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비정규직 한살림' 기아차 노조, 9년만에 깨질판

2017. 4. 2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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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부터 이틀간 '노조 분리' 투표

[동아일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불편한 동거가 결국 깨질 것인가.

5월 1일 노동절을 앞두고 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자동차지부(기아차노조)가 사내하청분회(사내하청노조)를 분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기아차노조는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민주적으로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정규직 조합원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비정규직을 버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26일 노동계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기아차노조는 노조 규약상 조합원 자격을 ‘기아차 내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에서 ‘기아차㈜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로 바꾸는 안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묻는 조합원 총투표를 27일부터 이틀간 실시할 예정이다. 이 안건이 통과되면 기아차지부 가입자격은 원청인 기아자동차에서 근무하는 정규직 근로자에게만 있고, 기아차 소속이 아닌 사내하청근로자는 조합원 자격을 잃게 된다. 기아차노조라는 한 우산 밑에 있던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각각 다른 노조로 분리되는 것이다.

2005년 금속노조 경기지부 지회로 설립된 기아차 사내하청노조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연대를 강화하려면 한 회사에 한 노조만 두자는 원칙(1사 1노조)에 따라 2008년 기아차노조 소속 분회로 편입했다. 이후 기아차노조 지도부는 사내하청 근로자의 정규직화에 적극 나서는 등 정규직과 비정규직 ‘연대 투쟁’의 상징이 됐다. 완성차업계 노조 가운데 사내하청노조를 정규직 노조가 품에 안은 것은 기아차노조가 유일하다.

하지만 사내하청분회가 정규직 인정 투쟁을 강하게 벌이면서 노노(勞勞)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법원은 2심까지 기아차 사내하청 전체 공정이 불법 파견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기아차지부는 4000여 명의 사내하청 근로자 가운데 일단 1049명만 특별채용하기로 지난해 11월 사측과 합의했다. 그러자 사내하청분회는 반발하며 ‘전면 투쟁’을 요구해왔다.

이에 기아차지부 측은 이달 11일 소식지를 통해 “1사 1노조 운영 이후 사내하청분회가 별도 독자파업을 진행하는 등 갈등이 있었고 불법파견 공정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합의에 대해서는 ‘사기극 범죄행위’로 표현했다”며 “지도부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을 다했지만 현장 갈등은 오히려 확산됐다”고 조합원 총투표를 실시한 이유를 밝혔다. 겉으로는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민주적으로 결정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사내하청부회가 차라리 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지도부가 사실상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도부뿐만 아니라 조합원들도 사내하청분회 분리에 찬성하는 여론이 많은 편이다. 기아차노조의 한 조합원은 “그동안 비정규직의 독자행동 때문에 정규직 조합원들까지 너무 큰 피해를 봤고, 같이 욕까지 먹어야 했다”며 “현대차나 GM처럼 정규직은 정규직끼리, 비정규직은 비정규직끼리 뭉치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는 조합원이 많다”고 말했다.

기아차노조가 투표를 강행하면 사내하청분회가 분리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기아차노조의 정규직 조합원은 2만8000여 명이지만 사내하청 조합원은 2800여 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규약 변경은 재적 조합원의 과반수가 투표에 참여해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통과된다. 이러자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도 “1사 1노조는 정규직, 비정규직 연대 투쟁의 가장 큰 원칙”이라며 조합원 총투표를 반대하고 나섰다.

시민사회에서도 기아차노조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스스로 ‘귀족 노조’임을 인정하는 행태라는 비판이 터져 나온다. 지난해 기아차노조는 임금 및 단체협상 과정에서 총 23차례나 파업을 벌였고, 사내하청분회는 이 파업에 모두 동참했다. 반면 기아차노조가 문제 삼는 사내하청분회의 ‘독자 파업’은 단 3차례였고, 시간도 8시간에 불과했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기아차노조가 사내하청분회의 의견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사측과 합의하는 등 투쟁에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사내하청분회가 독자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투표가 통과되면 기아차노조는 스스로 ‘귀족 노조’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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