965년 미국 중부의 작은 마을이라는 시대ㆍ공간적 배경은 무대 위에서 어떻게 탈바꿈했을까. 소박하고 오래된 목조 주택과 실내 주방.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프란체스카의 가족이 주로 생활하는 공간과 로즈먼 다리를 극의 핵심 무대장치로 활용한다. 등장인물의 머리 위에 설치된 다리 모양의 구조물. 여기에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모양과 빛을 표현한 영상이 배경으로 흘러가면서 아침과 낮, 별이 뜬 밤 등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정서를 투영한다. 영화와 달리 다양한 조연들이 등장, 두 사람의 내면과 상황을 유쾌하게 환기한다. 대극장 무대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그랜드피아노를 연주하고 실제 무대에서 배우가 요리를 하는 점도 인상적이다. 키스신과 두 배우의 노출 장면은 극의 흐름상 자연스럽게 연출했다.

국내 초연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공연 모습.


기본 줄거리는 원작 소설ㆍ영화와 같다. 프란체스카는 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에 파병된 버드와 결혼해 고향을 떠나 미국 아이오와주 윈터셋에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시골에서의 일상이 무료하기만 한 어느 날, 남편과 두 자녀가 일리노이주 박람회에 참가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홀로 남은 프란체스카는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날을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그날 오후, 매디슨 카운티에 있는 로즈먼 다리를 찍기 위해 온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 로버트가 운명처럼 나타난다. 프란체스카와 로버트는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말할 수 없는 '끌림'을 느낀다. 프란체스카가 그에게 다리로 가는 길을 안내하면서 둘은 가까워진다.

8월17일 화요일. 로즈먼 다리에 메모가 담긴 종이 한 장이 붙어 있다. "'흰 나방들이 날갯짓할 때' 다시 저녁 식사를 하고 싶으시면, 오늘 밤 일이 끝난 후 들르세요. 언제라도 좋아요." 전날 그와 식사를 하면서 묘한 설렘을 느낀 프란체스카가 초조하게 휘갈겨 써 붙인 종이를 로버트가 서둘러 셔츠 포켓에 숨긴다. 결국 서로의 감정을 알게 된 로버트와 프란체스카는 나흘 동안 평생 그리워할 사랑을 하고 만다. 언젠가부터 '여자'보다 '아내'라는 말이 더 익숙해져 버린 프란체스카와 삶의 의미를 찾아 세상을 떠돌던 로버트에게 불현듯 찾아온 단 한 번의 사랑이었다.

극 중 프란체스카가 부르는 '단 한 번의 순간(Before and After You)'에는 사랑에 빠진 프란체스카의 심경이 잘 담겨 있다. '당신을 끌어안을 때/ 그 숨결을 느낄 때/ 내 안의 모든 건 새로워져/ 휘몰아치는 키스에/ 두 개로 부서진 나/ 널 알기 전과 후/ 우연처럼 다가온 너/ 난 무너져 버렸어/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죠?/ 당신 품에 안겼을 때/ 마주쳐 버린 운명/ 이젠 알게 됐어/ 부서진 내 모습/ 널 알기 전과 후.'

국내 초연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공연 모습.


8월18일. 로버트가 남긴 편지를 보며 관객들은 이들의 만남이 '불륜'이 아닌 '사랑'이라고 설득된다.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요." 그러나 프란체스카는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떠날 수 없다. "당신과 떠난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당신이 사랑하게 됐던 그 여자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변해 버릴 거예요"라고 고백하는 그녀. 운명적 사랑은 "안녕"이라는 간단한 인사로 끝나고, 침묵 속에 묻어둔 마음은 1982년 1월25일, 1987년 1월7일 로버트와 프렌체스카가 각각 사망하는 순간까지 이어진다.

"친애하는 프란체스카. 당신 집 앞에서 길을 묻기 위해 차를 세운 것이 13년 전 오늘이요. 나는 1965년부터 1975년까지 길 위에서 살았소. 당신에게 전화하거나 찾아가고픈 유혹을 없애기 위해서였소. 당신을 발견한 사실에 감사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소. 우리는 서로에게 빛을 비춘 것 같소. 당신을 사랑하오. 깊이. 완벽하게. 영원히(1978년 8월16일ㆍ로버트의 편지 중)."

연출가 김태형은 제작노트에서 "인생에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있다. 이 작품은 그 선택에 관한, 어찌 보면 흔히 불륜이라고 부르는 이야기"라면서 "그러나 주인공들은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고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고 평생을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선택을 관객에게 맡긴다"고 했다.

국내 초연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공연 모습.


공연은 오는 6월18일까지 한다. 박은태와 옥주현 외에 박선우·이상현·김민수·김나윤(김희원)·유리아·김현진·송영미·김호섭·장예원·최성환·박선정·허순미·전재현·박진상·김지혜가 출연한다.

☞덧붙이는 말: 아이오와 주의 작은 마을에서 자라 인디애나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월러는 어느 날 매디슨 카운티의 낡은 다리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영감을 얻어 소설을 썼다. 국내에는 출판사 시공사(번역 공경희)를 통해 출간됐으며 전 세계 12개국에서 5000만부 이상 판매되며 20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 소설로 자리 잡았다.

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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