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선 정책 검증- 4차 산업혁명 구호만 있다
[경향신문] 너나없이 한국 경제의 미래는 4차 산업혁명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대선후보들도 예외 없이 미래성장 동력으로 4차 산업혁명을 거론하고 있다. 이에 대비한 정부조직 개편, 인재 양성, 규제개혁 등은 공통 공약이다. 문재인 후보는 대통령직속위원회를 설치하고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 스마트 공장, 스마트 도시를 세운다는 계획을 내놨다. 안철수 후보는 민간주도의 4차 산업혁명 플랫폼 선도 및 인력 10만 양성, 국가기술융합센터 설립을 거론했다. 홍준표·유승민·심상정 후보도 각각 4차 산업특구 지정, 창업 혁신 안전망 구축, 산학협업체계 구축 등을 내걸었다.
한국 산업이 위기라는 데 모두들 동의한다. 대우조선해양 사태에서 보듯 전통산업은 경쟁력을 잃었다. 휴대전화, 반도체 등 첨단 분야도 후발국의 추격권에 들어있다. 당연히 새 산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은 시급하고도 절실한 문제이다. 4차 산업혁명은 빅데이터, 플랫폼, 연결 같은 낯선 단어로 상징되지만 인공지능, 로봇기술, 생명과학이 주도하는 차세대 산업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3차 산업혁명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현실에서 불쑥 우리 곁에 다가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경제포럼은 지난해 한국의 4차 산업혁명 준비수준을 세계 25위로 매겼을 정도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글로벌 챔피언이 정부주도나 민간선도와 같은 이분법적 접근만으로 탄생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쉬 짐작할 수 있다. ‘바퀴 달린 컴퓨터’로 이해되는 자율주행차는 자동차와 컴퓨터, 인터넷이 결합한 전혀 새로운 개념의 이동수단이다. 이를 위해서는 탄탄한 기술력 못지않게 이를 인류의 편의와 연결시킬 수 있는 탁견이 필요하다. 이런 결과물은 단번에 나오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시행착오 끝에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적 산업 생태계는 전혀 다르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실패로 끝난 것은 조급증에 함몰돼 정부가 지시하고 대기업을 앞세워 다그치는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창조적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를 억누르는 방식을 채택하면서 허송세월한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후보들이 말하는 4차 산업혁명 역시 창조경제의 재판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따지고 보면 현재의 한국적 산업 현실은 도전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 민망할 정도이다. 기업들은 창의적 제품·서비스보다는 독과점적 지대추구에 목을 매왔다. 대기업 중심 산업체계에 익숙한 정부는 이를 묵인·방조했고 때로는 조장해 왔다. 지난 20년간 한국의 주류 산업이 선박,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제품 등에 국한되고 정권이 바뀌는 5년마다 성장률이 1%포인트씩 하락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건강한 산업 생태계는 경쟁력이 떨어진 기업이 퇴출되고 그 자리를 새로운 혁신기업이 메우면서 순환한다. 4차 산업혁명을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경제 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이 같은 위험 회피 체질을 바꾸는 게 절대적이다. 위험을 두려워하는 사회에 내일이 있을 리 없다. 정부나 기업 모두 말로만 혁신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견딜 수 있는 저변을 만드는 게 먼저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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