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 학살' 나선 외국어 전공자들

입력 2017. 4. 2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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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 3학년인 윤모 씨(21·여)는 이번 학기 교양수업으로 일본어 초급을 신청했다.

일본어를 제대로 배울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교양수업에 적당히 학점을 따려는 마음이 컸다.

그 역시 최근 독일어 교양 수업에서 '학점 양민 학살' 당했다.

이공계와 상경계에 비해 취업 사정이 더 나쁜 외국어 전공자들이 학점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교양과목에 몰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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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 일본어 교양강의에 일문과 학생들 바글바글

[동아일보]

사립대 3학년인 윤모 씨(21·여)는 이번 학기 교양수업으로 일본어 초급을 신청했다. 일본어를 제대로 배울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교양수업에 적당히 학점을 따려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몇 차례 수업을 들은 뒤 자신이 잘못 판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급반인데도 대부분 학생이 일본어에 능통했기 때문이다. 수강생 30명 중 일본어를 처음 공부하는 학생은 윤 씨를 포함해 10명에 불과했다. 윤 씨는 “교수님이 일본어를 읽어보라고 시켰는데 원어민 발음과 비슷한 학생이 상당수였다. 이런 학생들과 경쟁이 되겠냐”며 후회했다.

○ 취업 한파에 늘어나는 ‘학점 양학’

이처럼 외국어 등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해 초급 단계의 강의를 신청하는 현상이 최근 두드러지고 있다. 대학가에서는 이를 빗댄 ‘학점 양학’이라는 말까지 유행할 정도다. 학점 양학은 ‘학점 양민 학살’의 줄임말. 양민 학살은 원래 온라인 게임에서 월등히 높은 능력치를 가진 캐릭터가 능력치가 낮은 캐릭터를 집중 공격하는 ‘비매너’ 행위를 뜻한다. 취업 한파가 심해지면서 주로 외국어 전공자 사이에서 “비전공자 대상으로 학점 따러 가자”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다.

대학생 나모 씨(20·여)도 비슷한 처지다. 그 역시 최근 독일어 교양 수업에서 ‘학점 양민 학살’ 당했다. 강의계획서에는 기초 독일어와 문화 소양을 기르는 것이 목표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정원 25명 중 8명이 독어독문학과 학생이었다. 심지어 교환학생으로 독일에 다녀온 이도 있었다. 나 씨는 “교양을 쌓기 위한 수업의 본래 취지는 사라진 지 오래”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잘 알고 있는 과목을 신청하는 이유는 취업난 탓이 크다. 이공계와 상경계에 비해 취업 사정이 더 나쁜 외국어 전공자들이 학점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교양과목에 몰리는 것이다.

교수들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시험을 보면 만점자들이 너무 많아 상대평가가 불가능할 정도”라며 “다른 학생들이 항의해서 곤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능통자들을 걸러낼 방법은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학문을 배우는 즐거움을 찾기보다 얼마나 수월하게 학점을 받을 수 있는지만 고민하고 있다”며 “취업 한파가 심해지면서 학생들이 결과물로 내놓을 학점만 우선시하게 된 사회의 씁쓸한 단면”이라고 지적했다.

○ 선의의 피해자 위한 근본 대책 필요

문제가 커지자 각 대학은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다. 연세대는 올해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해당 외국어 선택 △외국어고에서 같은 외국어 전공 △외국어 사용권, 외국인 및 재외국민전형으로 입학 등 기준을 내세워 교양수업 수강을 제한하고 있다. 대상은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아랍어 한문 등 8개 과목이다. 해당 과목을 신청한 학생들은 첫 수업 때 자신이 위 조건에 해당하는지 써 내야 한다.

하지만 ‘자발적 신고’이다 보니 학생들이 써 낸 내용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따로 실력을 검증하기도 어렵다.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는 다른 학교도 상황은 비슷하다. 연세대 관계자는 “자칫 과다한 학생 정보를 수집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 일일이 학생들 신상을 조사하기 어렵다”며 “현재로서는 학생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호재 hoho@donga.com·김하경·신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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